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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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느꼈던 허전함과 책을 읽으면서 느낀 먹먹함이 닮은데가 있기 때문일까. 연초 며칠간의 휴일에 버스로 달려서 다섯시간이 넘는 거리에 떨어져 살고 있는 조카를 보고 왔다. 조금 과장되게 말한다면 가는데 하루, 오는데 하루 거리에 살고 있는지라 자주 볼 수 없기 때문일까 조카를 보고 오는 길은, 혹은 조카가 집에 왔다가 가는 길은, "왜 자꾸자꾸 헤어져야 돼?...  한 밤만 더 자고 가면 안 돼?"하고 애처롭게 묻는 녀석의 표정만큼이나 견고한 허전함과 섭섭함으로 포장을 한 것 같았다.

 

     나의 예쁜 첫 조카는 맞벌이를 하는 조카녀석 아빠엄마의 사정과 첫 손자를 가까이 두고 보살피고 싶은 내 부모님의 욕심으로, 녀석이 기어다니기도 전부터 지난해 봄까지 3년 6개월 가량의, 그러니깐 녀석의 인생으로 말하자면 4/5에 해당하는 엄청난 시간을 그 녀석의 부모랑 떨어져 여기, 그 아이의 할아버지 집에서 보냈다. 그랬기 때문일까 아직은 여기 할아버지 집 식구들에 대한 정이 더 많은 녀석. 그 아이의 부모가 서운해할만큼 녀석과 끌어안고서는 이산가족 상봉 후의 헤어짐 같은 이별의 장면을 연출하고 그렇게 돌아오는 길이었다. 녀석의 울먹임 때문에 내가 더 많이 울어버렸던,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녀석의 "왜 자꾸자꾸 헤어져야 돼..?" 하는 물음을 나 역시 되새김질하며 눈물을 훌쩍이며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내리사랑이란게 이런걸까.. 한없이 애틋한 이런 마음이 내리사랑일까...

    집에 와 보니 이 책 [엄마를 부탁해]가 도착해있었다. 고마운 분으로부터 선물받은 고마운 책이라 얼른 읽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펼쳐들기가 겁이 나기도 한 책이었다. 이 책에 대한 호평은 여러번 들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밤새 울었노라는 어떤 분의 글을 본 기억도 있는터라, 감당 안 될만큼 슬픈 내용이면 어떡하나 싶어서 망설여졌던 것이다.

 

   그렇게 펼쳐든 이 책을 어젯밤, 그리고 오늘 오전 내내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다 읽어버렸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니 엄마를 "잊"어버린 어느 가족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었다. 실은 어느 가족으로 한정된 범위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내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누군가 "엄마"라고 세 번 소리내서 불렀을때, 눈물이 나면 한국사람이라고 했다던가.. 그 기준에 비추어본다면  나는 한국 사람이 맞는 모양이다. 책을 읽으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엄마"와 내 엄마의 공통점을 자주 발견했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엄마" "엄마" "엄마"하고 불러봤는데 눈물이 글썽여졌다.  많은 아버지들에게는 참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책에서처럼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 엄마"(p18)처럼, "아버지"는 아버지로 "어머니"는 "엄마"로 그렇게 비대칭적으로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호칭법인가 보다. "엄마. 엄마. 엄마......."

  

   늘  자신의 삶보다는 남편의 삶을, 자식들의 삶을 뒷바라지 하기 바빴던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가족들은 깨닫는다. 엄마를 "잃"어버리기 오래전부터 엄마를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평생을 가족에 대한 헌신과 배려의 고단하고 고단한 노동으로 채워온 엄마를"(p284, 해설 中) 잃어버리고 나서야, 엄마의 삶을 떠올려보는 그들의 모습은 사실 내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엄마는 늘 엄마였다. 처음부터 엄마였다. "엄마"를 "엄마"가 아닌  세 글자의 이름을 가진 개인으로써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엄마는 늘 엄마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도시로 나온 뒤의 너는 어땠는가. 너는 엄마에게 늘 화를 내듯 말했다. 엄마가 뭘 아느냐고 대들듯이 말했다. 엄마가 돼서 왜 그래? 책망하듯이 말했다."(p45) "나는 그러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므로  "-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니 모든 일에 답이 생기네, 오빠. 엄마가 원하는 거 그거 다 해줄 수 있었어. 별일도 아니었어. 내가 왜 그런 일로 엄마 속을 끓였나 몰라. 비행기도 안 탈 거야."(p130) 라는 고백은 너무 늦어버린 후회였다. 그 "별 일도 아"닌 것들 때문에 나는 또 얼마나 엄마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가..

 

   하지만  참 다행이다 싶은 건, "누구에게도 아직 늦은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은 내 식의 방법이 이 소설이다."(p296)는  "작가의 말"이다. 너무 늦지 않게 내게 와 준 이 책을, 이 책을 내게 선물해준 분을, 그리고 아직은 부모가 되어보지 못한 내게 "엄마"와 같은 한없이 주고만 싶은 사랑을 느끼게 해 주는 내 조카를, 무엇보다도 지금까지도 내 밥 걱정을 가장 먹이 해 주는 "엄마"를  많이 생각하게 했던 책. 고맙다는 말 아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했던 책. 해피엔딩이 아니라 내 가슴을 더 먹먹하게 했던 책이지만, 나는 아직 늦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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