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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평점 :
휴일 오후를 아주 행복하게 만들어준 책이다. 머리말만 보고도 빠져들게 되는 책이 있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맛있게 쓸 수 있을까 싶어서 몇번이고 감탄하게 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분이 쓴, 바로 "그런" 책이었다! 철없을 땐 여러번 꿈꿨었다. 나 역시도 글 쓰는 것을 業으로 삼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앎이 적고, 큰 바람 못지 않게 큰 게으름은 내 바람과 현실의 간격을 자꾸만 넓혀놓았다. 이 책의 프롤로그를 읽으며 감탄과 좌절 사이를 오갔다. 그리고 책에 빠져들어 휴일 오후 내내 그야말로 "수불석권"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몰입해서 읽을 책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책이 내 손에까지 왔다는 게 그저 감사했다.
사실 얼마전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또다른 책을 한 권 읽었었다. 책을 읽기 전에 너무 큰 기대를 했던 탓인지, 알맹이는 쏙 빠져버리고 그저 예쁘장하게만 만들어낸 책을 휘리릭 넘기며 혹평을 했어야했다. "책"은, 그래, 책이니까!! 좀더 무거워야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짓밟힌 것 같아서 "책에 대한 책"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아..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연세 지긋하신 애서가의 전생애에 걸친 책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다. 글쓴이 김열규 교수는 1932년생. 할머니 품에서 "이바구 떼바구 강떼바구~"(p23)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그는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가히 "책벌레"의 경지를 보여준다.(책벌레라는 말이 다소 버릇없이 들린다. 그런데 그에 해당하는 다른 적당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어 그냥 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앞부분 "책, 내게로 오다"부분에서는 글쓴이의 전생애에 걸친 책읽기와 그의 삶의 이야기들을, 뒷부분 "읽기의 소요유"에서는 책 읽기 요령과 글쓴이가 즐겨읽었던 책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삶 자체가 혹은 글쓴이의 가장 큰 삶의 동반자가 "책"이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많은 책을, 즐겁게 읽어온 그 흔적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읽는 게 별로 성에 안 차면 더러 웃통을 벗어젖힌다. 맨살이 햇살을 받고 바람도 쐰다. 그게 나의 '바람 멱 감기'다. 풍욕風浴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 자세로 책을 펴든다. 책장이 살랑살랑 나풀대면 나는 이내 서방 정토로 들어선다. 읽다 말다, 졸다 말다, 이야말로 일거양득이다. 아니다. 일거삼득이다. 일광욕과 풍욕에 책 읽기까지 겸하니 말이다."(p161)
유유자적. 행복한 노년의 책읽기. 그리고 휴식. 나도 내 삶의 말년을 이렇게 보낼 수 있을까.......고희를 훌쩍 넘긴 분의 글인데도 책을 읽으면서 전혀 세대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책이라는 주제로 말하는 그의 삶의 이야기가, 책에 대한 사랑이, 박학다식함이 배어나는 멋진 책이었다.. 글쓴이는 마음 속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은대로 멋지게 표현해내는데, 나는 멋진 책 한권을 읽고서도 그 감흥을 제대로 글로 옮길 수 없음이 답답할 따름이다. 이건 "연륜의 차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