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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가지 결정 - 한국인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 선택
함규진 지음 / 페이퍼로드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인 108가지 결정이 아니라, 고조선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한국인"이라는 좀더 넓은 범위의 시대를 포괄하는 결정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두루뭉실한 성격의 책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이미 예상해왔던 바이다. 하지만 흔히들 말하는 "반만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인의 역사 속에서 뽑아낸 108가지"밖에" 안 되는 결정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매우 극적이고 자세하고 깊이있겠구나 하는 기대로 책을 펼쳐들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기대로 책을 펼쳐든 사람은 비단 나 뿐일까..?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관점에서) 이 책의 성격을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한국사 전반에 관한 "일별 一瞥"에 그칠 뿐이라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을 준다. 우리 역사에서 아주 중요했던 순간들에 대한 기억을 한 권으로 담아내려는 건 지나친 욕심이 아니었을까.. 이 책에는 BC194년의 위만의 집권으로부터 2005년 부계성 강제조항 폐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에서 중요한 순간이었고, 중요한 결정이었다고 판단되는 108가지의 "결정"에 관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각각의 결정에 대해서는 2-3쪽 정도의 분량으로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각각의 결정을 바라보는 역사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를 아울러 덧붙이기도 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건과 주장에 대해서는 상반된 의견들을 함께 실어서 중립을 유지하며 글을 쓴 점이 눈에 띈다. 하지만 "간략"해서 읽기엔 편했지만, 깊이감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책에 소개된 108가지 결정은 "중요성"의 판단에 대해서도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더러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글쓴이가 이미 책머리에서 양해를 구하고 있긴 하다. "또한 이 결정들과는 다른 목록을 주장하는 사람이나, 각 결정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해석에 이의를 갖는 사람도 있으리라."(p5) 글쓴이에게 미안한 말이 되겠지만 나 역시 "이의를 갖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뭐, "한두 사람이 아닌 100여 명의 역사 연구자들의 뜻"(p5)이라는 데서 "나"는 전문성 면에서나 "쪽수"면에서나 명함을 내밀만한 처지는 못 된다.
하지만 71번주제 "한글의 공식문자화(1894년)"와 94번주제 "한글전용(1968년)" 등의 주제는 하나로 아울러 설명해도 괜찮을 것 같은 주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한글의 중요성은 백번 공감하는 바이지만 108가지 결정 중에 한글에 관한 이야기만 세 꼭지를 할애했다는 건 공감이 덜 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100번 주제 "이병철 반도체 생산 결정(1982년)"과 107번 주제 "수도이전무산(2004년)"등의 주제에 대해서는 다른 주제를 밀어내고 108가지 결정 안에 꼽힐 만큼 "정말 중요한 결정이었나..?"를 의심했던 것은 나의 의식부족 탓이려나..? "중요성"에 대한 가치 판단은 개인차가 크다...! [108가지 결정]이라는 제목에서 무게감과 깊이감을 너무 기대했던 탓인지 다소 아쉬움이 남는 책이기도 하지만, 한국사의 중요장면들에 대한 되돌아봄의 시간은 충분히 제공했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