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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여걸열전 - 우리 민족사를 울린 불멸의 여인들
황원갑 지음 / 바움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여자들의 이야기, 하지만 남자들의 이야기가 더 많을 수 밖에..
[한국사 여걸열전]을 읽었다. 저자는 책의 여러 부분에서 "이 책은 우리나라 여성사를 학술적으로 고찰한 연구서가 아니고 필자는 그 방면의 전문가도 아니다."(p6)면서, 학술적인 논쟁과 이설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지난 30여년 동안 작가로서, 또한 기자로서 내 손으로 모을 수 있는 문헌과 사료를 구해 공부하고, 사진 찍을 수 있는 전국 각지의 유적과 유허를 답사하며 나름대로 취재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p8)한 결과일까, 전문가 못지않은 학술적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한권의 전문역사서로 읽어도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읽은 역사책들이 대부분 조선사에 한정되어 그런지, 책마다 중복되는 내용이 자주 있어 슬슬 지겨워질 참인데다, "어머? 그랬어?"하고 놀라움을 표할만큼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고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의 전역사를 통해 뽑아낸 대표여성 27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27명의 여성은 역사서가 아니라도 "옛날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인물이 대부분이지만, "한주"나 "연수영" 이란 이름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두툼한 책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정사"만 수록하지 않고, 재야사학자들의 시각과 글쓴이의 독자적인 역사관까지 실려있어 두툼했지만, 지루함없이 읽을 수 있었던 책이기도 하다. 고대사는 어쩔 수 없이 연구자의 개인적 상상력이 포함되기 마련이다. 고대사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생각하는 바이지만, 사료가 부족하다보니 누구 말이 더 그럴 듯 한가의 내기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고대의 인물이야기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러 이설(異說) 가운데 누구의 말이 맞는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
이 책을 통해 내가 파악한 글쓴이의 고대사에 관한 관점은 "재야사학"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논란많은 [화랑세기]필사본에 대해 글쓴이는 거의 전적으로 진본임을 확신하는 입장에서 미실궁주의 이야기와 고대의 근친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글쎄. 글쓴이만큼 해박한 역사적 지식을 가지지 못한 터라 그런지, [화랑세기] 필사본에 대해 아직도 반신반의하고 있는 내겐, 글쓴이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글쓴이 의견이 내 것과 다르다고 해서 반발감 내지는 적대감이 들지 않았던 이유는, 역사를 보는 다양한 관점을 살펴보는 재미 때문이었다. 글쓴이 또한 자신의 말만 전적으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고, "이런 이야기도 있다더라"하고 개방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점도 그런 거부감을 없애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글쓴이가 김부식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좀 지나치다 싶을만치 매도하고, 여러 곳에서 자주 강하게 반박하고 있는 점은 다소 지나치다 싶었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모든 여성들이 긍정적인 모습만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현대인의 관점으로 보아도 성적으로 방종했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현대인의 관점"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일지 모르겠다. "현대인인 나의 관점으로"라고 고치는 게 바람직할 것 같기도 하다.) 어을우동에 대해 오히려 "성해방 위해 목숨 바친 희생자"(p415)라고 표현하는 등, 글쓴이가 그 여성들의 대변자가 되어 "변명" 내지는 "변호"를 하고 있는 점은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펼치며 나는 어쩌면 여자들"만"의 이야기를 기대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는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 주변이야기며, 그 옆에 있었던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 더 많았다. 그건 글쓴이 탓이 아니라, 여자들"만"의 이야기를 거의 기록하지 않은 과거의 "잘못" 탓일게다. 하지만 삶의 주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 글쓴이의 의도가 행간에 묻어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