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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1 - 시대를 일깨운 역사의 웅대한 산
한승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얼마전에 돌베개에서 펴낸 우리고전100선 시리즈의 정약용 시 선집 [다산의 풍경]이라는 책을 읽었었다. 다산 정약용의 한시를 짤막한 해설과 함께 쉬운 한글로 옮긴 깔끔한 책이었다. 다산의 글을 읽으면서 그와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좋았다. 좀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중기, 수원화성,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다산초당, 긴 유배생활, 실학의 집대성자. 몇 개의 짤막한 단어로 표현되는 그런 다산에 대한 앎이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면모며, 삶의 모습이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읽게 되었으니, 내겐 [다산의 풍경]과 소설 [다산]이 한 묶음으로 기억될 것 같다. 소설[다산]을 읽은 사람에겐 시선집[다산의 풍경]을, [다산의 풍경]을 읽은 사람에겐 [다산]을 읽어보라고 권하게 될 것 같다.
소설 [다산]은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권 다 꽤 두툼하다. 두꺼운 책을 읽기 시작할 땐 늘 겁을 먹곤 한다. 저걸 언제 다 읽어? 싶어서.. 하지만 읽다보면 의외로 술술 읽힌다. 더러는 두권 세권도 짧다 싶어서 아예 10권쯤의 대하소설로 펴놓지 않은 작가들을 원망하며 책을 덮을 때도 있었다. 두꺼운 분량의 책은 그 안의 소제목 아래 이야기들도 무척 긴 편이라, 가끔 질리곤 했었는데, 이 책의 구성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소제목으로 나눠진 이야기들이 매우 짤막짤막해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문체 역시 간결해 읽기가 더 편했다. 정말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시대를 일깨운 역사의 웅대한 산"(책표지). 이 책을 통해 만난 다산은 정말 큰 산이었다. 시대를 잘못 만난 불운했고, 홀로 높고 푸르다보니 뭇사람들의 시샘을 너무 많이 받았으며, 그리고 너무나 외로웠던 큰 산.
가끔 역사를 들여다보며 사람을 두 부류로 구분해보곤 한다. 그 개인에게는 불행이었을지 모르나 일찍 생을 마감한 것이 그나마 역사에 남긴 최대의 공헌이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고, 너무 일찍 가버렸다는 아쉬움이 남는 사람이 있다. 조선 후기 최고의 성군, 개혁군주라 일컬어지는 정조임금은 후자에 속한다. 정조의 재위시 물 만난 고기마냥, 그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정약용이라는 대학자를 생각하면 말이다. "사나이는 자신을 알아 주는 자를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라고 했던가.. 개혁군주 정조가 그렇게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은 후대의 역사를 통해 보자면 큰 손실이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조선 후기의 역사가 그렇게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일까..? 정약용의 삶이 그렇게 신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 또한....?
정약용과 형제들의 삶은 안타까움 투성이였다. 어려서 천연두에 걸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내침을 당했던 정약종의 외곬으로 흐르는 성격과 천주교로의 심취 또 그로인한 죽음은 가슴 한켠을 짠하게 했다. "살기 위해" 그런 형과는 거리를 두어야했고, 형을 부정해야만 했던 정약용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둘째형 약전과의 애틋한 형제애. 황사영(정약용의 조카사위) 백서사건 연루자가 되어 각기 다른 곳으로 유배를 떠나는 약전과 약용, 죽을 때까지 서로를 만나지 못했으면서도 그리움만 절절했던 두 사람의 형제애는 또 얼마나 눈물겹던지..
예전엔 "유배"라는 형벌이 뭐 그리 힘든 것이랴 싶었다.
"나는 서울에서 귀양을 온 사람인데, 내 그대에게 통사정을 좀 해야겠네. 그대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질 수 없겠는가?"하고 말했다. 그 중년 남자는 정약용의 위아래를 훑어보고 옆으로 피해 도망을 쳤다. 정약용은 그를 뒤따라가며 "그대 집에서 안 되겠으면, 혹시 빈 방이나 헛간이 있고, 밥을 지어줄 수 있는 집을 좀 안내해주려무나. 나 그대에게 서운하게 하지는 않을 터이니..." 하고 말했다. 중년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둥지둥 내달렸다... -중략- 뒤따라간 정약용은 사립문을 열려고 하는 그 남자를 향해 "나는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네, 나를 좀 받아들여주게나" -중략- 그 남자는 쓰러진 울타리를 밟고 마당 안으로 들어가더니 바지게를 벗어 내던지고 방으로 들어가 덜그럭 문고리를 잠가버렸다.(2권 p44). 정적들이 미리 손을 써 유배지에서 거처할 곳을 정하지 못해 곤란을 겪었던 정약용의 모습을 보니 유배란 것이 얼마나 큰 형벌인가 느껴진다. 그렇게 힘든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자포자기하거나 타락해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학문을 연마하며, 백성이 잘 살 길을 연구하고, 수많은 저서를 써낸 다산의 면모는 아무나 어설프게 흉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939년생 노작가의 글을 통해 만난 정약용은 아픔을 가졌지만, 깊고, 높고, 푸른 산이었다. 정약용과 나를 이어준 작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소설적인 재미가 있으면서도, 사실에 기반한 이런 역사소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