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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반양장) ㅣ 펭귄클래식 3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처음으로 읽어보았다. 나의 앎이란 것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가를 책을 손에 들고 생각했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 사실은 어설프게 알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 아닌가..?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던 것 같고, 원작이 다른 문학작품이나 영상매체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들은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영화나 연극 뮤지컬을 통해서 본 적도 없고, 책으로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파편이었다. 심지어 어렸을 때 빌려읽었던 어린이문학전집의 [파우스트]와도 헷갈렸던 기억이 난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손에 쥐니 읽기도 전에 뿌듯한 만족감이 가득하다. 내가 대단한 지식인이라도 된 마냥.. 표지그림이 다소 섬뜩하다. "짐 댄디"의 [손과 나선무늬의 반쪽 얼굴]이라는 작품이란다. 반쪽짜리 얼굴은 인간의 양면성 지킬과 하이드를 상징하는 모양이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원작자의 이름도 처음 알았다. 속표지에 실린 2대 8 가르마에 쌍꺼풀이 짙고, 콧수염이 인상적인 아저씨의 사진을 보며,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라는 그의 이름을 다시 한번 되뇌여본다. 1850년대에 태어난 그를 2008년을 살고 있는 내가 생각하고 있을 줄, 에든버러에서 태어난 그를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내가 생각하고 있을 줄 그는 짐작이나 했을까. 그의 간단한 이력과 작품 소개를 보다가 [보물섬]이란 단어에 눈이 번쩍 띄였다. 어렸을 적 tv만화로 보았던 그 보물섬의 저자가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쓴 저자일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놀랍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이제서야 발견한 나의 호들갑인지도 모르겠다만..
책에는 [지킬박사와 하이드], [시체도둑], [오랄라], [꿈에 관하여]라는 네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 그 중에서 [꿈에 대하여]는 축약본으로 실려있다. 그리고 책의 도입부에는 서문을 통하여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관하여 간단히 설명하고 있고, 책의 끝부분에는 "고딕소설과 빅토리아 시대의 법의학에 대한 연구로 웨일스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로버트 미겔의 [지킬박사 분석 - 지킬박사의 실험과 하이드로의 변신에 관한 과학적 배경 문헌]이라는 다소 딱딱한 작품해설이 실려있다. [시체도둑]과 [오랄라], [꿈에 관하여]는 같이 실려 있는 줄도 몰랐던 책이었으니, 덤으로 생각하고 먼저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이렇다. 이야기는 주로 지킬박사의 친구 변호사 어터슨의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사회적인 존경과 명성을 얻고 있는 그의 친구 지킬(50대의 점잖고 중후한 지성인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리고 지킬의 피후견인으로 갑자기 등장한 "인정머리라고는 없는 인간의 얼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무덤덤한 엔필드의 마음에 계속되는 증오를 불러일으킨 그런 얼굴"(p41)을 가진 젊은 하이드. 길에서 마주친 어린아이를 짓밟아버리고, "백발의 품위있는 노신사"(p53) 댄버스 커루경를 타당한 이유없이 엄청난 구타를 가해 숨지게 하는 등, 도덕적인 판단력을 잃어버린, 악의 상징 같아 보이는 인물이다.
하지만 충격적인 결말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그 둘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 처음엔 지킬박사가 만들어낸 약품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곤 했던 하이드씨는 오히려 지킬박사가 불러내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추악한 이면 때문에 자살을 택하는 지킬박사. 비극적이다. "그 진실의 일부를 발견했기에 나는 그렇게 무시무시한 파멸로 치닫게 된 것이다. 그 진실이란, 인간은 진정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이다. 내가 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내 지식이 그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p106) 지킬박사는 둘로 분열된 자신의 자아에 대해 "둘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이야기를 뒤집어 보면, 선악의 양 극단이 결국엔 한 인간 속에 내재하고 있는 하나임을 생각케 한다. 예상보다 짤막한 작품이었지만 그 짧은 글 속에서 많은 생각할꺼리를 던져주는 작품이었다. 인간인격의 다중성. 어느 것이 진실된 지킬박사의 모습일까. 극단적으로 선하거나 극단적으로 악한 인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 일정한 가치판단의 잣대를 들이밀고 그것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감춰진 하이드씨가 존재할 지 모른다.
고전을 읽는 재미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수없이 모방되고 다시 이야기되는 그 원전을 읽었다는 뿌듯함 같은 것. 좋은 책을 읽었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던 기분좋은 시간이었다.
(함께 실린 [시체도둑]과 [오랄라] 역시 흥미롭게 읽었지만,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시체도둑은 그렇다치고 오랄라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을까? 근친혼의 유전적인 위험일까..? 다음에 다시 읽을 것을 기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