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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유령
폴 크리스토퍼 지음, 하현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책을 많이 읽는 편은 못 되지만,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종종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소위 "명화"라고 하는 서양미술 작품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많아, 그 빈틈을 메꿔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 내지 욕심이 있다. 그래서 최근들어서는 서양미술작품을 소개하는 글이거나, 미술관 기행 같은 책들을 몇 권 읽기도 했고, [베르메르 vs 베르메르] 같은 화가이름이 들어간 소설을 읽기도 했다. 이 책 역시 그런 기대 때문에 펼쳐든 책이었다. 하지만 정말 솔직히 얘기하자면 이 책은 눈요깃거리 가득한 헐리우드 영화 한편을 본 듯한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심심풀이용 혹은 시간 때우기용 헐리우드 영화는 아니었다.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내게 이 책은 시간을 너무 많이 투자해 읽은 책인데..
"[고마워요, 소울메이트]의 작가 조진국 "영화 보듯 단숨에 읽은 소설""이라.. 책 띠지에 그렇게 광고되어 있다. 작가로 분류되는 사람들과 그냥 일반 독자인 나의 사고 체계는 너무나 다른 모양인지 이 소설이 어디 "단숨에 읽"을 만한 그런 책인지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이 책엔 결정적으로 내가 기대했던(내 마음대로 기대했기에, 불평은 속으로만 해야하는 걸까..?) 렘브란트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대충 이렇다. 피오나 캐서린 엘리자베스 라이언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여자 주인공, 그 이름을 간단히 하자면 "핀"이다. 아버지가 눈감아준 어머니의 불륜으로 태어난 듯한(? 그녀의 생부가 누구인지는 정확치 않다) 그녀와 생부로 추정되는 부하르트의 친척이 되는 영국 귀족 빌리는 부하르트로부터 유산을 물려받게 된다. 그 유산이란 것이 렘브란트의 작은 그림 한점, 그리고 한 채의 저택과 바타비아 퀸 호라는 배 한 척. 그 유산을 상속받기 위한 과정에서 영국에서 네덜란드, 남태평양의 섬으로 이어지는 모험담을 담은 책이라고 간단히 정리하면 되려나...?
하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련성이나, 사건의 개연성이 매번 "왜?"라는 의문을 자아내게 했다. 그리고
"Cack-arse Hamshanker! 내게 diareaky, tam-tit fannyBowz를 달란 말이야!" 그는 갑판실 바닥에 있는 버섯 모양의 배기구를 걷어찼다. "Yah Hoor! Yah pok-pok Ang oki mo amoy ang pussit."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p60) 이런 문장은 도대체 어떤 의미로 이해해야하는 건지 나로선 감당이 불가능이었다. 이처럼 무작정 튀어나오는 출처불명의 언어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문맥을 고려해 그 의미를 해석하라는 역자의 뜻인 듯하지만, 도대체 저 사람은 뭘 달라고 하는지 나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역사와 예술을 넘나든다. 칙릿과 미스터리를 뛰어넘는다."는 책 띠지의 말,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너무 넘나들고 너무 뛰어넘어 나는 읽어내기 힘들었다. 성질에 안 맞다고 고용인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펴들고 뛰쳐나와버리는 장면, 태풍에 난파되어 위험한 섬에 홀로 떨어진 주인공이 불을 피우고 살기 위한 준비를 하는 장면, 엄청난 보물이 숨겨진 남태평양의 섬에서 생부(라고 여겨지는)를 만나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따로이 숨겨둔 엄청난 양의 보물로 두 주인공이 세상을 여유작작하게 살아갈 것 같은 장면의 엔딩까지.. 너무나 볼꺼리에 치중한 헐리우드 영화화를 염두에 둔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은 것? Chick-lit이란 단어가 "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속어 chick와 문학 literature를 결합한 신생 합성명사"라는 검색 상식정도랄까...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