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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인열전 - 파격과 열정이 살아 숨쉬는 조선의 뒷골목 히스토리
이수광 지음 / 바우하우스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역사속 사람이야기를 좋아한다. 나에겐 숙제같은 "역사". 소위 말하는 정사류의 책도 좋아하지만,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비주류"의 역사이야기에 더 관심이 가곤 한다. 예전엔 나의 관심 밖이었거나, 정보의 부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요즘들어 유난히도 사람 냄새 나는 역사책이 많이 보인다. 제도나 정책변화의 나열이 아닌, 그냥 사람이야기..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인간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잡인열전이라.. 왕이나 위인이 아닌 잡스러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 "잡스럽다"는 말은 좀 그렇고,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새로이 제목을 붙여보자면 "기인열전奇人傳"도 무방할 듯 싶다. "파격과 열정이 살아숨쉬는 조선의 뒷골목 히스토리"라는 소개가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잘 대변해줄 듯하다. 그동안 역사서에선 볼 수 없었던 낯선(? 나만 몰랐던 건가..?) 인물들의 가히 파격적이고, 때론 지나칠 정도로 열정을 소유했던 그들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 책이다.
책을 손에 들고서는 살펴봤다. 혹 내가 아는 이름이 있을까 하고.. 책에서는 24명의 조선시대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조선 최고의 잡인들>과 <천하제일의 잡인들>로 크게 구분하고 있는데, 그 구분의 기준이나 의미는 정확히 모르겠다. 평범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절대 아니고 "조선 최고의"라는 수식이 붙거나 "천하제일의"라는 수식이 잘 어울리는 그 사람들 가운데, 내가 아는 이름은 "장승업"이라는 "천하제일의 광인화가" 한명 뿐. 아차. 또 있구나 "천하제일의 수전노"라는 수식을 달고 있는 "자린고비". 하지만 자린고비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고, 자린고비편에서는 악착같이 "알뜰했던" 몇몇 인물을 소개하고 있으니, 정확히 알고 있었던 이름은 장승업 하나 뿐이다.
내가 살고 있는 2008년 현재도 독특하고 개성있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본 조선의 모습은 가히 놀랍다. 내가 알고 있던 소시민적이고 소박하고 평범한 조선시대의 민중이 아니라, 놀라움을 자아내는 특이한 인물들. 이 책에 소개된 24명의 인물을 선악의 기준으로 구분해 보자면, 좋은 쪽으로 분류될 사람은 많지 않다.
"영조 때 평안도 감영의 천류고를 관리하는 고자庫子(창고지기 노비)였다"(p13)는 장복선과 천연두의 치료를 위해 애썼던 의원 이헌길 외에는 대체로 부정적인 면에서 "최고"를 영위했던 인물이라 안타까웠다. 장복선은 처지가 딱한 사람들을 위해 천류고의 재물을 사용했으며, 그가 가진 것까지 내어준 의로운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노비였던 그는, 관청의 재물을 사사로이 사용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지만, 그에게 도움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의 호소로 석방되었다는 훈훈한 이야기. 그리고 이헌길이라는 의원은 천연두의 치료를 위해 애썼고, [마진기방]이란 책을 저술해 천연두 치료에 도움을 주었다는 인물이다. 두 인물을 보면서,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그외의 인물들은 이상한 쪽으로 재주가 발달한 인물들이 많았다. "조선 최고의 책 읽어주는 남자, 이업복"은 그 재주를 이용해 부녀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으며, 파계승 선탄의 이야기는 혀를 차게 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몇몇 인물은 "야한 쪽의 재주"가 너무 발달한 인물들이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성관념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100번도 넘게 과거 시험에 "대리"합격한 유광억이란 인물 역시 좋게 볼 수만은 없다. 그를 이용해 과거에 합격한 위정자들의 모습 또한 좋게 볼 수 없어서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인간세상, 참 요지경이다. 정숙하고 점잖은 사람들만 살았을 것 같은 조선의 이면을 들여다보니,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르지 않았다. 다양한 인물들을 소개하다 보니, 깊은 사연까지는 읽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조선시대를 살아갔던 서민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을 제공해준 책이었다.
잘못된 글자?
p93 마지막줄 박대평 -> 박막동?
p133 <명조실록> -> <명종실록>?
p186 꽹가리 -> 꽹과리 ?
p189 포복졸도-> 포복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