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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 자연아 자연아
이동진 지음 / 깊은책속옹달샘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핑계는 늘 조카다. 어린이 책을 보게 되는 핑계 말이다. 어린이용 책, 그러니까 주로 동화책이 되겠다(그러고보니 "어린이용"보다는 "유아수준"의 동화책을 더 많이 봤다.). 잔뜩 기대하고 펼쳐든 "어른용(?) 책"이, 글씨만 빽빽하게 들어서 있을 뿐, 내용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재미를 남기지 않으려면, 뭔가 지식이라도 남기든지.. 이도저도 아닌 책들이 아주 가끔 있다. 그에 비하면 최근에 조카를 핑계로 함께 본 동화책이나, 지금은 다섯살짜리 내 조카가 이해 못하는 초등학생용 책을 펼쳐보면 반드시 뭔가가 남더라. 초등학생용 책은 재미와 함께 "지혜"를.... 가끔은 내가 안다고 믿어왔던 것들조차 제대로 안 것이 아니었음을 초등학생용 책을 보고 깨달을 때가 있었다. 유아수준의 동화책은 권선징악적이지만 교훈을 남기거나, 재미를 남긴다. 것도 아니면 글자보다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그림을 보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었고, 혹은 그림 속 캐릭터들이 되어보는 간접체험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어릴 때의 책읽기 백번을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나 자신이 어린 시절에 책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으므로 안다. 어린 시절 채우지 못한 독서의 빈자리가 얼마나 크게 남는지를....^^
노을.. 어렸을 때부터 참 좋아했던 노래다.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요즘도 창작 동요제가 개최되는가..? 어렸을 땐 라디오나 tv에서 창작 동요제나 어린이 동요프로그램이 참 많았던 것 같은데.. "바람이 머물다간~"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 "노을". 1984년 mbc창작동요제 대상을 받은 노래란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교과서에도 실렸었던지는 기억에 가물거린다. 하지만, 어린 시절 정말 많이 불렀던 기억이 난다. 하루에 몇 번, 정해진 시간에만 버스가 다닐 정도로 시골에서 자란 "나"이기에, 내 감성의 많은 부분은 시골의 정서다. 덜덜거리는 경운기소리를 알람시계소리 삼아 일어났고, 어른들이 추수하는 들판에서 청개구리나 메뚜기를 잡으러 뛰어다니기도 했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숨바꼭질을 하기도 하고, 여름엔 동네 개울에서 수영도 했더랬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노라니 정말 오래전 이야기 같다. 요즘 시골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못 알아들을테다. 그렇다고 내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불과 십몇년전엔 그랬었다!! 동요 "노을"을 나의 시골정서와도 통하는 부분이 많은 노래다. 그래서 더 즐겨 불렀고 더 정겹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동요 "노을"을 동화책으로 구성한 거라는 소개글에 정말 기대했었다. 그리고 이 책은 기대했던 것만큼 예쁘다. 목판화로 만든 그림책. 꾸미지 않고 투박한 옛날 느낌을 주는 그림책이라면 이 책에 대한 설명이 될까..? 해질 녘에 붉은 노을을 바라보면서 불렀던 "노을"의 느낌이 그대로 담겨있다면 어떨까...? 어렸을 때도 이 노래를 부르면서 "그림 같은 노래"라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이번엔 노래를 그림으로 그려냈구나. 책에 나오는 지게 지고 소를 모는 그림은 내 기억엔 없다. 그 그림은 오히려 내 부모님 연배에 더 어울리는 그림일 것 같다. 하지만 그 외의 그림들은 내게도 참 푸근하고 친숙하다. 노을 질 무렵의 시골풍경. 쓸쓸하면서도 풍성한 느낌을 주는 그 풍경. 어린아이 그림책을 들고선 내가 더 좋아서 이것저것 살펴보는데, 아직 만으론 네 살도 채 안된 조카도 마음에 드나 보다. 이것저것 물어대는 걸 보면..특히나 경운기 그려진 모습을 보고서는 이건 뭐다고 아는 체를 하는 걸 보면.. 그리고 어느 새 책에 등장하는 어린아이 캐릭터는 자신의 이름으로 바꿔부르고 있다. "나는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왜 나무에 앉아있는 거야?" "할머니는 어디가?" "할아버지는 자전거에 무슨 선물 사서 오는 거야..?" "허수아비는 왜 웃어?" 끊임없이 조잘조잘 물어대고,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기 마음에 들게끔 이야기를 꾸며내고 상상해서 이야기를 다시 들려준다.
책의 여백처럼 내 조카도 마음에 여유를 담고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묻고 관찰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불러주는 노래를 따라하려고 고모의 입을 자세히 쳐다보고 있다가 어설프지만 따라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림책을 보는 행복함이 참 좋다. 좋은 그림책 많이 보면 어린 조카처럼 나도 순수해질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