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유산
이명인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소개글을 읽고서 예전에 읽었던 소설가 박완서의 글이 떠올랐다. [오만과 몽상]이라는 이야기에서였나.. 성경의 시작부에도 그런 부분이 나왔던 것 같은데.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하는 이야기 말이다. 몇 해 전에 읽었던 터라 기억이 선명하지 않아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독립운동가는 도배장이를 낳고, 도배장이는 미장이를 낳고,```````````````` . 친일파는 의사를 낳고 의사는 사업가를 낳고, 사업가는`````````````````." 다. 그 이야기가 너무 그럴 듯하고,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인 듯해서 "맞아 맞아." 맞짱구를 치며 읽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책을 펼쳤다. 

   책을 덮고 나니, 아쉽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대하소설의 줄거리를 가지고 있으나 한 권이라는 짧은 분량으로 이야기가 끝나버렸다는 점이.. 마치 대하소설의 요약본을 본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길지 않은 분량의 이야기라 가지는 장점도 있다. 이야기의 전개가 무척 빨라 책을 읽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의 극적 반전까지..

  1부 이야기는 일본이 한반도에서 정치적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러일전쟁에서부터 시작된다. 경반(京班)으로써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동족촌 고라실의 이()가와 그런 고라실에 비해 세는 약하지만 결코 쳐지지 않는 향반(鄕班)으로써의 자긍심을 지닌 동족촌 너븐들의 김(金)가. 각각 동족촌을 형성한 이들은 이웃마을에 접해 살면서 사사건건 대립하면서도, 싸우면서 정든다고 애증이 교차하는 그런 관계다.  자손이 귀한 고라실의 종손 정우, 영우 형제가 독립운동에 투신, 옥에서 죽음을 맞게 되고, 작은 집 식구들마저 중국으로 건너가버림으로써, 고라실의 가는 멸문의 지경에 처한다. 그리고 고라실과는 달리 집안에 내려오는 한 어린 가보 목조 원앙 덕분에 자손만큼은 풍성했던 너븐들 金가의 가문 역시, 목조 원앙을 도둑 맞은 뒤로 가세가 기울어진다. 일제강점기라는 불행했던 시대 탓에 이루어질 수 없었던 정우와 난실의 사랑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가문을 이어 나가는 것을 지상최대의 과제로 여겼던 고라실의 종부 백씨의 삶 역시 안타까웠다. 

   2부 이야기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2007년 현재의 이야기다.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너븐들의 종손 현진과 고라실 종손 필준의 딸 인영.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의외다 싶었다. 예전에 읽었던 [오만과 몽상]의 이야기가 너무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독립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옥에 갇혀 그 속에서 죽었던, 고라실의 이가의 후손 치고는 필준은 너무나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중소기업 하나쯤은  좌지우지 할 수 있을만한 대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말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성공한 "사업가"를 낳다니 의외의 결과다 싶었다. 이런 게 적지않은 세월의 차를 갖고 있는 두 작가의 시각 차이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3부. 3부에서의 반전을 읽고 있노라면 결국 두 작가는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성공한 "사업가"를 낳을만큼 바른 길을 걸어온 우리 역사가 아니다는 씁쓸한 결론을 남기는 반전이기도 하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5권이나 10권즈음의 대하소설로 만들어도 재미있는 이야기일 듯 하다. 긴 이야기를 한 권에 넣으려다 보니 많은 부분이 작가의 설명으로 서술되고 있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등장 인물 하나하나가 다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인물이고, 그 사연들을 하나하나 들춰내어 살펴보는 것 또한 또다른 재미를 줄 텐데.. 아무래도 짧다는 점이 아쉽다. 작가가 다음에 이 이야기를 좀 더 살찌워서 들려주길 기대해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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