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 - 조선 천재 1000명이 죽음으로 내몰린 사건의 재구성
신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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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책은 집중해서 읽어야 내용이 머리 속에 쏙쏙 들어올 텐데, 띄엄띄엄 게으름 피우며 읽었더니 머리 속이 복잡해져 버렸다. 이 책에서 말하는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은 국사교과서에서는 '정여립 모반사건'이라고 일컫고 있는 바로 그 사건이다. 국사 교과서 말이 나와서 말인데 현행 고등학교 국사교과서(7차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2002년 3월 판) 찾아보기를 살펴보면 '정여립'이란 인명이 교과서엔 두번 등장하고 있다.

  "동인은 정여립 모반 사건 등을 계기로 온건파인 남인과 급진파인 북인으로 나뉘었다."(-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p106)

  "동인은 정여립 모반 사건 등을 계기로 이황 학파의 남인과, 서경덕 학파와 조식 학파의 북인으로 분화되었다."(-고등학교 국사교과서 p294)

  두 번 다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분화된 계기가 "정여립의 모반 사건"이었음을 설명하고 있을 뿐, '정여립 모반 사건'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국사 과목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던 탓인지, 정여립이란 이름도 정여립 모반 사건도 내겐 그다지 기억에 남는 게 없었다. 정여립 모반 사건에 관해 거의 아는 게 없었기에, 조선 시대의 정치적인 사건이라면 으레 4대 사화가 가장 먼저 떠오르곤 했는데, 책에서 말하는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이 "정여립의 모반 사건" 이라니 나의 무지를 자책하며 책을 펼쳐 들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제1부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과 제2부 비망록-기축옥사의 숨겨진 진실을 찾아서라는 부제로..책을 꼼꼼히 읽지 못했기에 책 내용에 대해 함부로 왈가불가 하기 겁나지만, 1부의 내용을 토대로 보면 정여립 사건의 요지는 이러하다. 스스로 서인 이율곡의 제자를 자처했던 정여립. "뿐만 아니라 선조 역시 기질이 일정치 않은 사람이라며 미워했기 때문에 정여립은 결국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그는 실의와 불만을 달래며 자기 주변에 모여든 무사, 선비들과 대동계를 만들어 매월 보름에 향사례를 베풀었다. 이 말을 들은 조헌은 정여립이 반드시 역모를 꾀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이처럼 정여립에 대한 서인들의 증오와 선조의 철저한 불신, 그리고 조헌의 독설이 송익필로 하여금 안심하고 정여립을 모함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p205).   정여립이 실제로 모반을 꾀했던가..? 그렇다면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이끌고 왜 크게 난리조차 한번 피워보지 못했던 것일까..?  모반을 꾀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왜 뭐가 떳떳하지 못해서 자살로(여기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한다.) 생을 마감했던가?

길삼봉은 누구인가? 당시에 지목된 대로 최영경인가?  "기축옥사가 일어난지 400여년이 지났다. 그러나 수많은 논쟁이 있었는데도 아직 진상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기축옥사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들을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동인들이 집권하던 시기에 동인이었던 정여립이 굳이 모반을 꾀할 이유가 있었겠는가?"라는 의문 - 중략 - 둘째는 "기축옥사는 날조된 역모 사건"이라는 시각 - 중략 - 셋째는  "정여립의 억울한 죽음"을 변호하는 데 역점을 둔 것이고, 넷째는 정여립이 천하는 공물이니 임금의 아들이 아니라 누구든 자격 있는 자가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라고 주장해 혁명을 모의하다 실패했다는 관점이다."(-p331)의 논쟁거리처럼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잘 모르겠다. 정여립 모반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지... 하지만 정여립 사건의 파장과 사건처리과정에서의 문제점들이 이후 역사에 큰 영향력을 미쳤음을 처음으로 생각케 한 계기가 되었다. 다음에 기회가 될 때 꼭 한번 다시 집중해서 꼼꼼히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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