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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의 검은 표범
아모스 오즈 지음, 허진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을수록 내가 정말 많은 것을 모르고 지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그래서 책읽기를 간접경험이라고 하는구나.
또 한번 깨닫게 해 준 책 [지하실의 검은 표범].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의 작품이라길래 귀가 솔깃해진 것이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랄까.
거기다가 하나를 덧붙이자면, 아직 내겐 조금 낯선 국가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서,
이스라엘의 사람들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책을 펼쳐 들었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건국 즈음의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작가가 1939년생이니,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주인공은 프로피, 열두살 난 유대인 소년, 이야기 중간중간에
현시점에서의 작가가 종종 개입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주인공 "프로피가 살고 있는 시대와 장소는 히브리 국가 이스라엘이 탄생하기
직전 영국 위임통치 시절의 예루살렘"(책228 옮긴이의 말 中).
영국에 대한 적대감이 열두살 프로피를 통해 자주 표현되는데,
처음엔 그 이유를 잘 몰라 해맸다.(서방국가와 이스라엘의 관계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 역시도 "우호적"이라고 생각했었기에)
하지만 영국의 강압적인 위임통치와 아랍과 이스라엘에 대한 일관되지 못한
정책(예를 들자면, 맥마흔선언과 밸푸어선언처럼)을 체험하면서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당시 영국에 대한 적대감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가끔 책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를 영상으로 표현한다는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를 상상하곤 한다.
문장 하나하나가 섬세하고, 가슴에 와 닿을수록 책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이
어려울 거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예를 들자면 이 책 128쪽의 이런 문장 말이다.
"그리고는 '신경쓰지 말아줘'라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붉혔는데,
자신의 얼굴이 빨개지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한 듯 얼굴이 더욱 더 붉어졌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차례 거론되어 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이 책을
읽어서이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작가의 문장력에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은..
"나는 여전히 단어를 쫓아 적당한 자리에 놓고 있다."(본문 p54)는
그의 말처럼 문장 하나하나가 간결하면서도 매우 수사적이고,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드는 표현들이 많았다.
내가 헤브라이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다면,
원문으로 책을 읽는 재미도 꽤 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아직도 종결되지 않은 중동의 분쟁 한 번 더 생각해보았다.
한편으로는 대단한 민족이란 생각, 또 한편으론 안쓰러운 민족이란
생각이 드는 유대인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았다.
동유럽에서 나고 자라 예루살렘으로 이민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은 작가의 나이 열두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아모스 오즈의 어머니와
같은 또다른 유대인의 모습을 생각해 본 계기도 되었다.
이 책이 내겐 많은 생각과 간접체험을 하게 해 준 참 괜찮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