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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굴기 강대국의 조건 - 일본 - 21세기 강대국을 지향하는 한국인의 교양서
CCTV 다큐멘터리 대국굴기 제작진 엮음 / 안그라픽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일본이란 나라.
초등학교를 다닐 때, 내가 느꼈던 일본은 그저 "나쁜 나라", 잘은 모르겠지만 어른들 말을 따르면 우리 나라를 너무도 못 살게 군 나라.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를 시기상 구분할 줄도 몰랐던 내게 그저 증오심을 갖게 했던 나라였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생각했던 일본은 소니 카세트처럼 비싸고 견고한 전자제품을 잘 만드는 나라. 대표적인 정치인이란 사람들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어거지를 쓰는, 말이 안 통하는 나라. 그리고 그 즈음 "-는 없다"는 책에서 읽고는 떠올리게 된 몇몇 부정적인 이미지들로만 내 머리속을 꽉 채우는 그런 나라였다. 그리고, 또 일본은 갑자기 그야말로 난데없이 16세기에 한번 그리고 19세기 후반들어 또 한번, "뿅"하고 등장해서는 이웃나라를 못살게 군 전쟁광(狂)들의 집단 정도로 생각했었던 게 사실이다. 16세기 이전의 일본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부터 19세기까지 그들은 무얼하고 살았었는지는 알려주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나 또한 별 관심이 없었다.
이후에 대학에서 일본사 강의를 들으면서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대강의 역사나마 알게 되었다. 내 관심의 부족 탓이었던지 아니면 실제로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역사 관한, 그리고 일본이란 나라에 관한 설명서를 찾기가 어려웠다. 일본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해왔었는데, 마침 이 책 [대국굴기, 강대국의 조건-일본]편을 읽을 수 있게 된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강대국의 조건]시리즈는 중국 CCTV에서 제작한 12부작 다큐멘터리 <대국굴기> 제작에 참여한 작가들이 직접 쓴 책이다. 다큐멘터리 대국굴기 시리즈를 보지 못한 터라 정말 꼭 한번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책. 그 중에서도 일본 편.
책의 시작은 에도만 우라가 항에 구로후네(흑선)가 등장한1853년 일부터 소개되고 있는데 간간이 그 이전의 역사, 즉 막부시대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이해를 돕고 있다. 역사책은 자칫 딱딱하고 지루해지기 쉬운데 이 책엔 간간이 흥미로운 사진자료와 그림, 그리고 여러 전문가의 인터뷰를 함께 실어 책 읽는 속도감을 높여주었다.
19세기 중반까지 문을 닫아 걸고, 서양과 외교관계가 없었던 것은 중국이나 조선, 일본이 비슷하다.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포함(砲艦)외교로 개국이 이루진 것 또한 비슷한 사정이다. 그런데 일본은 어떻게 그 짧은 시기를 지나서, 피지배자에서 지배자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의 기본적인 관점은(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중국과 조선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그들의 발달된 문물의 외형만을 수용하려 했다면(중체서용이나 동도서기와 같이), 일본은 그 내부의 정신까지도 받아들이려 했다는 점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시모다 항에 정박 중이던 미국 군함 미시시피호에 승선을 부탁하며, 세계를 둘러보고 견문을 넓히고 싶다면 함대를 따라 미국으로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한 두 사람, 요시다 쇼인과 사쿠마 마쓰타로 처럼 일본인들은 서양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그들을 배우려는 생각이 컸던 모양이다. 1862년의 유럽 사절단 파견, 토막운동(막부 토벌)과,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하던 덴노에게로의 왕정복고. 메이지유신.. 그리고 1871년 책의 표현대로 "일본역사에 한 획을 긋는 먼 항해"였던 이와쿠라 사절단의 구미시찰. 조선이나 중국이 보수를 고집하고, 서양세력에 힘겨워하고 있을 때 일본은 오히려 서양으로 한 걸음 더 내디딘 것 그것이 그 이후 역사의 물줄기를 크게 틀어놓지 않았나 싶다. 서양의 물질 문명이 동양의 그것보다 우수함을 빨리 인정할 수 있었던 일본인들 그들의 빠른 판단력과 적응력은 본받을만한 것이리라. 역사에는 "만약"이 성립될 수가 없다는데, 책을 읽으면서 "만약 조선이 일본만큼이나 발빠르게 나아갔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자꾸 남는 것도 사실이다. 또 하나, 일본이 바로 이 때, 서양 각국을 둘러보며 그들의 발달된 문명을 보고 배워 돌아와서, 외부를 향한 날카로운 칼날을 연마하는 쪽이 아니라, 내부의 성장에만 주력했더라면, 동아시아의 불행했던 과거사는 없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발표했다는 수상소감 "애매한 일본과 나"는 과거에 대한 반성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강대국의 조건]이란 제목으로 살펴본 일본의 역사. 내겐 꽤 의미있는 책이었다. 시리즈의 다른 나라편도 얼른 구해서 읽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