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갱 : 원시를 갈망한 파리의 부르주아 ㅣ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 9
피오렐라 니코시아 지음, 유치정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7월
평점 :
고갱.
이름이 비슷해서였을까..? 어렸을 땐 고갱과 고흐라는 두 인물이 무척 헷갈렸었다. 이후에 좀더 지각력이 생기고 나서는 "고흐"라면 귀를 자르고 붕대를 감은 자화상이던가(작품의 제목은 잘 모르겠다.) 그 그림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고갱"이라면 <황색 예수가 있는 자화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물론 <황색 예수가 있는 자화상>이란 제목은 몰랐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귀를 자른 고흐의 자화상은 스스로 귀를 잘랐다는 그 사연 때문인지, 뭔가 거칠고, 광폭할 것만 같은 인상이 너무 선명하게 남는다. 고흐의 그림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생애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자화상 한 점이 내게 준 인상이 너무 강해서 "고흐"라면 불행했던 사람, 삶을 힘들게 살았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황색예수가 있는 자화상>의 고갱은, 지적이고, 부유해보이고, 왠지 오만할 것 같은 인상, 인생에 있어서 별 불행을 겪지 않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성격, 그림, 인생역정은 내가 생각했었던 것만큼이나 상반된 것이었을까..?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 : 고갱]. 표지가 무척이나 강렬한 인상을 준다. 내가 <황색예수가 있는 자화상>에서 느꼈던 그의 인상만큼이나.. 행복한 삶의 기준이란 누구에나 다른 것이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행복의 조건으로 꼽는 안정된 가정생활과, 어느정도의 경제적 기반을 그 기준으로 본다면 고갱은 20-30대까지는 비교적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비교적 부유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고, 증권중개소의 직원이라는 안정되고 보수가 좋은 일자리를 얻어 생활했고, 젊고 아름다운 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우리가 결혼할 무렵, 나는 그가 예술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어요. 결혼하자마자 그는 이따금 콜라로시의 작업실에 가거나 일요일마다 그림을 그렸지만 직업화가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책18쪽)라는 그의 아내의 말마따나 그가 그대로 살아갔다면 그는, 평범한 한 사내로 살아갔을지 모르겠다. 고흐 스스로가 그런 삶에 만족하고 안주했다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그의 그림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겠지..? 하지만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은 숨길 수 없는 것이었나 보다.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된 그는 예술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고, 가정과 직장생활에서도 소홀해졌다. 이후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여러 곳을 전전하는 그. 고흐와 몇 개월간 함께 생활하기도 하지만 동일한 모델 "지누부인"을 그린 너무나 다른 느낌을 주는 두 화가의 그림처럼 두 사람은 성격도, 그림에 대한 생각도 일치하지 않았던지 고흐가 스스로 귀를 잘라버리는 비극으로 파탄이 난다. 이후 이국적인 것에 대한 동경과 먼 나라로 떠나고 싶은 그의 욕구로 그는 타히티로 떠나고 거기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린 너무나도 독특하고 강한 느낌이 남는 그림들을 그린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는 쉰다섯이란 많지 않은 나이로, 몰핀 과다 사용으로 인한 심장발작으로 죽었다. 그의 죽음을 지켰던 이들은 늙은 마오리족의 주술사와 개신교 목사..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두 사람이 보여주는 것처럼, 고갱은 언제나 그 둘 사이에서 몸부림쳤다."(책118쪽)..
책을 덮으면서 "고갱은 과연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오히려 안정된 가정 속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살았더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는 그림으로 인해 오히려 더 힘들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게 그의 운명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언가에 도전하기를 겁내는 나의 우유부단함 때문일까...? 내가 두 자화상을 보면서 상상했던 것만큼 고흐와 고갱의 삶이 상반되지 않았음을.. 고갱 또한 나의 상상만큼이나 부르주아적이지 않았음을 알게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행복에 대해, 그리고 한 사람의 예술가적 소명에 대해, 또다른 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