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9.25
구로CGV, 동생과 조조로 보다
처음부터 호감을 가진 영화였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우리 본당을 좀 많이 좋아한다
내가 다니는 구로3동 성당은 교구 소속이 아니라 수도회 소속이라
신부님들이 좀 별나다
또 살레시오 수도회가 청소년 사목 활동을 많이 하는 곳이라
신부님들이 재밌다
영화는 살레시오 수도회 신부님 이야기이다
KBS에서 만든 다큐영화고 이금희가 나레이션을 했다
전에 MBC에서 만든 <행복한 울릉인>이 생각났다
주인공? 중심인물은 이태석 신부님이다
지금은 세상에 없다
이태석 신부님은 암으로 올해 초 세상을 떠났다
신부님은 수단에서 사목활동을 하셨다
그리고 영화는 신부님이 수단에서 활동하신 이야기이다
이태석 신부님은 의대를 나왔고, 못다루는 악기 없고, 14살 때 작곡도 하고 뭐 아주 다재다능하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신부님이 될 생각을 품을 정도로 바르게 컸다
그래서 하느님이 일찍 데려가신 걸까?
어쨋든 영화는 신부님의 다재다능함,을 자주 과장하듯 보여줘서 좀...낯간지럽기도 했지만, 괜찮다
신부님이 수단에서 하신 일을 보면 그보다 더한 과장도,아깝지 않다
수단은 위험한 곳이다
북수단과 남수단으로 나뉘어 아직도 내전 중인 나라이다
특히 남수단은 대부분 아프리카 원주민들이어서 모든 환경이 열악하기 그지 없다 아이들은 소년병으로 끌려가고 사람들은 내가 무엇때문에 아픈지 모른채 앓다 죽는다
신부님이 그곳에서 하신 일은 무척 많다
졸리닥터, 의사로 밤낮없이 진료하고 주기적으로 왕진을 가서 거동이 불편한 환자도 돌봤다
수단은 아직도 총격전과 부족간의 다툼이 잦아 매우 위험한 곳이다
(촬영 중에도 한차례 총격전으로 촬영팀이 톤즈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선생님, 진료소를 짓고 이어 학교를 짓는다 소년병으로 끌려가 폭력과 고통 속에서 자라던 아이들을 학교로 모아 가르친다
아이들은 곧 이태석 신부님보다 더한 열정으로 공부에 빠진다
단장님, 악단을 만든다 아이들을 모아 트럼펫, 클라리넷 등 악기를 가르친다 그러기 위해 없는 시간 쪼개고 쪼개 자신 또한 먼저 악기를 익혔다
영화를 보고 울컥울컥 울어버린건
신부님이 수단에서 보여준 많은 일 때문이 아니다
신부님의 모습 때문이었다
신부님이 하신 모든 일은 오로지 사람들을 위한 것 뿐이었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과시하거나 대리만족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쏟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더 할 수 있을까, 신부님은 오직 그것만 생각하는 사람인 듯했고, 그 안에서 신부님은 행복했다
톤즈 사람들이 신부님을 보고
우리를 이렇게 돌봐준 사람은 없다고, 마치 예수님이 살아계신 것 같다고 말했을 때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나보나 남을 먼저 생각하고 주려는 마음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쏟아내어 쓰려는 마음
더도덜도 말고 딱 가진만큼 내놓을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에서 가진것보다 더 내놓을 수 있는 마음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톤즈 사람들은, 잘 안 운다고 한다
원래 그곳 부족 자체가 울음과 거리가 멀다고 했다
그런 톤즈 사람들이 이태석 신부님 얘기가 나오면, 신부님 사진만 봐도, 눈물을 쏟아냈다
눈물을 예상하고 묻는 질문이고, 꺼낸 사진이겠지만
그들의 눈물은 예상 밖의 진심이고, 받은 이상 쏟아내는 마음이다
소년병이었다 탈출하고 그곳에서 공부하는 늦깍이 26학생은 열심히 배워 이곳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신부님이 떠난 악단의 맏형은 힘들겠지만 이 악단을 잘 이끌어가겠다 했다
신부님께 진료를 받고 병이 나은 한 사람은 신부님이 없는 진료소를 지키려 매일 밤 진료소 앞 마당에서 노숙을 한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말이 생각났다
우리는 다 하나의 밀알이다
내가 깨져 내 안의 것을 싹틔울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것의 열매를 볼 수 있을까?
더욱 노력하고, 더욱 나눠야겠다는 생각이다
영화를 보고
동생은 가끔 주일미사 때 아프리카 돕는다고 2차 헌금 한다 할때
귀찮은 생각을 품고 2차 헌금 내지 않은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엄마는 몇 번 이태석 신부님이 우리 본당에 도움을 받고자 모금운동 하러 오셨을 때 뵈었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했다
영화 속 이태석 신부님이 먼곳에 있던 분이 아니라
바로 내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분이어서 그럴까?
마음의 물결이 더욱 오래 울렸다
서른이 되고 나니, 난 좀 한숨 돌린 느낌이 든다
뭐 힘든 일이야 누구나 있는 것이고
쿡 찔러 아픈 사연 하나 없는 사람 세상에 없다는 걸 알고 나니
사는 게 다 그렇구나 싶어지기도 하고
그래서 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싶다
다들 그렇게 아픈 사연 꾹 담고 열심히 사는데
나라고 뭐 더 아프다고 끅끅 거리고 있을까
그냥 아침이구나 하고 웃고, 비오는 구나 하고 웃고
난 이태석 신부님처럼 가진 달란트가 많은 사람이 아니어서
내어주고 나누어줄 것이 많지 않지만
내가 가진 재능을 좀더 쓸모있게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신부님처럼 가진 것을 모두 쏟아낼 수 있는 마음,
그 홀가분한 기쁨, 나누는 충만함을 느끼고 싶다
아, 더 노력하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