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 A - Boy 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09.05.26 씨네큐브, 혼자

 

슬슬 혼자놀기에 적응하고 있다
영화야 원래 혼자 잘 봤는데, 한동안 뜸했던 혼자영화보기를
요즘 다시 하고 있다 재미가 솔솔하다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라고는
영국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선에서 만든 영화라는 것 뿐이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꽤 좋았다
역시 영화는 사전정보 없이 봐야 좋다


영화는 10살에 또래 소녀를 잔인하게 살해한 한 소년이 성인이 되어 사회로 돌아오는 얘기다
사회로 돌아오기 위해 그는 수많은 장애물을 헤쳐나가야 했으며,
결국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나'가 되어 사회로 나온다
하지만 워낙 떠들썩했던 사건인 만큼 사람들은 쉽게 잊지 않고
성인이 된 그를 찾아내고야 만다
에릭 아니 잭은 다리 난간 위에서 검은 바다를 보며 운다



1. 에릭

에릭의 어머니는 암투병 중이다. 집에 환자가 있는 혹은 있었던 사람은 알 것이다. 집안을 누르는 무거운 공기. 어머니 병수발에 지친 아버지는 무기력하다. 에릭은 고립되어 간다.
에릭은 왕따이다. 그런 에릭에게 친구가 생긴다. 필립.
필립 역시 왕따이다. 어린 시절부터 형에게 수도없이 성폭행을 당하고 형에게 표출하지 못하는 폭력성을 타인에게 퍼붓는다.


'그짓을 당할 때면 난 눈을 감아. 그러면 눈 앞에 여러 개의 문이 나타나. 그리고 제일 멀리 있는 문부터 닫히는 거야. 멀리서부터 차례대로 쾅쾅 소리를 내면서. 내 앞에 있는 문이 닫힐 때까지 울음을 참으면 난 두 번 다시 울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난 울지 않아.'

 
정확한 옮김은 아니지만, 필립이 에릭에게 형에게 당한 일을 말하며 했던 말이다.
필립이 에릭을 괴롭히던 애들을 패주고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 진다. 그러던 어느 날 둘만의 공간에서 놀던 이들은 에릭의 반친구를 보게 된다. 잘난척 심한 여학생. 으슥한 공원에서 남학생과 키스하며 애무하는 모습을 본 둘. 그리고 자신의 치부를 들킨 여학생은 둘을 비난한다. 필립은 손에 들고 있던 커터칼로 여학생의 팔을 그어버리고, 놀란 여학생은 더욱 비난하며 아버지에게 이를 것이라 한다. 필립은 한 번 더 여학생의 팔을 그어버리고, 머리채를 잡고 다리 아래로 끌고 간다. 에릭은 필립이 떨어트린 커터칼을 쥐고 머뭇거리다 그곳을 따라간다. 그 다리 아래는 두 사람이 물고기를 잡아 물고기 머리를 짓이겼던 곳이다. 


에릭은 무관심, 외면 속에서 자신마저 외면한 채 살았다
필립은 폭력 속에서 자신마저 폭력이 되어 살았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곳이 전부이고 최선이라 생각한다. 둘이 자신들을 괴롭히는 그것으로 변한 것은 그것 외에는 접해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필립은 폭력성을 표출할 때 함께해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에릭은 언제든 함께해줄 친구가 필요했다.
  

2. 잭

출소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한 '소년a'는 상담사 테리에게 운동화를 선물 받으며 영화는 시작한다. 운동화에 쓰인 말은 'escape'. 잭은 자신의 새로운 이름을 정하고, 세상으로 한 발 다가간다.
상담사는 삼촌이 되고, 잭은 방을 구하고, 직장도 얻는다.
택배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잭은 친구가 생기고, 여자친구도 사귄다. 
 

'사랑하는 것 같아.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듣거나 하게 될 줄 몰랐어.'

 
친구들은 잭이 폭주족이었고 그때문에 2-3번 감옥에 다녀왔다고만 알고 있다. 물류센터 사장은 출소자에게도 기회는 있어야 한다며 입다물에 주겠다고 하고, 친구들은 폭주족이었던 과거를 궁금해 한다. 하지만 잭은 자신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며 소소한 일상에 빠져 행복해진다.
그러나 불쑥불쑥 나타나는 필립의 죽음.
상담사 테리는 모르는 필립의 죽음의 진실을 잭, 아니 에릭은 알고 있다. 자살이 아닌, 그들의 범죄를 증오하는 자들에 의한 타살.
그래서 잭은 작은 일간지에 실린 성인이 된 자신의 얼굴을 추리한 몽타주가 신경쓰인다.
 

3. 당신은 천사에요

잭은 배달을 가던 도중 사고난 자동차를 발견하고 그 안의 여자아이를 구해낸다. 그로 인해 지역신문에서 취재가 나오고, 원치않는 사진을 찍게 된다.
그로부터 얼마 후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장의 전화.
너에게 실망했다, 넌 살인자다 라며 전화를 끊는 친구.
연락이 끊긴 여자친구.
전화를 받지 않는 테리.
잭은 무서워진다. 
 

'아니야. 난 그 소년이 아니야.'

 
잭은 외치지만 문밖에는 기자들이 가득하다. 배달온 편지 중 자신에게 온 것을 챙겨 지붕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간 잭은 무작정 걷다가 기차를 탄다.
편지는 자신이 구한 여자아이가 보낸 것이다.
여자아이가 맨 벨트가 빠지지 않던 상황에서 칼로 벨트를 끊어 아이를 구한 잭. 아이는 칼을 든 아저씨 머리 위엔 후광이 있었다. 아저씨는 날개를 단 천사다, 고 한다. 
 

4. 그때 말했더라면 용서했을까

바닷가로 온 잭은 그곳에서 여자친구를 만난다. 처음으로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그녀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잭은 고민한다. 끝내 말하지 않았지만 결국 알게 된 그녀는 받아들이 않는다. 그녀는 말한다. 그때 말하지 그랬어. 하지만 그때 말했더라면 용서했을까. 지금은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사실은 그때도 늦었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5. 기억나?

잭은 테리에게 전화한다. 진심으로 고맙다고. 그리고 자신은 혼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친구에게도 전화한다. 자신은 언제나 잭이었다고. 둘이 함께 구한 그 여자아이를 기억하느냐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필립과 에릭은 한 여자아이를 살해했지만
잭과 친구는 한 여자아이를 구했다.
과거는 버려질 수 없고 지워질 수 없다.
극복해야만 할 뿐이다.
잭은 에릭을 극복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세상은 자꾸 에릭만 보려고 한다.

필립을 만나 왕따의 외로운 세상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살인이라는 사건으로 다시 세상에 갇히게 된다.
어려운 장애물을 무사히 넘겨 감옥과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탈줄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잊지 않고, 영원히 살인마로 기억하려한다.
결국 잭은 에릭으로부터 영원히 탈출하기 위해 다리 난간 위에 선다.
 

6. 괴물

이 영화를 보는데 이상하게 '렛미인'이 떠올랐다.
10대, 왕따, 괴물
'렛미인'이 판타지를 기반에 세웠다면
'보이A'는 현실에 기반을 세웠다.
붉은 피가 낭자하지만 아늑했던 판타지
밝고 따뜻했지만 차가운 현실
스스로를 괴물이라 말하지만 그들은 괴물같은 세상밖에 보지 못해서 괴물이 되어갔다. 앞서 에릭의 소심함, 필립의 폭력성과 같이 사람은 자신이 속한 세상의 규칙에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길들여지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괴물에 길들여진 그들 혹은 우리들.

 
7. 상담사 테리

테리는 잭을 무사히 사회로 복귀시키는, 장대한 계획을 이룬다. 술취해서도 '사랑한다 잭, 넌 나의 기쁨이다'라고 말하는 테리에겐 아들이 하나 있다. 상담사로서 청소년 범죄자들의 교화에 신경써온 테리는 정작 자신의 가정은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때문에 아내가 떠나가고, 자신의 아들에게 무관심해진다. 사회와 단절된 삶에 익숙해진 모습으로 나타난 아들은 끝내 자신에게보다 상담하는 아이들에게 더 애정을 쏟는 모습을 보이는 아버지에게 복수를 한다.
바로, '악마, 성인이 되다'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성인이 된 에릭의 소재를 찾는 일간지에 잭의 위치를 알려준 것이다. 아들은 말한다. 내가 외면받고 고통받은 만큼, 그 녀석도 똑같이 고통받길 바란다고.' 상처받은 사람은 자신이 상처받은 그 순간 모든 시간이 멈추어 버린다. 성인인 아들은 맥주만 마실 줄 알지,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는 어른 아이다.

 

8. 그리고 등등

어쨋든 좋은 영화 한 편이다.
아침에 본 영화를 생각나는대로 막 쓰니, 역시 두서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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