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

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호메로스는 오디세우스를 그리스의 영웅으로 만들었고 매들린 밀러는 키르케를 우리의 롤모델로 만들었다. '오디세이아'에서 마녀로 등장하는 '키르케'의 일대기를 다룬 책 <키르케> 에서 말이다.

책 속 키르케는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일반적인 다른 여성들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인다. 괴물에게 잡혀가서 남자가 구해줄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빼어난 미모로 제우스의 눈에 들어 헤라의 눈을 피해 아이를 낳지도 않는다.

키르케는 원전에서도 꽤 특이한 활약상을 펼치는 매력있는 존재이긴 하다. 글라우코스 및 스킬라, 메데이아, 오디세우스 등과 각각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지만 마녀, 복수 등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인지 예술가들이 그녀를 표현한 그림들을 보면 뭔가 어둡고 무섭고 끈적끈적한 느낌이다.

이 책에서는 그 이야기들의 뒷이야기들 그리고 그 배경 사건들, 키르케와 주변 인물들의 관계 등을 통해 키르케가 아이아이에 섬의 마녀가 되는 과정과 속사정을 풀어내어 단순히 마녀가 아닌 키르케라는 한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키르케는 보통 님프들처럼 사는 하급 여신의 삶이 아닌 본인이 스스로 원하는 삶의 방향을 선택한다. 금지된 행동이나 환영받지 못하는 사랑 같은 것을.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키르케의 모습을 통해 주어진 운명에 맞서 진정한 나의 삶을 찾기를 바란다는 외침이 느껴졌다.

'오디세이아'가 '오디세우스'의 고향 찾아가기라면 '키르케'는 '키르케'의 자아 찾아가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우리는 '오디세우스'를 통해 기이한 사건 속에서의 영웅의 모험을 경험했으니 '키르케'를 통해 치열한 삶 속에서의 여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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