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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중한 것들이 말을 건다 - 연필이 사각거리는 순간
정희재 지음 / 예담 / 2014년 9월
평점 :
깊어가는 가을, 어느 날.. 사각거리는 감성을 일깨워 주는 한 권의 책을 만났다.
그래도 어린 시절에는, 연필깎이로 돌려서 연필을 깎아 공책에다 받아쓰기도 하고 숙제도 하며 그렇게 연필의 느낌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었는데, 언젠가부터 샤프가 연필 깎는 번거로움을 덜어주면서 연필이 조금씩 멀어져감과 동시에 연필에 묻은 감성도 함께 잊혀져 간 것 같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동생을 비롯해 친구에게 편지를 쓰던 그 때, 연필의 사각거림을 기억한다.
아홉살이던 동생의 연필로 쓴 귀여운 아기오리 같은 글씨체의 편지와 두근거림을 안겨준 짝꿍녀석의 핑크빛 편지까지...
그때 나이에는 이렇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 속에 연필의 감성이 녹아 있었다면, 언젠가부터 샤프와 볼펜으로... 그리고 타자기로... 그러다 컴퓨터의 키보드로... 요즘은 글로 쓰는 것보다 휴대폰 자판으로 두드리는 것이 더 빠르고 편한, 그야말로 디지털 세상에서 편리함과 빠름으로 느림의 미학을 잊고서 마음을 고백하는 속도와 사랑의 속도까지도 빠름을 닮아가는 것 같다.
잠시 멈추고 느림에 대해 생각해보고, 잊고 있었던 주변을 돌아보면서 새삼스레 볼품 없는 연필 한 자루가 뭉클함을 자아내는 이 기묘한 설렘을 느껴본다.
이 책은 제목과 표지의 느낌 그대로, 연필의 사각거리는 감성을 일깨워준다고나 할까...
느림의 미학에 대해, 잊고 있었던 아날로그적 감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왜 사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겪는다는 그 흔한 사춘기에도 왜 태어났나, 왜 사는게 힘들까... 알량한 생각들로 힘든 척에 동조도 해봤지만, 진짜 사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본 건, 삼십대 전후였던 것 같다.
혼자서 사회생활을 하며, 겪어나가는 고충 속에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혼이라는 것과 어떻게 사는 것이 후회가 조금이라도 덜 될지... 고민해야 했었다.
그렇게 미래에 대한 고민과 현실을 바쁘게 보내느라 조금씩 주변에 있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눈을 감아버린채 지나왔다.
연필에 대한 다양한 추억들을 읽으며 나 또한, 제대로 어린 시절부터 연필에 관한 에피소드와 추억담을 생각나는 대로 떠올려본다.
우리집에도 연필이 있다. 거의 쓰지는 않지만 생각해보면 늘 항상 연필은 한 자루 이상은 반드시 볼펜꽂이에 자리를 잡고 늘 존재해왔다.
낡고 구식 같아 이제는 누가 쓰겠나 싶은 생각에 그냥 방치하다시피 했었는데, 이 책 한 권을 읽고서는 괜히 연필을 집어 들고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적 없었는데, 넌 참 가진 추억이 많았구나....
열심히 살고파 바쁘게 지내는 것이 조금 서글픈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만큼 느리게 걸을 때 볼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놓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 싶기도 하다.
그러던 중, 읽게 된 이 책은 우리가 많이들 잊고 있던 아날로그적 감성을, 사각거리는 연필의 소리와 함께 천천히, 되도록이면 많은 것들을 둘러보며 가라며 어깨를 토닥이고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