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와 기도 거룩한 삶의 실천 시리즈 3
김남준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남준 목사님의 신간 <성화와 기도>를 읽었다. 언제 읽어도 저자 특유의 예리한 통찰과 섬세한 표현, 그리고 강한 도전이 김 목사님의 책에는 담겨 있다. 그런 성경적 강해나 주제별 설교를 통해 독자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고 기도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을 이번에도 읽게 되어 참 기뻤다.

제목이 <성화와 기도>로 되어 있는데 개인적 의견으로는 <죄죽임과 기도>, 혹은 <열렬한 기도로 죄를 죽여라> 등의 제목에 더 내용과 부합할 것 같다. 왜냐면 성화에는 '죄죽음'(Mortification of sin)과 '은혜살림'(Vivification of grace)이 한 짝을 이루고 있는데, 본서는 주로 그 중 한 측면인 죄죽임과 기도와의 관련성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틀 안에서 그리 문제될 것은 없다.

 

저자가 죄죽임과 관련된 기도를 설명하면서 특히 강조하는 건 ‘열렬한 기도’이다. 저자는 본서에서 이러한 열렬한 기도가 무엇이며, 어떻게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지, 왜 열렬한 기도를 드리지 못하며, 이런 원인으로 인해 결국 신자의 영적 삶이 어떻게 비참 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지를 말하고 있다. 

본서에서 특히 강조하는 대목은 신자 안에 내주하고 있는 죄의 세력이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죄의 깊은 잠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죄에 대한 무지이다. 그래서 저자는 은혜를 아는 지식과 함께 죄를 아는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본서의 2장에서 보다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성화의 작용은 없이 그저 하나님과의 거래용 청구서 정도의 기도로 연명하고 있는 신자들에 대해 저자는 그들이 기도에 대한 너무 가벼운 견해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도의 궁극적 목적에 대해 말하는데 그것은 기도 제목에 대한 응답보다 응답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더 알아가고 그런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의 거룩한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수단이 아닌 신자 자신의 변화되는 수단이 된다고 말한다.

죄죽임을 가능하게 하는 은혜의 수단으로써의 기도에는 열렬함과 지속성이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는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특히 한국교회 성도들이 기도의 겉모습은 있을지 몰라도 이런 열렬함과 지속성을 없는 기도에 익숙하여져 있는 모습에 가슴 아픈 충고를 들려준다. 이런 원인에 있어 열렬한 기도를 막는 영혼의 싫증과 지속적인 기도를 막는 육체의 게으름을 들고 있다. 이런 내용이 본서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자세한 내용은 4장과 5장에 담겨 있다. 

결론에 이르러 저자의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간절히 외친다.

 

“아아,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마음을 드리는 기도 없이 살아왔습니까? 영혼의 싫증과 타협하고 육체의 게으름과 타협하면서 얼마나 많은 날들을 무위도식하며 살았습니까? 기도의 십자가를 지는 열렬함 없이 살아온 대가가 무엇입니까? 그러한 나태하고 무기력한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돌아온 이득이 무엇입니까? 무너진 마음의 틀과 사라진 진실한 사랑과 진지한 소명감이 아닙니까? 우리는 단호하게 그런 삶으로부터 돌아서야 합니다.”


밑줄을 긋고, 나 나름의 생각들을 적어가면서 진지하게 읽은 책이다. 그만큼 숙고하며 읽어야 할 장중한 무게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읽는 내내 나 자신에 대한 반성어린 성찰이 나를 흔들어 깨움을 느낀다. 저자의 글이 구체적인 영역을 침투하여 내 삶에 들어옴을 느낀다. 그저 막연히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식의 느슨한 생각이 아닌 지금 내 영혼의 상태가 얼마나 피폐한가를 절절히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이런 총체적인 영혼의 비참한 상태에 대한 원인이 다른 곳에 있지 않고 바로 내 안에 나의 동의 가운데, 내 책임 있는 선택으로 자행되어 온 죄, 그래서 이젠 마치 그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의 주인인 양 거짓 행세하고 있는 죄가 원인인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죄에 대한 책임은 죄에게 있지 않고 나 자신에게 있음도 알게 된다.

‘얄팍한 만족감을 떨쳐 버리자.’ 나는 스스로에게 외친다. 그것은 사람의 기준에서 바리새인들이 빠져 있었던 안도감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기도의 사람으로 칭찬 듣는 것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실히 느끼는 필요는 기도의 삶 가운데 낮아진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기준은 현 시대에서 찾아서는 안되는 기준이다. 그 기준은 성경에서 찾아야 하는 기준이다. 예수님의 생애 속에서 찾아야 하는 기준이다. 앞선 믿음의 거장들로부터 찾아야 하는 기준이다. 기도를 통해 저마다의 변화산을 체험했던 기도의 대선배들로부터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면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것이다.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라는... 그러나 그 자리는 내가 예전에 알고 누렸던 그런 피상적인 기도의 자리가 아닌, 저자의 표현대로 “마음의 피어린 펌프질을 통해 우러나오는” 그런 기도의 자리여야 한다. 이것이 비단 나 자신만이 아닌 조국 교회의 성도들 모두에게 회복되는 기도의 자기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