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수상록 범우문고 122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최혁순 옮김 / 범우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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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로 잘 알려진 페시미즘 철학자의 거봉 쇼펜하우어. 그의 짧은 수상록(이것은 본래 '소품과 보유집'이라는 책에서 뽑아낸 일곱 편의 에세이 모음집이다.)을 읽는 동안 철학적 사유의 즐거움을 충분히 맛본 것 같다.

철학적 사색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쇼펜하우어의 글은 나의 독서론과 사색관을 정리시켜주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깊이 있는 생각만이 사상가로 자라가는 지름길임을 배우면서 그런 사색 없이 다량의 책읽기로만 만족해 왔던, 또 그런 비교 의식 가운데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 식의 독서는 한갓 영양가 없는 음식으로 배불리는 것과 같은 정도인 것을... 내 생각의 마당에서 다른 저자들만 마음껏 뛰어놀게 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구경꾼 정도로 관망만 하는 독서가 얼마나 정신과 영혼에 양식이 될 수 있을까.

독서와 사색과의 관계가 음식먹기와 소화시키기의 관계로 비유됨을 읽으면서 지당한 저자의 논리에 찬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당연한 이치를 알면서도 나는 폭식만 할 뿐이지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지적 소화불량에 걸린 사람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기의 생각을 갖는다는 것. 그것을 깊이 있게 발전시키는 연습을 꾸준히 해 나가야 겠다. 그래야만 이런 지적 허영심에서 벗어난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여성관에 있어서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자살과 죽음에 있어서는 대단히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그의 생각들에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막연히 전통적으로 타부시 되어 오는 통념을 과감히 떨쳐 버리려는 노력으로써는 무언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도 역시 자기 시대의 세계관과 자기 자신의 가치관 안에서 사유하는 갈대와 같은 인간일 테니까. 결국 중요한 건 모든 것에 다 옳아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그렇게 진지하게 대하려는 자세가 아닐까.

동서양의 철학이 절묘하게 융합된 한 사람의 책을 통해 주고받는 생각의 대화 속에서 다시금 나란 존재의 틀을 깨며 좀 더 확장시키게 되는 기회였다고 생각하니 참 좋았다. 때론 동의하면서 때론 반론을 제기하면서 한 주제 한 주제를 좀 더 깊이있게 파헤쳐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지적 성숙의 과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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