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를 통해 카버를 알았다 해도 과언은 아닐게다. 아니 하루키를 통해 '피츠제럴드'나 '카버'를 무심히 지나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더우기 '빵가게'라는(그것이 온갖 종류의 롤빵들이 오븐에서 갓 구워져 향긋한 빵냄새를 풍기는 전통적 빵가게가 아닌 새벽 두 시반, 도쿄 도심의 한 복판에서 "잉카의 우물을 바라보는 관광객 같은 시선"으로 습격자들을 바라보는 점원들이 운영하는 '맥도날드' 일지라도) 소제적 동일성은 「빵가게 재습격」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 대한, 또는 '카버'에 대한 '하루키' 식의 '오마쥬'로 그려지는 것은 억측스럽기보단 자연스런 연상작용은 아닐까.

 

이런 상상은 어떨까.

'별것~'에서 부부는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게 되면서 하나의 '상실'을 경험한다. 그 '상실'은 더이상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슬픔과 상처를 동반하지만 두 세계에 대한 객관적 가치평가는 불가하다. 비록 그것이 그들의 선택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운명, 저주스러운 운명으로써 그들로서는 거부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삶의 단속성들에 의해 지속되는 연속성의 이면일 뿐이다. 하지만 자식의 '소멸(부재)'은 아들이 갖고 있던 공간만큼의 거리를 부부에게 만들어 놓고 그 공백은 빵가게 주인(으로 상징되는 외부적 세상)과의 소통마져 이그러지게 만든다. 분노에 휩싸인 채 부부는 빵집으로 달려가 주인장에게 저주의 말을 퍼부어 대지만 결국 그들은 허기진 배를 갓구운 롤빵과 중년을 넘은 빵집 주인의 삶의 회한과 무력감에 대한 이야기(말)을 통해 자신들 사이에 놓였있던 공백을 봉합하며 또다른 새벽(세계)을 맞이하게 된다.

 

결혼을 한지 이제 갓 한 달이 조금 넘은 부부가 있다.
'사랑'의 결실인 '결혼'은 그대로 행복으로 직행는 관문이 될 수 있을까. 사랑 이후에 찾아오는 결혼은 어찌보면 '저주스런 행복'은 아닐까. 아니 행복 앞에 붙어있는 저 어둡고 습한 수식어를 떼어버리지 않으면 여전히 두 사람은 자신들이 이제껏 걸어온 각자의 세계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채 '그냥' 함께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식의 상실 같은 실제적 사건이 아닐지라도 상징적 '통과제의'를 통해 혼자였던 '저 세계'에서 함께하는 '이 세계'로-물론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상실'과 '소멸'을 경험하지 않고선 도달할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로 옮겨와야만 한다. 빵가게를 습격하는 것이 다소 이질적이라면 「태엽감는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이나 「코끼리의 소멸」을 끌어들이면 충분히 그럴듯 해진다. 어느날 집을 나가버린 고양이. 아내는 "당신이 죽인 거야"하며 어둠에 쌓인 거실에 앉아 소리 죽여 운다. '코끼리'의 소멸은 이성적 관계맺기를 통한 한 세계의 떠남을 보여주진 않지만, 여기서도 '코끼리'의 소멸은 동시에 자신의 내부에서 무언언가의 상실로, 주인공은 그 사건 이후부턴 그 이전과는 도저히 닿을 수 없을 듯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버린다. 연속적인 시간 속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이런 상실과 부재라는 단속적 사건들을 통해 새롭게 펼쳐지는 세계, 사람들은 다른 말로 그것을 '성숙'이라 부르곤 한다.

역시 억측이 많이 끼어있긴 하지만 『빵가게 재습격』은 카버의 '오마쥬'이자 하루키 자신의 장편에 대한(『태엽감는새』, 『1973년의 핀볼』등에 대한 '몽타쥬'이기도 하다. 얇은 분량의 책이고, 여전한 하루키 문장들의 흡인력은 한 두 시간 내에도 책을 끝낼 수 있을 정도다. 물론 난, 며칠씩 뜸을 들이며 한 꼭지 한 꼭지씩 읽어나갔다. 너무 무겁지만도 않다. 표제작인 「빵가게 재습격」도 그러하거니와 「패밀리 어페어」「로마제국의 붕괴·1881년의 인디언봉기·히틀러의 폴란드 침입·그리고 강풍세계」와 같은 단편들은 하루키만의 독특함과 유머러스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단편들이다.

 

뭐랄까, 『빵가게 재습격』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분명)도움이 되는' 책이자 동시에 이미 책 자체가 카버를 떠올리 수 밖에 없는 그런 단편모음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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