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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구애 - 2011년 제4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3월
평점 :
5년전 『아오이가든』의 그녀와, 오늘 『저녀의 구애』의 그녀는 얼마나 달라졌는가.(겉표지의 사진과 더불어 그녀의 소설까지)
중년의 멋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던 게다.
그녀의 미모가, 그리고 그녀의 소설이 무르익을수록 그녀의 구애는 보다 적극적이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만큼.
'카프카'와 '문명'이 떠올랐으나, 이미 누군가 발설해버린 내용이다.
중언할 필요가 없다.
단지 낭자한 피도, 죽음도, 부패하는 사체,에서 흐르는 진물도 없다. 오물과 쓰레기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어딘가로 흘러가 처리되듯이-그것이 바로 '문명'이 아니던가,-야만과 본능은 문명의 세계로 진입하면서 말끔히 배제되었다. 하지만 사라져버렸던 '그 것'들은 언제고 우리내 일상을 찢고 되돌아온다. 우리가 사는 오늘이다.
『저녀의 구애』를 읽으면서, 그녀만의 문체나 색깔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설을 읽을 땐, 아무리 좋은 문장이 보여도 줄을 긋거나 하진 않는데,
"죽음은 비통하고 엄숙한 세계를 떠나 정체되고 지연되는 시간의 문제로 남았다"라든가,
"씹고 있는 통조림의 맛처럼 삶이 너무 자명해진 느낌이었다. 미래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지나가버린 것 같았다."등 몇 곳에 자연스럽에 선이 그어진다. '물건을 보면서 노동의 경로를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저런 문장들은 사물과 일상의 사소함을 통해 삶과 세계를 인식하는 작가의 고뇌 없이, 단지 순간적인 아이디어나 감각으로 튀어나오는 것들은 아닐테다.
『저녁의 구애』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단편은, 마지막 '작가의 말'이었다.
"소설을 쓰는 일이 매번 같은 강도의 노동을 반복하는 것임을 알게 되고,
나는 좀 달라졌다.
자괴하고 한탄하는 일이 줄었다.
소설쓰는 일의 묵묵한 수련 방식을 조금씩 깨우치고 있다.
'그녀의 구애'가 인스턴트식 만남이나 원 나잇 스탠드가 될 수 없는 이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좀더 부지런히, 좀더 묵묵히 소설을 써나가는 그녀를 위해서라도, 출간되는 족족 장바구니로 바로바로 담아주고 읽어주는 것뿐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