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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독자들은 책 속의 애덤 워커가 실제로는 애덤 워커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그윈 워커 테데스코는 그윈 워커 테데스코가 아니고, 마고 주프루아도 마고 주프루아가 아니다. 엘렌과 세실 쥐앵은 엘렌과 세실 쥐앵이 아니고, 세드릭 윌리엄스도 세드릭 윌리엄스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샌드라 윌리엄스는 샌드라 윌리엄스가 아니고, 그녀의 딸 레베카도 레베카가 아니다. 심지어 보른도 보른이 아니다. (중략) 뉴저지의 웨스트필드는 뉴저지의 웨스트필드가 아니고, 에코 호수도 에코 호수가 아니다.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는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가 아니고, 보스턴은 보스턴이 아니다. 비록 그윈이 실제로 출판계에 종사하고 있긴 하지만, 대학 출판부의 부장은 아니다. 뉴욕은 뉴욕이 아니고, 컬럼비아 대학은 컬럼비아 대학이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p,275~6
고로 『보이지 않는』 책의 저자 '폴 오스터'는 '폴 오스터'가 아니다.
폴 오스터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넘어가고, 실제로는 애덤 워커가 아닌 애덤 워커가 '폴 오스터'라는 이름으로 낸 책이거나, 실제로는 짐이 아닌 '짐'이라는, '애덤 워커'아 아닌 '애덤 워커'의 친구가 '오스터'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책이기도 하다.
재미난 건 이제 겨우 오스터의 책 두 권을 읽었을뿐이지만, 이런 수많은 부정들 속에서 부정할 수 없는 건, 바로 '폴 오스터'라는 저자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천천히 이전의 책들을 읽어보면서 스스로 사라져버리려는 '오스터'의 형상을 그려볼까도 싶다.
『뉴욕3부작』, 『보이지 않는』, 두 권 모두 소설적 내용보다는 소설적 형식 비틀기로 읽힌다.
이야기로서의 흥미나 그 어떤 '의미화'를 원한다면, 그때는, 폴 오스터는 폴 오스터가 아니다. (역시 책 한 권 읽은 X가 가장 용감한 법이다. 겨우 두 권 읽어놓고 뻔뻔하게 시리)
'여름'에서 애덤과 그윈의 사회적 금기를 파기하는 성애가, 어떤 불쾌감이나 거북스러움 없이 읽혔다.
아마도 근친간의 성애가 아닌 워커의 또다른 여성성으로서의 그윈, 즉 워커의 나르시시즘적 자위이진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