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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용 식탁
윤고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평점 :
저자에 대한 배경적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우중충한 회색톤의 겉표지는 『1인용 식탁』 대한 '끌림'을, 도래하지 않을 막연한 미래로 지연시켰고 겉표지 날개에 실려있는 80년생의 화려한(?) 작가의 사진은 킬타임용으로도 아까운 '칙릿'류의 소설을 떠올리게 했다. 미래는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달"님에게 받은 선물이었지만, 그의 취향을 또는 그가 바라보는 나의 취향에 대해 한번쯤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던 『1인용식탁』이었다. 하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미래는 우연한 기회를 계기로 6개월이란, 짧은(!) 시간을 돌아와 '1인용 식탁'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9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소설집에서 「1인용 식탁」 「달콤한 휴가」 「인베이더 그래픽」 「박현몽 꿈 철학관」 「로드킬」까지 순서대로 다섯편의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저자의 사진을 바라본다.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절대 아닌데' 혹, 그녀도 어느 철학관에 몰래 방문하며 '꿈'을 사고 있었던 건 아닐까.
『1인용 식탁』의 독특함이란 저자의 나이와 외모에도 불구하고(?)하고 사회와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제법 날카롭기도 하거니와 일상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져버린 이야기 속에 작가의 시선이 잘 투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혼자서도 밥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원이나, 빈대에 대한 극단적인 집착, 백화점 화장실에서 소설을 쓰는 작가, 꿈마져 병에 담에 사고파는 사람들,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감금되어버리는 모텔까지 분명 현실에 비껴 선 환상적 소재들이지만, 묘하게도 이런 것들이 결코 가상적·비일상적으로 다가오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견고한 것을 녹여버린' 근대 이후 인간적 관계들마져 녹여버린 현대, 스마트폰과 페이스북은 현실의 관계를 통신과 웹의 공간에 새롭게 둥지를 트게 되었지만 물질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역시나, 현실에서 먹고, 자고, 마시고 살아 갈 수밖에 없는 가엾은(!)존재들이다. 싱글족들을 위한 혼자 먹는 식당, 카페들이 유행하고 독신으로서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시대에, '혼자 먹는 법을 알려주는 학원'이 그렇게 엉뚱하거나 비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다.
자연재인 물과 공기마져 상품이 되고, 지식과 담론이 권력이 되는 세상에서, 꿈조차 꿀 수 없게 조여오는 각박한 현실에서, 꿈마져 타인을 통해 꾸고 그 댓가로 돈을 지불하는 것이 결코 기괴한 상상으로만 그치지는 않는다.
방금 전에 읽은 「로드킬」은 다 섯 편의 소설 중 단연 압권이다.
1인용 식탁에서서 보여줬던 단자화된 개별적 존재들을 좀더 밀고나가 무인모텔에서 각종 자판기를 통해 무덤과도 같은 자기만의 방에서, 타인과의 아무런 관계나 접촉 없이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가지고 있는 돈의 액수가 줄어들수록 천장의 높이가 낮아지고 결국 동물로까지 퇴화되는 몸뚱아리. 죽음만이 그 모텔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이지만 그 죽음조차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는 '로드킬'일 뿐이다.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하키코모리'들의 운명도, 자본에서 이탈된 증가하는 극빈층의 운명도 '로드킬'의 그것과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환상으로써 현실을 그리지만 그 환상이 결코 현실과 괴리된 이물감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윤고은의 소설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일상을 다르게 바라보기라고나 할까, 그리고 의미를 상실한 듯한 '일상'을 쥐어짜 흘러내린 저 '환상'이 현실의 이면을 다시 소환하여 눈 앞에 펼쳐놓는다.
아직 네 꼭지의 단편이 남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와, 하루에 한 편을 다 읽지도 못하는 날이 많은 1월이었다.
그 허기진 일상을, 그나마 『1인용 식탁』에서 배를 좀 채운다. 그리고 역시, 혼자 보단 누군가와 함께 읽어봐도 좋을 게다.
"아이슬란드는 모든 경쟁과 소음을 초월한 곳이었지만, 그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쟁과 소음이 필요했다. 수면 위의 우아함은 물 아래 숨겨진 억척스러운 갈퀴질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박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갈퀴질이 불가능해진 지금, 수면 위의 우아함을 스스로 포기해버린 것이다. 나도 그 구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직장을 그만둘 수도, 적금을 해지할 수도, 보험을 취소할 수도, 무작정 떠날 수도 없었다. 내가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진정 자유로워지는 순간, 아이슬란드도 사라질 테니까." [ 아이슬란드 262~26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