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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 - 왕조 기록문화의 꽃, 의궤
한영우 지음 / 효형출판 / 1998년 9월
평점 :
의궤(儀軌)는 국정보고서이다. 관련 내용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정조의 1795년의 화성행차를 기록으로 남긴 것이며, 이 책은 원행을묘정리의궤를 책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원본의 양이 워낙 방대해 1/10도 담지 못했다고 한다. 기록문화의 백미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원행정례>(園幸定例)는 정조시대의 수원행차를 전반적으로 정리한 것인데, 정리의궤만큼 자세하지는 못하다. 모든 것을 자료로 남겼으며 모든 것이 실명제이다. 저자는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 정치의 투명성, 책임성에 자신이 있었던 정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정조를 위대한 군주라고 처음부터 못박으며 과연 현재의 최고통치자 중 어느 누가 이런 기록을 남길 수 있었는지를 묻고 있다.
정조가 즉위한 시기는 이미 상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시기였고 화폐경제도 발달하고 서울을 중심으로 광역수도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실학 운동이 일어났고 근대를 향한 움직임들이 여러 분야에서 발견된다. 정조는 이런 시대 상황을 적절히 파악하여, 서울시전상인(市廛商人)들에게 부여했던 난전금지권(亂廛禁止權), 즉 금난전권(禁難廛權)을 혁파하는 신해통공(辛亥通共)을 시행했다. 이것은 사상(私商), 즉 난전(亂廛)의 활동을 보장하는 것으로 독점에서 자유경쟁체제로 이행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정조의 이러한 통치 스타일이 마치 대기업 총수 같다(p.88)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정조는 과학기술과 고급학문을 융통성 있게 수용하는 한편, 주자성리학을 정학(正學)으로 정립해서 부정적인 상업·대중 문화를 배제하여 학문의 발전에도 힘썼다. 이 같은 정조에 대한 평가 위에서 정조의 화성행차를 바라본다면 앞 뒤 맥락 속에서 올바른 역사 인식이 가능할 것이다. 정조는 왜 화성(華城)을 건설하였는가? 화성이라는 신도시를 건설하고 어머니 회갑을 기념하는 화성 행차를 기획한 것은 상당히 큰 사업이었다. 화성을 군사 요지에 있는 군사 도시로 키우고 부수도(副首都)로 만들며 대도회(大都會)로 키워 유수부(留守府)로 승격시키려는 의도는 중국의 속국에서 벗어나 '황제'의 나라로 승격하겠다는 야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화성은 여러 모로 치밀하게 기획된 계획도시였는데, 우선 경제적으로는 자급자족, 이용후생(利用厚生)하는 실학 도시였고, 도덕적으로는 성인의 도시였으며, 행정적으로는 수도의 역할을 분담하는 부수도였고 군사적으로는 서울 남쪽을 방비하는 요새 도시였다. 도시 공사하면서도 노동자의 이름, 주소, 근무일수, 품값 등을 일일이 기록하는 등 민을 최대한 배려하려 했다. 정조는 화성을 자주 방문했다. 가는 도중 상언(上言)이나 격쟁(擊錚)을 처리하고 지방 경제를 활성화하는 등의 부수적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특히 1795(정조 19)의 현륭원 방문은 단순한 어머니의 회갑 잔치가 아닌 정치적 시위였다.
역사의 결을 따라가면서 내부 논리에 따라 역사적 사건들을 설명하는 글쓴이의 방식은 칭찬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글쓴이는 정조에 대한 개인적 칭찬에 함몰되어 비판적인 글쓰기에 실패한 것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청렴하고 현명하며 침착한 지도자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지도자를 뽑을 수 있을 만큼 유권자들이 똑똑해지는 것이나 선거 제도가 잘 정비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권력을 분산시키고 우리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우리 손에 쥐는 일이다.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덕목은 글쎄, 필요하긴 하지만 절박한 문제는 아닌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