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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세트 (양장) - 전8권 ㅣ 시간과공간사 셜록 홈즈 전집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정태원 옮김 / 시간과공간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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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셜록 홈즈 전집(전8권) / 아서 코난 도일 / 정태현
파네리스티, HOG(Harley Owner Group)는 들어봤어도 '셜로키언'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란, 이 정도인가 하는 놀라움이 들었다. 그의 활약상에 우리를 잡아끄는 어떤 매력이 숨어있길래 하는 궁금증이 들었고, 그의 친구 왓슨이 그의 행적을 기록했다는 출판물들을 모두 읽어야만 했다. 왓슨의 책들은 1부와 2부로 구성된 것, 그리고 비슷한 사건전개의 플롯을 가진 내용들이 다수 있어서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한번 손대면 끝까지 읽어야 하는 이야기들로 묘한 중독성이 작가가 개발한 조미료처럼 뿌려져 있었다. 간결하고 명쾌한 문체의 속도감은 순식간에 독자를 늪속으로 빨아들이는 듯하고, 왓슨과의 대화로 이어지는 사건의 풀이는 마치 현장에서 홈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하다. 또한 등장하는 인물들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마치 눈 앞에 캐릭터를 지켜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공포의 계곡]과 [배커스빌의 개]였다. 물론 다른 단편들도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시킬 소재들이 즐비하게 녹아있지만, 비슷한 류의 중첩이 보이기도 해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인 듯했다. 1800년대 후반을 살았던 탐정의 비화를 그린 책임에도 전혀 고루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지금도 셜록홈즈에 대한 패러디와 패스티쉬가 넘친다는 것은 명작의 또 다른 반증일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다는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 될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음은 셜록 홈즈, 존 왓슨과의 인터뷰이다.
Q : 먼저 셜록홈즈씨, 많은 팬들이 당신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런던거리에 운집해 있는데, 아직 당신이 낯선 사람들을 위해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A : 음, 저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니 의문스럽군요. 저는 6피트가 조금 넘는 키에 마른 몸매를 가졌습니다. M자형 탈모가 있으나 매부리코와 날카로운 눈매, 각지고 돌출된 턱 때문에 결단력 있어보이는 느낌을 준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담배와 바이올린을 매우 즐기는 편이죠.
음, 제 사무실은 런던의 베이커가 221B번지 건물의 2층에 있습니다. 이견이 있습니다만, 탐정업이란 분야를 개척하고 실제 사무실을 개장한 것으로는 아마도 제가 이 분야의 선구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도 이제 기력이 다하고 집중력이 떨어져 있으니 특별하고 기이한 사건이 아니라면 저에게 사건의뢰는 삼가해주셔야 할 겁니다.
Q : 당신의 30년지기 친구 존왓슨은 언제 만나신거죠?
A : 음, 지루할 수도 있겠군요, 하하. 왓슨은 저보다 2살이 많은데 1852년생입니다. 1878년에 런던대학에서 의사학위를 받고 외과군의관 되어 육군 제5연대 버크셔부대에 전속받아 인도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이완드 전투에서 심각한 어깨부상을 입고 후송되었고 군의료위의 영국 복귀명령에 따라 이곳에 왔던 것입니다. 병원에 있을 때 그의 조수였던 스탬포드의 소개로 저와 하숙집을 같이 쓰게 된 것이지요. 그 이후로 왓슨은 저의 조수로, 그리고 저의 사건 기록관으로, 저의 대화상대로, 저의 조언자이자 협력자로 항상 저의 곁에 있어주었던 것이죠.
음, 주홍색 연구(1881년)에서 왓슨과 제가 만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Q : 당신의 숙적이었던 모리아티 교수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A : 음, 어떤 비평가는 생뚱맞게 등장한 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그 사람 말로는 제가 저를 부풀리기 위해 또는 저를 끝장내기 위해 천재악당 모리아티의 대담하고 치밀하며 계획적인 음모라며 과장하여 노출시킨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건 아마 아서코난도일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모리아티의 마지막 대결장소였던 스위스의 라이헨바흐폭포에서 떨어져 죽을뻔 했습니다. 이것 또한 거짓이라고 말하진 않겠지요. 갑자기 왜 저를 버리려했는지 모르겠군요. 아무리 친한 사람도 오래 보다 보면 지겨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쨌든 모리아티에 대한 것은 공포의 계곡(1888년), 마지막 사건(1891년)을 참고해주십시오.
Q : 그렇군요, 당신이 범죄수사에 관심을 갖게 된 최초의 계기가 무엇이었습니까?
A : 저는 원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제 방식대로 문제해결하는 것을 좋아했죠. 그래서 제가 대학에 다니던 2년 동안 사귄 친구라고는 빅터 트레버뿐이었습니다. 그것도 그 친구를 사귀려는 어떤 의도가 끼여있었던 것은 아니고 어느날 교회에 가는 도중에 그의 불테리어가 내 발목을 무는 바람에 인연이 되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는 노퍽 주 도니소프에 있는 부친인 트레버의 저택으로 저를 초대했습니다. 그곳에서 트레버 노인과 관련된 과거사를 캐면서 범죄수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죠. 이에 대한 내용은 글로리아 스콧(1874년)을 참고하시면 되겠군요.
Q : 당신의 친구 왓슨이 주홍색 연구(1881년)에서 당신의 특징을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문학, 철학, 천문학 지식은 전혀 없고, 정치에 대한 지식은 조금 그리고 식물학에 대해서는 벨라도나, 아편 같은 독물에 대해서 박식하지만 원예에 대해서는 전무할 정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한정되지만 여러가지 토양을 식별할 수 있는 지질학 지식을 갖고 있으며 해박한 범죄학 지식, 화학 지식을 갖고 있으나 해부학은 정확하지만 조직적이 아닌 정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법률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지식이 많고, 봉술, 권투, 검술의 달인이며, 바이올린을 능란하게 연주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 음, 왓슨 그런 말도 했었던가? 왓슨의 지적은 일부 맞기도 하고 일부 틀리기도 합니다. 저는 줄곧 범죄해결에 필요한 연구를 계속해왔기 때문입니다.
Q : 왓슨씨, 홈즈씨는 평생 독신으로 생활하셨는데, 당신은 언제 결혼하셨나요?
A : 많은 분들이 네명의 기호(1888) 사건을 접하면서 만난 메어리 모스탄을 첫 부인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 1886년에 만나 1887년에 사별한 콘스탄스 아담스가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에 메어리 모스탄을 만나 재혼한 것이지요. 그녀는 키가 작고 날씬한 금발에 단정하게 장갑을 끼고 옷차림도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균형잡힌 얼굴은 아니었으나 사랑스럽고 호감이 가는 표정에 고상했고 특히 파란 큰 눈이 인상적이었죠. 하지만 1년만에 그녀도 내 곁을 떠나고 말았죠. 그래서 홈즈와 다시 베이커가에서 합치게 된 것입니다.
Q : 항간의 소문에 따르면 홈즈씨는 지독한 애연가일뿐 아니라 특별한 사건이 없아 한가할 때는 마약도 서슴치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땠습니까, 왓슨씨?
A : 음, 사실입니다. 담배로 너구리를 잡는 것은 다반사였고, 그를 자극할 사건이 없을 경우에는 코카인을 직접 팔뚝에 주사하기도 했습니다. 홈즈의 뛰어난 추리력이나 통찰력은 대단한 반동을 가진 듯합니다. 특이하고 기괴하며, 해결하기 난해한 사건들만이 그의 무기력을 몰아내는 유일하게 무해한 마약이었습니다.
Q : 홈즈씨, 당신이 알고 있는 형사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A : 런던경찰청에는 많은 경감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그렉슨, 홉킨스, 레스트레이드 등이 뛰어나죠. 발전가능성으로 따지자면 홉킨스를 꼽을 수 있겠지만, 사건을 아주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잘 처리했던 베인즈 경감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위스테리아 롯지(1890년)에서 그는 그대로의 수사를, 저는 저대로의 수사를 하자고 주장하죠. 그의 고집이 약간은 건방졌지만, 그 사건에서 빈틈없는 경감의 협력으로 정글처럼 미로처럼 얽혀있던 사건의 핵심을 찾아낼 수 있었지요.
Q : [여기서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우리가 함께 한 사건 중에서 이번만큼 까다로운 건 없었을 거야.]라는 대사가 매우 자주 출현하는데, 실제로 홈즈씨는 이런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인가요?
A : 제가 대답할까요?
Q : 아니요, 이번에는 왓슨씨가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 그건 아마도 홈즈가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고 봅니다. 어떤 사건이라도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건 현장에 있어서 하나도 빼놓지 않고 관찰하는 그의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말입니다.
Q : 홈즈씨 당신에게는 형이 한분 있다고 들었는데요?
A : 네, 저보다도 탁월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마이크로프트입니다. 통계, 추리 등을 통해 정책결정 등의 일을 하는 정부공무원입니다. 가끔 저에게 중대한 사건에 대해 의뢰를 부탁하기도 합니다. 브루스 파팅튼 설계도(1895년)에서 형이 제게 의뢰하는 이야기가 나오죠. 하지만 형은 현장에서의 적응력은 저보다 많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즉 현장에 나가서 사건을 수사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행동한다든지에 대해서 꺼립니다. 그 점이 내적인 형과 외적인 저의 명확한 차이죠. 아무래도 사건수사에 대해서는 활동력과 결단력이 있는 제가 한 수 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하.
Q : 허드슨부인에 대해 한말씀 해주시죠?
A : 네, 다양한 의뢰인들이 우리들의 숙소이자 사무실로 올라올 때 이를 안내해주는 역할을 허드슨 부인이 해주고 있습니다. 한마디 불평불만 없이 해주는 것은 물론, 저에 대한 존경심마저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대단히 죄송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숙비를 좀 더 올려드려야 할 것 같군요, 하하.
Q : 사건현장이나 용의자를 추적하기 위해 마차를 많이 이용하셨는데 마차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A : 저희는 주로 영업용 마차를 이용했습니다. 이에는 1마4륜4인승인 그로울러(growler)와 1마2륜2인승인 핸섬(handsome)이 있습니다. 그로울러가 런던에 나타난 것은 1830년 중반이고, 당시 마차 대수는 9,700대, 하루 이용승객은 8만명, 1인당 요금은 18펜스입니다. 그리고 일반인이 사용한 자가용으로는 1마4륜4인승인 박스형 브로엄(brougham)과, 2마4륜인 랜도(landau), 1마4륜2인승인 빅토리아 등이 있습니다.
Q : 미국의 앨런 핀커튼이 실제 세계 최초의 사립탐정사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 음, 그런가요. 이에 대해서 특별히 대답할 가치가 없군요. 이미 저의 기록을 책으로 보셨겠지만, 공포의 계곡(1888년)에서 그의 사무실 탐정인 버디 에드워즈가 나옵니다. 그리고 레드 서클(1902년)에도 그의 이야기가 살짝 나오죠. 1850년경에 그가 최초의 탐정사무실을 열고 활동을 했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활동은 제가 최초라고 자부합니다. 아, 그리고 또 문제해결 능력에 있어 저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안 그런가, 왓슨?
그는 상기의 사건에서도 뚜렷한 활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사건을 기록한 책을 보면 잘 알 수 있을겁니다.
Q : 마지막으로 홈즈 선생님이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시죠?
A : 우선 오늘날의 저를 있게 해주신 아서 코난 도일(1859.5.22.~1930.7.7) 선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에드거 앨런 포우와 뒤팽에게 감사드립니다. 또 왓슨의 책에 삽화를 그려준 시드니 파젯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음, 보헤미아의 스캔들(1887년)에 나옵니다만, 제가 유일하게 관심을 두었던 여성인 아이린 애들러가 보고싶군요. 저를 한방 먹였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100년이 넘도록 저를 사랑해주시는 팬들에게 뭐라고 감사드려야 할지, 감사합니다.
책을 읽는 것은 마치 산을 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마땅한 비유가 아니었다. 산은 어느 하나 같지 않아서 산을 오르는 방법이며, 시간이며 그것은 천차만별,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렇다고 그 모든 방법을 강구할 생각은 없다. 언젠가 하나의 산에 관한 오만가지 연구를 하게 된다면 너무 기뻐 하늘이 닿도록 펄쩍펄쩍 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그것은 가당치도 않을 일처럼 느껴진다. 한마디로 필이 '강력하고 깊숙하게' 꽂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으로 셜록홈즈에 입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흡족한 기사가 될런지는 모르겠다.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셜로키언들이 보았을 때 짜장 유치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셜록 홈즈 초심자는 그 전집을 즐겁게 완독한 결과를 보고서(인터뷰)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