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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를 잊고지내는 사람들에 대한 매서운 질책
조정래의 소설인 <오 하느님>을 읽어가면서 나는 또다른 상념에 빠져들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망한 나라의 백성으로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신길만, 김경두 같은 인물들이 그저 그 시대의 인물로만 여겨지지가 않고 아득한 먼 옛날 우리 선조들의 또다른 모습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단기 3000년 무렵, 고구려가 당나라에 멸망당한 후 고구려땅에서 살던 많은 젊은이들은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 군사들에게 이끌려 붙잡혀간 후 당나라 곳곳으로 흩어져서 노예로서 팔려간 상황처럼 느껴진 탓이다. 그때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는 수나라 등 중국땅에 세워진 많은 나라들이 고구려 제국에게 멸망당한 지난 역사를 기억하고는 다시는 고구려땅에 새나라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그 싹을 자르기 위하여 고구려의 젊은 장정들을 붙잡아다가 중국 전 지역에 노예로서 팔아먹은 것이다. 혹시 모를 반란을 막기 위하여 그네들은 가족이나 친척과 뿔뿔히 흩어져서 중국 여러 곳으로 흩어져 끌려갔고, 결국 그곳에서 대부분 비참한 삶을 살다가 죽었다.
그때로부터 천이백년전이 흐른 일제 강점기 시절에 또다시 이 땅에서 슬픈 역사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음을 이 소설을 통해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신길만이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끌려가게 된 까닭도 나라를 잃어버린 망국의 백성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지원병’이라는 이름 아래 가기 싫은 길로 끌려가게 된 것은 가족을 죽음의 땅으로 보내지 않기 위한 자기 희생행위였다. 자신의 희생으로 가족 모두를 살리기 위한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천삼백오십년전 고구려가 망했을 때도 고구려 장정들은 그저 젊다는 이유만으로 당나라 군사들에게 끌려갔을 것이다. 고구려에게 여러번 당해 나라마져 뒤바뀐 역사를 갖고 있던 중국인들은 강대했던 고구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모든 고구려 장정들을 끌고 갔었으니까. 그러니 결국 방법만 다를 뿐 우리 민족은 천이백여년이 지난 일제 강점기 시절에 또다시 똑같은 일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 제국의 힘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총알받이로 끌려간 이른바 ‘지원병’들인 조선인들이나, 한민족의 힘을 없애기 위하여 아예 그 싹을 자르는 방편으로 끌려간 고구려 젊은이들이나 우리 민족이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 남의 나라 민족한테 당한 고통과 아픔이 어떤가를 이 소설은 웅변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중국땅에 자리잡아 여러번 이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겨가면서 지낸 중국민족이 주변 이웃나라들에게 과거에 행한 여러 가지 행위들은 바로 그네들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비근한 예로 흉노족들과 싸움을 벌이다가 여러 번이나 위협을 느낀 당나라가 흉노족이 사는 무성한 숲을 이백년간이나 불을 질러서 결국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인 고비사막으로 만든 행위는 중국의 이민족에 대한 정책을 잘 알려주고 있다. 즉, 가까운 적은 복속시켜 철저히 지배하고 멀리 사는 두려운 적은 친분을 맺어 원만하게 보냈던 그네들의 과거 역사가 바로 그들의 역사인식과 가까운 이웃에 대한 만행의 결과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소설 <오 하느님>에서는 주인공인 신길만이 마지막에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암시되고 있지만, 일본군과 소련군을 거쳐 독일군으로 복무하다가 마지막에는 미군의 포로가 될 때까지 그 파란만장한 과정에서 신길만이라는 인물을 지켜주었던 것은 같은 민족이나 힘있는 다른 민족이 아니라 바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적에게 패해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벌이는 육박전을 앞두고 생각난 말은 ‘호랑이한테 열두번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나!’라는 어머니의 말이었고, 서로 죽이는 옥쇄행위를 하는 자결의 순간에서 그를 살린 것도 ‘총알 피해 댕겨라’는 아버지의 무뚝뚝한 한 마디 말이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느끼는 부모님의 한 마디 말은 바로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오늘날 우리 민족을 있게 만들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신길만에게 했던 부모님들의 짧은 이 몇 마다 말은 과거 우리네 조상들이 고통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지니고 살았던 생활신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작품 <오 하느님>은 우리들에게 그동안 잃어버리고 지냈던 과거 역사를 다시금 일깨워주면서 오늘의 삶을 경고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거의 고통스런 역사를 잊어버리고 사는 민족은 똑같은 고통을 겪게 되리라고...
나는 고구려가 당나라에 망한지 천이백오십년이 지났을 때 또다시 우리 민족이 남의 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슬픈 유랑민이 되어 결국에는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천이백오십년전 나라가 망해 이국땅에 끌려가서 고통 속에 죽어간 고구려 선조들에게 조용히 묵념을 드렸다. 다시는 이처럼 불행하고 슬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고통스런 지난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