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황진이
김탁환 지음, 백범영 그림 / 푸른역사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나, 황진이라는 소설만큼 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책을 없다. 예전에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피터 벡셀의 소설 아닌 소설을 읽고 소설에 대한 정의에 대하여 그리고 문학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지만 이 책은 그 이후 처음으로 이런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역사와 소설의 만남.. 이는 여태껏 수많은 역사소설에서 시도해왔던 과제였고 따라서 그리 생소한 것도 아니건만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놀라움과 당혹감을 금치 못할 듯 싶다. 우선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뭐 그리 많은 주석들로 가득 차 있는지.. 그리고 소설이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서간문으로 풀어나가는 것은 우선 형식적인 면에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어떤 이는 이 소설의 의미를 요즘 일고 있는 미시사의 유행에 대한 한 조류로 판단하고 있지만 나는 이것이 미시사냐 아니냐는 나중 문제일 것 같다. 중요한 건 작가가 의도한 오래 전 유명한 시구나 한시 그리고 수많은 일화만으로 또 다른 작품을 만들 수 있음에, 우리 인간이 만든 문화적 업적을 자축해야 할 듯 싶고 그것을 충분히 소화해낸 작가의 역량에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 사실 난 한시나 우리나라 시조 같은 고전문학에는 참 문외한이다. 세계문학전집에 있는 작품들은 다 읽어봤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고전문학에 대해서는 나도 알게 모르게 서구화된 문학적 전형에 너무 길들여져서 그 아름다움을 느끼기 전에 지루함을 먼저 느낀게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동양의 보편적인 문학관 인생관 세계관을 느낄 때는 항상 직선적이고 또 기계적인 요즘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이자 우리의 유일한 해독제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 어린 바람을 갖게 되었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좋은 책이란 깊은 감동을 주어야 한다. 싸구려 감동이나 얄팍한 술수로 사람의 마음을 농간하는 책은 결코 오래가지 않으며 또한 언젠가 외면받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데 그와 반대로 진짜 깊은 감동을 주는 책은 처음에는 읽기 힘들어서 또는 유행이나 취향이 일치하지 않아 비록 외면받을지라도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나름대로 그 문학적 가치와 혹은 업적으로 우리의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리라 믿는다.

난 그런 소설 중에 나, 황진이라는 소설이 분명 아까 말한 후자에 속하는 책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으며 따라서 난 이 책을 읽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큰 행운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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