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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팔레스타인 1 - 만화로 보는 팔레스타인 역사 ㅣ 아! 팔레스타인 1
원혜진 지음,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감수 / 여우고개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니 도대체 왜..?'
지난해 말 알라딘에서 질렀던 9만원 가량의 무이자 3개월 할부가 끝나가던 시점과 토담의 지정도서가 없던 시점과 겹쳤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새로 생긴 돈은 새로운 무이자 할부로...
그래서 산 책 중 하나가 '적군파 - 내부 폭력의 사회 심리학'이었습니다.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된 내용은 적군파가 궤멸하게 된 '아사마 산장 사건'에 관련한 내용입니다만 제가 흥미를 느꼈던 부분은 1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 테러 사건'이었습니다.
1972년에 팔레스타인해방전선 소속의 세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에 도착한 직후에 총과 폭탄으로 승객들을 향해 테러를 저지른 사건이죠.
엔하위키의 '사건/사고' 항목을 보다가 알게 되었는데 제가 이 사건을 특징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이 세 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본의 젊은 대학생들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니 도대체 왜...?'
'아~ 팔레스타이인~~'
저는 이미 팔레스타인에 관한 만화책을 2권 가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단지 제 취미 중의 하나가 만화책 읽기라서죠.제가 가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관련 만화책은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 기 들릴의 굿모닝 예루살렘. 둘 다 르포 형식의 만화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에 대해서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이 그냥 좀 특이하다 싶어서 산 책들이라서 읽긴 읽었으되 내용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중간 중간 역사적인 배경 등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만 기본적으로 르포 형식이라서 현재에 대한 얘기가 주 내용이죠.
그래서 이번에 토담에서 4월의 도서로 선정된 책 중 팔레스타인 관련 책이 있어서 바로 선택했습니다.
텍스트로 된 책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좀 더 깊은 통찰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받아보고 나니 만화네요. 만화책 표지가 뭐 이래. 낚였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책장에서 3권 다 꺼내서 다시 봤습니다.(보고 있습니다.)
원혜진 작가의 책을 읽고 나서 조사코의 책을 보니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기 들릴의 책에서도 안 보이던 곳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해가 됩니다.!
'아(하)~ 팔레스타이인~~'
관련 기사를 보니 이 책은 2권으로 기획되어 있다고 합니다. 현재 나온 1권에서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역사적 배경, 2권에서는 팔레스타인의 현재에 대해서
다룰 것이라고 하네요. 웹에서(오마이뉴스) 연재 중이긴니다만 세로 스크롤을 위한 칸 짜기가 아닌 것으로 보아 출판을 전제로 작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일종의 입문서인 셈입니다. 작품 전체적으로 풍기는 '학습만화스러움'도 이책의 목적을 위한 작가의 연출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알아야 하는 주제에 주인공을 직접 개입시켜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구체적인 설명은 주인공이 아닌 안경 낀 나이 든 박사나 선생님이 풀어나가는 형식은 전형적인 학습만화의 서사방식이죠.
(이건 작가의 역량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눈에 도드라지지는 않습니다만 중간 중간 전체적인 칸 연출과는 튀는 설정들이 매우 억제된 형태로 발견(39페이지, 98, 99페이지)되는 걸로 보아서는 전체적으로 지식전달을 위해 기능하도록 배치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리고 같은 지역적 배경을 가진 다른 두 외국 작가는 팔레스타인의 현재에 대한 르포를 보여주고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 작가는 지식전달을 위한 학습만화 형식을 빌려왔다는 것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설명이 필요하고 필요없고의 차이가 반영된 것이니까요.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효과적으로 달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저 부터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오랜 대립 관계의 시작, 시오니즘은 어디에 기원하고 강회되었는가, 현대 팔레스타인은 어떻게 자신들의 나라와 영토를 잃었는지에 관한 이해의 줄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잘 와 닿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건 이 책의 완성도나 내용과는 별개의 지점입니다.(완결된 책도 아니니까요.)
선민의식, 디아스포라, 홀로코스트...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들도 당해봤으면서.
결국 질문은 되돌아 옵니다.
'아니 도대체 왜...?'
'악의 평범성'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 테러 사건의 범인 중 유일한 생존자는 위의 책 저자와의 면담에서 무고한 승객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저지르게 된 것에 대한 질문에 답할 때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스라엘은 세계 혁명의 교전지대이고 그 곳에 온 사람은 자신의 목숨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혁명은 전체적인 것이다. 죄없는 자, 방관자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은 채 모두 혁명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인간적인 죄책감의 징후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실제로 복역하다가 몇 번 참회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번복해서 문제긴 하지만.. 나중엔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다고..)
범인은 승객들을 개별적인 인격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단지 혁명의 대상이거나 불가피하게 휩쓸린 구성요소로 본 것입니다.
친형의 영향으로 다소 급진적인 좌익 성향이긴 했지만 교사 집안에서 자유롭게 별 문제 없이 자란 젊은 일본의 청년(...라고 썼지만 이 형은 이 사건 전에 일본 국내선 비행기 납치해서 북한으로 망명했습니다..나름 유명한 사건이라고.. 집안 꼴 잘 돌아간...)
26명의 무고한 생명을 총과 폭탄으로 빼앗은 이스라엘에 처음 와본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의 제3국적 테러범
이 두 존재의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무시무시한 변화.
평범한 사람이 악을 행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한나 아렌트의 저작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된 개념인 '악의 폄범성'이 궁금해졌습니다.
대충 개념만 들었던 지라 뭔가 찝찝한 기분에 찾아보니 이분.
유태인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은 유태인 홀로코스트와 그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에 관한 내용입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전범 재판에서 아이히만이 '난 그냥 시켜서 그랬다능..' 이라고 답변한 것에 대한 해석입니다.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와 권리를 억압하는 사회, 정치적 구조악에 대한 저항이 없기 때문이다.(위키백과에서 퍼옴)
유태인 홀로코스트의 전범에 대한 분석을 통해 유태인 연구자가 주창한 개념을 유태인의 이민족 학살과 시오니즘을 보면서 떠올리는 아이러니.
(검색해보니 이책에는 그런 부분에 대한 사유도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태계쪽에서 판금도 당했다는 군요.)
'인간의 가치와 권리를 억압하는 사회, 정치적 구조악에 대한 저항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만으로는 금방 사유에 이르지 못하는 지금 시점에선 머리속만 복잡할 뿐 입니다.
얼마전에 발생한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도 평범한 미국인(무슬림이고 체첸 출신이지만 동생은 분명히 시민권자였고 동네 주민들도 그저 평범한 미국 아이였다고 증언했지요)이었습니다. (현재까지로는 국제 테러조직 등과의 연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답니다.)
체포 직전엔 엄마에게 전화해서 울면서 사랑한다고 했다더군요.
도대체 뭐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악을 행하도록 하는 걸까요. 흠.
사족.
위의 언급한 조 사코와 기 들릴의 만화를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세 작가의 국적도 모두 다르고 스타일도 모두 다릅니다.
1. 조 사코의 작품은 사실 작화 방식, 칸 짜기, 말풍선의 위치, 시선의 흐름 등이
이질적이어서 눈에 잘 안 들어옵니다.
다만 이런 저널리즘과 결합된 르포 형식의 작품을 많이 한 작가이긴 합니다.
(그래도 잘 안 읽혀요.. 로또 되면 보세요..)
2. 기 들릴은 애니메이터 출신이라 그런지 셀 애니메이션의 프레임을 쪼개 놓은 듯한
구성이 특이합니다. 어디서 어디로 이동할 때 보통 출발과 끝만 보여준다면 이 작가는
걸어가는 모습도 넣습니다.
선도 매우 간결하고 작화도 단순하게 해서 부담 없이 볼 수 있습니다.
이 작가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러 평양에도 1년 있었고 버마에도 있었고
중공 시절의 중국에도 있었답니다. 각기 책이 따로 있구요.
평양은 읽어보고 싶은데 절판 됐다는 군요...
3. 전체적인 내용과는 맞지 않아서 위에 언급을 안했지만 추천사를 쓴 박노자 교수의 지적은
참 날카롭습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이나 우승열패의 신화 등에서 보여주던 모습이라
반갑네요.
요즘 블로그에 올리는 글을 보면 좀 부담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던 터라..
암튼 관련 부분 옮깁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민족', '혈통' 위주의 집단의식이 어떤 파멸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 대한민국도 분명 '한민족의 국가'다. 탈북자나 조선족을 차별하는 현상에서 보듯이 한민족 안에서도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한민족'에 속하지 않는 이는 대한민국에서 영원한 비주류일 수밖에 없다. (…) 한국 기업과 아시아 노동자들과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신한 것은 비단 이스라엘의 유대인만도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지금, 여기에서" 꼼꼼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