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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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만약에 내가 책상위에 올려진 내 팔을 내려다 보면서도 그것이 '내 팔'이라는 '감각'이 없다면어떤 느낌일까. 눈으로는 내 팔과, 다리와, 몸이 보이는데, 그것들이 '내 것'이라는 감각이 없다면, 그래서 마치 내 몸이 사라진것 같이 생각된다면 어떻게 될까.

 한 여인이 급성 다발성신경염에 걸려 주추신경계통 전체에 걸쳐 척수신경과 뇌신경의 감각성 신경근의 기능을 잃게 된다.  간단히 얘기하면 자기 자신이라는 고유감각이 완전히 상실된 것이다. 물질적이고 형태를 갖춘 몸에 이해 지탱되는 정체성, '육체적 자아'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시각에 의지해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방법을 터득한다. 그러나 그 몸이 움직이는 느낌은 절대로 느낄 수 없다. 마치 몸을 잃은 혼과 같은 상태인 것이다. 그녀는 불굴의 의지로 이처럼 절망적인 장애를 딛고 몸을 사용하는 방법들에 적응했지만 평생 '몸이 없는' 채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신경학 전문의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는 그의 저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이처럼 일반인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신경학적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의 책은 신경장애 환자에 대한 연구서도, 임상 보고서도 아니다. 오히려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에 처한 인간들이 그것을 이기려고 애쓰고, 디고, 극복해내고, 혹은 무너지는 생생한 삶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고통속에서 명하게 드러나는 인간 존재를 담고 있다.

 신경학적 장애의 원인과 증상은 너무나 다양하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들을 지극히 제한적이다. 오늘날처럼 눈부시게 발달한 과학에서조차도 인간의 뇌안에 어떠한 능력과 원리가 담겨 있는지, 것들이 어떻게 작용해서 한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는 부분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의학은 인간을 '증상'으로 판단하는 일에 익숙하다. 리는 '머리가 아픈지, 가슴이 아픈지, 혹은 팔 다리가 저린지'에 따라서 분류된다. 도로 세분화 되었지만, 오히려 전체는 잃어버리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앓고 있는 무수한 증상은 우리의 일상과, 우리의 관계와, 우리의 감정과 리의 역사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의  인간적인 존재 전체를 근본적으로 다루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올리버 색스는 병리적 기술과 더불어 '한 인간의 역사'에 관심을 둔다. 또한 현대 의학이,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자의 결함에만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까닭에, 변화되지 않고, 상실되지 않고 남아 있는 환자의 능력을 간과해온 것을 지적한다.

오늘날의 의학이 '뇌에 손상을 입으면 추상적인 사고는 결여되고, 구체적인 것만을 이해하게 된다'로 표현한다면, 올리버 색스는 '뇌에 손상을 입어도 구체적인 것을 이해하는 원래의 능력은 상실되지 않고 남는다'고 표현한다.

전자는 인간을 고통에 수동적인 존재로 파악한다면, 후자는 고통속에서도 끈질기게 자신을 드러내는 인간의 능력과 깊이에 주목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환자들을 마주하는 그의 시선은 따뜻하고 진심어린 애정과 존경이 담겨 있다.

우리가 흔히 '저능아'라고 부르며 무시하고 동정하는 사람들 내면에 존재하는 '마음의 질'을 소중히 여기고, 한가지 분야에만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자폐아들에게서 우리가 진정으로 소중히 여겨야 할 '창조적 지성'을 발견한다.

 일면 특이하고, 신기한 그의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세상엔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고통이 존재하는지 놀라게 되고, 그 고통속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적응하고 또 분투하며 살아가는지를 발견하며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자신의 육체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여자나, 타인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 상실증 환자나 또, 아무것도 기억에 저장하지 못하는 사람의 삶이란 우리가 결코 상상할 수 도, 또 이해 할 수 도 없는 고난과 좌절와 비애가 담겨 있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간다. 그들 나름의 기쁨과, 희망과, 슬픔을 감당하면서 살아간다. 그 과정과 내용은 단순히 대단하다라고 놀라는 것 이상의 감동이 담겨 있다.

 올리버 색스의 글 속에는 우리가 얼마나 견고하고 지독한 편견을 가지고 장애있는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지를 일깨우는 그의 뜨거운 목소리도 있다. 그러한 편견들이 그들이 겪고 있는 육체적 정신적 장애 위에 더 가혹한 덧을 씌우고 있다는 것도  일러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장애가 있고, 결함이 있더라도 그들 역시 하나의 인격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인간'이며 , 인간의 영혼은 사람의 지능이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그가 어떠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자세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고통속에서도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하며 싸우고 애쓰는 존재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있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 갈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재미있다.

복잡한 의학용어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각 사례들이 담고 있는 놀라움과 감동들을 마음 깊이 느끼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아이를 재운 늦은 밤, 무려 네 시간이나 꼼짝않고 이 책에 빠져들었다.

인간이란 얼마나 오묘하고 또 대단한 존재인지, 그리고 아무렇지 않고 대단할 것도 없는 내 일상이 얼마나 귀하고 위대한 것인지 새삼 느끼면서, 내 안에도 단단하게 도사리고 있는 인간에 대한 편견과 오만을 반성해 본다.

 **팁 : 올리버 색스의 또 다른 책, '화성의 인류학자'도 함께 읽어 보시라.

         인간을 새롭게 이해 할 수 있는 놀라운 얘기들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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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아줌마 꼬물댁의 후다닥 밥상
임미현 지음 / 미디어윌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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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부라면 누구나 집에 요리책 한 두권 사 두게 된다.

일 먹는 밥 반찬이든, 어쩌다 치르는 손님상이든, 음식을 한다는 일은

여자들에게 있어 제일 큰 스트레스다. 그러다보니 서점에 가면 꼭 요리책을 기웃거리게 되고

한두권 사오게도 되는데, 문제는 그렇게 사온 요리책중에서 제대로 활용하는 것들은 정말 몇가지

안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쓴 꼬물댁은 네이버 블로그를 하는 주부들이라면 대개는 한두번 들려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음식 살림꾼이다.  꼬물댁표 음식의 특징은 재료가 건강하다는 것, 그리고 방법이 참

간단하다는 것, 그런데 맛은 아주 좋다는 것이다.

소문을 듣고 그녀의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은 금방 그녀의 펜이 되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직접 찍은 사진들에, 수다를 떠는 듯 편하게 소개하는 요리방법들을 읽다보면 누구나

쉽게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렇게 책으로 나오기 전부터 나도 자주 꼬물댁의 블로그를 들러 그녀의 요리법을 노트에 열심히

베끼곤 했었다. 그리고 대개는 다 성공했다.

그러던 그녀가 마침내 그녀의 요리들을 한권의 책으로 묶게 되었다고 했을때, 반갑고 기뻤다.

모처럼 요리책에 실린 모든 요리들이 만만해 보이는 요리책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자, 이젠 베끼는 수고없이 그녀의 요리책을 부엌 한 곳에 두고 부지런히 따라 해 볼 참이다.

후다닥 하면서도 맛있는 음식들이라..

벌써부터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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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안병수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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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어릴때만 해도 '암'은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이나 걸리는 병이었다.

지금 한국은 인구 네명당 한명 꼴로 암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노인들이나 걸리는 병이었던 뇌졸중이 청소년에게 나타나고, 신생아의 30% 이상이

아토피를 앓고 있다는 놀라운 통계들과, 비만이 초등학생들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도 우리는 우리에게 당면한 사태의 심각성들을 깨닫지 못한다.

그저 내가 아프지 않는 한, 그것은 나와는 먼 일인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자신이 그랬다.

그는 국내 유수의 제과회사 간부로서 16년간 과자에 절어 살았던 사람이다.

그 분야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들이 예외없이 건강을 잃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 자신도 서서히 몸이 망가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는 자신이 일하고 있고, 매일 먹고 있는

것들이 자지 몸에 미치는 영향을 깨닫지 못했다.

마침내 그가 정말 신뢰하던 동료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고, 그 동료의 운명이 자신의 미래일 수 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직장을 떠나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다. 이 책은 그 연구의 산물이다.

 지난 1세기 동안 급격하게 변화한 우리의 환경중에서 가장 극적인 것은

식생활에서 가공식품과 패스트 푸드의 비약적인 발전이다.

이런 음식들엔 수많은 식품첨가물과 화학물질들이 들어 있다.

온 국민이 좋아하는 '초코파이'를 예를 들자.

 초코파이에 진짜 초컬릿은 들어 있지 않다.

정통 초콜릿에 사용되는 값비싼 코코아 버터대신 화학처리를 한 유지가 사용된다.

정제가공유지는 수소첨가반응의 산물이다. 수소를 첨가시킨 경화유는 요즘 문제가 되는

'트랜스 지방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트랜스 지방산은 한마디로 뇌세포를 파괴시키는

물질이다. 트랜스 지방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물질이므로 인체내의

각종 생체기능조절 물질의 구조를 왜곡시킨다.

인간의 몸은 지극히 유기적이고 정교한 시스템이다. 세포들은 세포막에 '선택적 투과'기능이 있어

생체 활동에 필요한 물질은 받아들이고, 유해한 물질은 차단한다.트랜스 지방산은 스파이처럼

이 시스템을 교란시킨다. 트랜스 지방산이 혼입되면 선택적 투과 기능에 문제가 생기고

이것이 바로 '면역기능 저하'로 나타난다.

더불어 뇌세포를 교란하여 지속적으로 이것을 섭취한 아동들은 크고 작은 지능장애에

직면하게 된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면역력 약화로 고생하고 있는가.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자랄때 까지 먹는 약과, 병원에 가는 횟수들은 우리가 어릴적과

비교하면 놀라울 만큼 증가되어 있다.

 아이를 키우는 집집마다 아이들이 참을성이 점점 적어지고, 짜증이 늘고, 주의력 결핍이나

산만함들로 고민하는 엄마들이 많다. 이런 현상에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아니 태아시기부터

섭취해온 트랜스 지방산의 영향이 크다. 이 외에도 트랜스 지방의 위험성은 수없이 많다.

트랜스 지방은 우리가 매일 먹는 '식용유'에서부터, 과자류, 패스트 푸드류 등 대부분의

가공 식품에 첨가 되어 있다.

 트랜스  지방산은 현대 문명이 탄생시킨 괴물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고 있는 대부분의 가공 식품에는 한 식품당 최대 수십가지의 식품 첨가물이

들어 있다. 그 성분들의 대부분은 소비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체 섭취된다.

중요한 것은 그 성분들이 대부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화학물질 이라는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성인 한명이 1년간 약 4킬로의 화학 물질을 섭취한다는 연구도 있다.

암과, 심 혈관 질환, 당뇨 같은 '생활습관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주변에 그렇게 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이러한 첨가물들은 심지어 아이들이 먹는 물약과 시럽에도 다량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화학물질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리의 몸은 너무나 정교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하나의 우주와 같다.

생체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효소들은 1조분의 1의 농도에서도 활성화가 된다고 한다.

1조분의 1이면, 수영장에 가득 채워 넣은 쌀 가운데 한톨 정도의 양이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미국의 천재 과학자는 화학물질의 인체 내 최소 반응량에 대해서

한 마디로 평한다. '한 분자도 해롭다'

따라서 소량이니 해가 안된다는 말로 막연히 위안을 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그런 위험한 물질을 적어도 하루에 몇 그램씩을 섭취하고 있다면, 내 건강이 어떻게 될지는

충분히 예상 할 수 있다.

 이런 얘기들을 하면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치면 먹을만한 것이 몇가지나 되겠는가. 그런데 스트레스 받느니, 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먹는 편이 건강에 훨씬 나을 것'이란 얘기다. 또는 매일 라면만 먹었어도 감기 한번 안걸린다느니,

건강 따지는 사람들이 더 자주 아프다느니 하는 말들도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포텐거의 고양이'라는, 과학계의 유명한 실험을 소개한다.

고양이를 2조로 나누어 한쪽 고양이에겐 정상 사료를, 다른 쪽에겐 영양적으로 다소 결함이

있는 사료를 투여하며 사육했다.

정상적인 사료를 먹은 고양이들은 2대, 3대, 그 후까지 건강에 지장이 없는 우량한

고양이고 커 갔다. 그러나 결함이 있는 사료를 먹었던 고양이들은, 당 대엔 문제가 없는 듯

했으나, 2대에서 벌써 이상 징후가 발견되었고, 3대에선 노골적인 신체장애와 정신적 장애가

나타났다.  오늘날의 우리는 포텐거의 2대째 고양이에 해당한다면, 우리의 자녀들과

손자들의 세대에는 더 비극적인 현상들이 나타날지 모른다.

이미 젊은 자녀들이 나이 든 부모보다 더 많이 아프고, 더 심한 병에 걸리고 있음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가공식품과 인스턴트 식품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알면서도 매일 먹는다. 저자는 그 이유를 '소비자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왜 나쁜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근간에는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어온 가공식품과, 화학물질들을 둘러싼

수많은 대기업의 이익들이 정계와 학계와 긴밀하게 유착되어 있는 거대한 음모가 숨어 있다.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생산해 내는 제품들의 진정한 정보들을 소비자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수많은 위험성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발표와

논문은 교묘한 로비와 압력으로 사장시킨다.

화학물질들은 나날이 새롭게 생산되고 있으며, 이미 정부가 이런 모든 물질들의 위험성을

확인하고 관리 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고 있다. 최대한 스스로 섭취하지 않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자연을 거스르는 음식은 먹지 말것.

음식을 만드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들일 것.

이 두가지에 최선을 다하면 우리는 훨씬 건강하고 충만한 삶을 살 것이다.

19세기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 바흐의 말로 이 책의 모든 것을 요약한다.

즉 '우리가 먹는 것이,바로 우리다'라는 것이다.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이 우리의 몸을 만든다. 그리고 우리의 신체와 정신을 움직인다.

내 아이들과, 내 가족, 그리고 내 몸이 어딘가 불편하고 만족스럽지 않다면

가장 먼저 우리가 무얼 먹고 있는지 부터 살펴보자.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엄마들과, 엄마가 될 사람들과, 부모가 될 사람들이라면 정말 꼭 읽어야 할 책이다.

한 해가 가고 새해를 준비하며 이 책을 만난 것이 참 다행이다.

새해의 내 소망은  무엇보다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 이상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먹는 것이, 바로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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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시간을 아세요? 베틀북 그림책 49
안느 에르보 글 그림, 이경혜 옮김 / 베틀북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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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파란 시간을 아세요?

불을 켜기엔 아직 환하고

책을 읽거나 바느질을 하기엔 조금 어두운 시간.

읽던 책을 그대로 펼쳐 놓은 채

생각에 잠기고 꿈을 꾸는 시간.

펼친 책장이 희미한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시간.

 

땅거미 질 무렵의 어슴푸레한 시간.

그림자는 빛나고, 땅은 어둡고, 하늘은 아직 밝은 시간.

온 세상이 파랗게 물드는 시간.

세상 모든 것들이 조용이 밤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

하늘 끝자락이 붉어지고, 태앙은 멀리 어딘가로 자러 가는 시간.

 

늘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다가

돌아갈 때만 조금 달라지는

슬프고 아름다운 시간.

 

그런 파란 시간을 정말 아세요? - (첫 페이지 전문)

 

나는 가끔 나를 위해 그림책을 산다.

두꺼운 어른책들이 수 많은 언어를 나열해 설명하는 것보다 더 명쾌하고 아름답게

삶의 빛나는 조각들과 진리들을 드러내는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떄나 지금이나 해지고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세상은 왠지마음이 조금 저려온다.

슬픈것은 아닌데, 그저 좀 아릿하고 아련하고 뭐라 딱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다.

 

장그르니에의 '섬'에 보면 '고양이 물루'라는 글 속에서 이런 순간을 표현한 대목이 있다.

 

'해질 무렵, 낮이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그 고통의 시각에, 나는 나의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고 싶어 고양이를 내 곁으로 오라고 불렀다. 내가 누구에게 그 불안한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겠는가? <나를 붙잡아다오> 나는 물루에게 말하곤 했다.

'나는 겁이 난다. 해가 질 때, 내가 잠이 들 때, 그리고 잠에서 깨어날 때, 이렇게 나는

하루에 세 번 겁이 난다. 내가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를 저버리는 이 세번의

순간.. 허공으로 문을 활짝 열어 놓은 듯 한 그 순간들이 나는 견딜 수 없이 무섭다'

 

아마도 내게 파란시간은 그르니에적인 불안함을 던져주는 시간으로 마음에

남아있는 모양이다.  태양아래선 모든게 확실하지만, 어둠속에선 다시 모든게

모호해 지는 그 두려움.. 오래 혼자 지낼때, 밤은 늘 내게 무서웠다. 파란시간은

내게 그런 두려움과 흔들림을 조금씩 알려주는 시간이었다. 낮동안 나 자신을

감싸던 가식과 위선의 껍질이 벗겨지고, 한없이 약하고 초라한 내가 드러나는 시간..

자신을 비로소 온전하게 마주하는 시간이 왜 그렇게 두려웠을까.

인간이란 본래 살아가는 내내 쉼없이 흔들리는 자신을 애써 붙드는 존재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 시절 나는 고양이 물루같이 흔들리는 내 마음을 붙잡아줄 따뜻한 존재감의 대상이

늘 그리웠다.  그래서 진심으로 '눈으로 나마 그에게 가만히 기대어 보았던' 그르니에를

부러워 했었다. 따듯하게 살아있는 무엇을 만들기는 어려워서 사무실 창가에 푸른것

몇개를 들여놓고 말을 걸고 정을 주어가며 기르던 날들이 떠오른다.

아마도 이 책의 제목에서 그리고 첫 페이지의 글 속에서 나는 문득 마음을 울리는

지난 시절의 무엇을 찾아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머리는 한낮의 빛으로 가득하고, 심장은 한밤의 어둠으로 물들어 있는' 파란시간의 모습이

그 시절의 내 모습인것만 같아서 말이다.

 

이 그림책의 내용은 물론 나의 이런 상념과는 거리가 있다.

태양왕과 밤의 여왕 모두에게서 쫒겨난 파란시간은 결국 낮과 밤 사이로 슬며시

끼어들어 자신의 자리로 만들고 나머지 시간은 낡은 가로등속에 숨어 지낸다.

그리고 사랑하는 새벽공주를 만나기 위해 밤마다 까만 새가 되어 먼곳으로 날아갔다가

동틀 무렵 태양왕이 잠이 깨기 전에 쏜살같이 달아난다.

 

파란시간과 새벽은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는 시간들이니 애달픈 그리움이라 하겠다.

 

아마 어린이는 이 글과 그림속에서 자기만의 파란시간을 만날것이다. 어른인 내가

내 나름의 파란시간을 만나듯이 말이다. 함께 읽으며 하루가 저무는 그 사이를

같이 지켜보고, 알아채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참 좋을 것 같다.

 

언젠가 어린 필규가 해 저문 하늘을 보며 '엄마.. 파란시간이 왔어요' 라고 내게

일러준다면 좋겠다. 그래서 같이 파란시간이 주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는 그애만의 파란시간을 마음에 새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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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 밀레니엄 북스 25
생 텍쥐페리 지음, 안응렬 옮김 / 신원문화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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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에서 최초의 야간 비행을 하던 날 밤의 들판 여기저기에

드믄드믄 흩어져 있던 불빛들이 마치 별처럼 깜빡이던 캄캄한 밤의 인상이

지금도 내 눈에 선하다.

 그 불빛 하나하나가 이 어둠의 큰 바다 속에도 인간의 의식이라는 기적이

깃들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보금자리 속에서 사람들은

읽고, 생각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되뇌이고 있을 것이다. 딴 집에서는

공간의 계측에 애를 쓰고, 앙드로베드좌의 성운에 관한 계산에 열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저기에서는 사랑을 찾아 속삭이고 있을 것이다.

 띠엄띠엄 그 불빛들은, 저마다의 양식을 찾아 들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 중에는 시인의, 교원의, 목수의 불빛 같은 아주 얌전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 살아 있는 별들 가운데에는 또한 얼마나 많은 닫혀진 창들이,

꺼진 별들이, 잠든 사람들이 있을 것인가.....

 서로 맺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들판에 간간이 타오르고 있는 이 불빛들이

어느 것들과 마음이 통하도록 해야 한다.'

      

                       <생떽쥐빼리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중 '인간의 대지 일부분'>

 

생떽쥐빼리는 비행사였다.

그는 비행을 하며 삶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생각하고, 답을 찾았다.

어둔 밤, 낮선 땅 위를 날고 있을때 그 어둠 속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들판의 불빛들은

그에게 자신이 떠나온 땅위의 사람들과 삶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 불빛들이 있어 고독을 이기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희망을 갖는 것이다.

 

자신의 집 창가에 문득 불을 밝힌 사람들은 그 빛이 까마득한 상공을 지나가는

익명의 비행사에게 위안과 희망을 준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그저 책을 읽고, 혹은 자신이 몰입하던 무언가를 완성하기 위해 켜두었을 뿐이다.

그러나  비행사는 그 불빛들을 지나며,  마주치는 또 다른 불빛들과 더불어

인간의 의식을 생각한다. 어둠을 밝히는 인간의 의식이 그 밤을 가르면 날고 있는

자신의 의식과 만나는 것이다.

의도하지는 않은것이나, 분명 인간과 인간이 맺어지는 굳건하고 든든한 연대와 믿음이다.

그 연대에 의지하여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세우고,

불확실한 어둠속을 계속 날 수 있는 것이다.

 

글을 써서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공간에 띄워보내며 나는 어둔 밤, 낮선곳을 향해

홀로 날고 있는 생땍쥐빼리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가 마주친 인간의 불빛들과 그 빛속에서 찾아내는 더 밝은 빛들을 생각한다.

 

아, 내 글이 들판에 드믄드믄 흩어져 있는 그런 인간의 불빛들을 딤고 있기를..

내가 익명의 사람들로부터 얻는 감동과 희망을 소중히 하듯이

내 글이 모르는 누군가에게는 작은 빛이 되어 심어지기를..

'어느 것들과 마음이 통하도록'할 수 있기를 감히 소망해 보는 것이다.

 

문득 다시 꺼내 든 이 책은 모든 구절이 소박하고 아름답고 진실되다.

인간과 삶에 대한 많은 의미들이 비행사의 체험을 통해 펼쳐진다.

 

그 시절의 비행이란 목숨을 거는 위험한 일이었다.

대지는 인간들에 의해 완전히 정복되지 않았고, 기계는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다.

비행사는 자신의 직감과 경험과 용기를 통해 새로운 항로에 도전하고, 극복하고

이겨낸다. 고도의 과학이전에 고도의 인간의 의식과 노력이이 그 모든 일들을

완전하게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가 꼭 비행사가 된 것 같았다.

그 두려움과 고독, 기쁨과 벅참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까마득한 하늘 위를 날고 있어도 나는 결국 거대한 인간의 일원이고 그들과

하나의 불빛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때의 그 짜릿한 환희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며칠간 깊은 밤에 비행사가 되어보라.

'어린 왕자'의 생땍쥐빼리의 인간적인 모습과 더불어 체험에서 나온 깊은

글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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