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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 ㅣ 밀레니엄 북스 25
생 텍쥐페리 지음, 안응렬 옮김 / 신원문화사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아르헨티나에서 최초의 야간 비행을 하던 날 밤의 들판 여기저기에
드믄드믄 흩어져 있던 불빛들이 마치 별처럼 깜빡이던 캄캄한 밤의 인상이
지금도 내 눈에 선하다.
그 불빛 하나하나가 이 어둠의 큰 바다 속에도 인간의 의식이라는 기적이
깃들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보금자리 속에서 사람들은
읽고, 생각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되뇌이고 있을 것이다. 딴 집에서는
공간의 계측에 애를 쓰고, 앙드로베드좌의 성운에 관한 계산에 열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저기에서는 사랑을 찾아 속삭이고 있을 것이다.
띠엄띠엄 그 불빛들은, 저마다의 양식을 찾아 들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 중에는 시인의, 교원의, 목수의 불빛 같은 아주 얌전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 살아 있는 별들 가운데에는 또한 얼마나 많은 닫혀진 창들이,
꺼진 별들이, 잠든 사람들이 있을 것인가.....
서로 맺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들판에 간간이 타오르고 있는 이 불빛들이
어느 것들과 마음이 통하도록 해야 한다.'
<생떽쥐빼리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중 '인간의 대지 일부분'>
생떽쥐빼리는 비행사였다.
그는 비행을 하며 삶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생각하고, 답을 찾았다.
어둔 밤, 낮선 땅 위를 날고 있을때 그 어둠 속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들판의 불빛들은
그에게 자신이 떠나온 땅위의 사람들과 삶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 불빛들이 있어 고독을 이기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희망을 갖는 것이다.
자신의 집 창가에 문득 불을 밝힌 사람들은 그 빛이 까마득한 상공을 지나가는
익명의 비행사에게 위안과 희망을 준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그저 책을 읽고, 혹은 자신이 몰입하던 무언가를 완성하기 위해 켜두었을 뿐이다.
그러나 비행사는 그 불빛들을 지나며, 마주치는 또 다른 불빛들과 더불어
인간의 의식을 생각한다. 어둠을 밝히는 인간의 의식이 그 밤을 가르면 날고 있는
자신의 의식과 만나는 것이다.
의도하지는 않은것이나, 분명 인간과 인간이 맺어지는 굳건하고 든든한 연대와 믿음이다.
그 연대에 의지하여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세우고,
불확실한 어둠속을 계속 날 수 있는 것이다.
글을 써서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공간에 띄워보내며 나는 어둔 밤, 낮선곳을 향해
홀로 날고 있는 생땍쥐빼리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가 마주친 인간의 불빛들과 그 빛속에서 찾아내는 더 밝은 빛들을 생각한다.
아, 내 글이 들판에 드믄드믄 흩어져 있는 그런 인간의 불빛들을 딤고 있기를..
내가 익명의 사람들로부터 얻는 감동과 희망을 소중히 하듯이
내 글이 모르는 누군가에게는 작은 빛이 되어 심어지기를..
'어느 것들과 마음이 통하도록'할 수 있기를 감히 소망해 보는 것이다.
문득 다시 꺼내 든 이 책은 모든 구절이 소박하고 아름답고 진실되다.
인간과 삶에 대한 많은 의미들이 비행사의 체험을 통해 펼쳐진다.
그 시절의 비행이란 목숨을 거는 위험한 일이었다.
대지는 인간들에 의해 완전히 정복되지 않았고, 기계는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다.
비행사는 자신의 직감과 경험과 용기를 통해 새로운 항로에 도전하고, 극복하고
이겨낸다. 고도의 과학이전에 고도의 인간의 의식과 노력이이 그 모든 일들을
완전하게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가 꼭 비행사가 된 것 같았다.
그 두려움과 고독, 기쁨과 벅참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까마득한 하늘 위를 날고 있어도 나는 결국 거대한 인간의 일원이고 그들과
하나의 불빛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때의 그 짜릿한 환희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며칠간 깊은 밤에 비행사가 되어보라.
'어린 왕자'의 생땍쥐빼리의 인간적인 모습과 더불어 체험에서 나온 깊은
글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