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인문학 -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
얼 쇼리스 지음, 이병곤.고병헌.임정아 옮김 / 이매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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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은 왜 가난할까.

'가난'이란 말을 떠올리면, 우선 게으르고 부족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남보다 노력도 안하고, 능력도 없고, 부족하고, 모자라고, 못한 사람들인것 같다.

이런 생각에는 '가난'의 궁극적 책임을 가난한 그 사람 자신에게 지우는 우리의 근본적인 태도가 있다. 그러나 '가난'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얼 쇼리스는 중범죄자 교도소에서 8년째 복역중인 여자 죄수 비니스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왜 가난한 것 같나요?'

갑작스런 이런 질문에 그녀는 대답한다.

'그 문제는 아이들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연극이나 박물관, 음악회, 강연회등에 데리고 다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애들은 그런 곳에서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배우게 될 겁니다.

그렇게만 되면 그 아이들은 결코 가난하지 않을 거예요.

길거리에 방치된 아이들에게 도덕적 대안을 갖게 해야 합니다.'

 그녀는 결코 가난한 이들이 돈이 없다거나, 능력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에게 돈을 주라거나, 훈련이 필요하다거나 더 많은 복지 서비스를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것들이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음을, 그녀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적 삶이란 무엇일까.

그녀가 얘기했던 정신적 삶이란, 가난한 이들이 공적 세계에 참여하여 정치적 삶을 살고, 성찰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사방이 한 개인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무력'에 포위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소외, 차별, 모욕, 질병, 배고픔, 공포, 결여는 모두 무력이다. 이러한 무력에 포위되어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가해지는 무력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그 무력을 자기 자신에게 향하도록 하는 것 외엔 대안을 찾지 못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모색할 수 있는 삶의 대안은 무력의 반사작용을 애초부터 방지하는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정치적 삶과 성찰적 삶에로 어떻게 이끌어 줄 수 있을까. 얼 쇼리스는 그 입구를 '인문학'에서 찾았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은 고대 그리스시절부터 세상 사람들의 성찰적 사고를 가능하게 내 준 근본적인 원천으로 기능해 온 학문이다. 인문학과 성찰적 사고, 정치라는 개념은 곧 '자기 통제'라는 개념속에서 하나가 된다. '자기 통제'는 인문학, 평온함, 그리고 인간의 삶에서 지워낼 수 없는 어려움들을 성찰을 통해 극복하는 뜻들이 담겨 있다. 즉 얼 쇼리스는 인문학 교육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조절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삶의 고난 속에서 무력이 아닌, 성찰과 반성을 통해 더 나은 삶에로 향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자 한 것이다.

 언뜻 황당한 얘기 같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친다니..

대부분의 복지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을 당근과 채찍을 통해 '훈련'시키는 데 촛점을 두고 있다.이런 기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능력이 없거나 가치가 없는 존재들이란 편견이 깔려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훈련이 아닌 교육, 그것도 '인문학'을 교육시킨다는 발상 자체를 가당찮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얼 쇼리스는 빈곤의 핵심이 무력의 포위망이라는 것을 파악하면서, 근본적인 접근이 아니고서는 절대 그 무력속에서 헤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그리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을 가르치는 '클레맨트 코스'가 만들어 진다.

면접을 통해 선발된 18에서 35세 사이의 문자를 익힌 빈곤층 교육생들이 다양한 과거와 사연을 안고

강의실에서 만난다. 그들은 생애 처음으로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를 배우고, 시를 감상하고 작문을 하게 된다. 최고의 강사들로부터 철학, 예술, 논리학, 시, 역사를 배웠다. 교육 중에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견학하는 코스도 있었다. '가난한 이들도 인간이며 그들의 인간성을 적절하게 존중하는 방식은 삶의 영역에서 시민으로 대우해 주는 것'이란 원칙하에 클레멘트 코스는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사람들을 그 인격 자체로 존중해 주었고, 결코 수혜나 베품의 차원이 안닌, 당당하고 수준높은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일깨우고 이끌어 나갔다. 에이즈와 임신, 구직과 실직, 질병, 그리고 가난 그 자체로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이 나왔지만, 17명은 끝까지 학업을 마치고 졸업을 했다.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은 학비를 지원받는 정규대학에 지원하거나 전일제 일자리를 얻었다. 즉 전보다 나은 삶을 향한 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이제 '클레맨트 코스'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캐나다, 멕시코, 호주등지에서 남미와 아프리카 까지 퍼져 나갔다. 인문학을 기초로 하고 있지만 각 나라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교육이 진행되어 많은 성공을 이루었다.  지난 10년간 클레멘트 코스는 4개 대륙에서 50개가 넘는 강좌가 개설 되었고, 최근에는 얼 쇼리스가 투병중에 방한하여 한국의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플라톤을 강의하는 교육도 이루어 졌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이상 무력의 포위망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당당하게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클레멘트 코스는 이제 다양한 인종과 문화권속에서 발전을 거듭해 가고 있다.

 클레멘트 코스의 성공은 우리로 하여금 '가난'과 '빈곤'의 주체들에 대한 편견을 일깨우게 한다. 보조금이나 주고, 훈련이나 시키는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는 우리의 복지 정책의 문제점도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한 사람의 인격으로 존중해주면서 그들의 삶을 통제하고 성찰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참된 '교육'이었을 것이다.

 최근에 신문에서 노숙자들로만 이루어진 연극단의 공연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노숙인들은 연극을 통해서 자신들의 과거와 화해하고 내면의 힘을 발견한다. 노숙인 몇명 모아서 연극을 하는데 지원을 하고 관심을 갖는게 무슨 효과가 있느냐는 반문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을 포기한 한 사람이 사회 전체를 공포로 몰고 가는 범죄자가 될 수 있듯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한 사람 하나의 힘은 절대 작지 않다.  우리의 역할은 그런 사람들을 꾸준히 돕고, 이끌어 주는 것이다.

 지난해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한창 화제가 되었었다.

대학교육도 취업을 위한 훈련으로 전락해가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힘을 길러주는 인문학 교육의 가치가 설 자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는데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사회전체가 삶에 대한 올바른 철학과 가치를 심어주는데 실패하고 있는데, 우리의 인문학은 당분간 제 자리를 찾지 못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는 인문학을 통해 어느새 우리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가고 있는 인문학의 진정한 의미가 다시 발현되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올 해에는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의 인문학'이 뿌리 내리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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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
실벵 다르니 외 지음, 민병숙 옮김 / 마고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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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무는 이맘때면 지나온 시간에 대한 회한과 다가오는 새날들에 대한 계획들로

몸도 마음도 분주해지기 마련이다.

이럴때는 기왕이면 절망보다는 희망을 찾고 싶고, 슬픔보다는 감동을 얻고 싶은것이 인지상정이다.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범 지구적인 희망과 감동을 얻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흔하게 비관을 털어놓는 환경론자들의 주장보다, 직접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

뛰어들어 눈부신 성과를 이루고 있는 실행가들의 이야기에 예상못한 감동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 우선 이런 것을 상상해보자.

. 병원의 수익으로 환자 중 3분의 2는 무료로 치료해 주고 성능 좋은 의료기구를 통상가의

절반 이하로 공급한다.

. 도심의 교통망이 매우 편리하고 쾌적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자동차는 일년에 단 몇 시간만

사용하면 충분하다.

. 당신이 일하거나 거주하는 건물이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생산한다.

난방기구나 에어컨도 필요없다.

. 당신이 매일 사용하는 포장 용기들이 더 이상 토양과 하천에 축적되지 않고

당신과 당신 자녀의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재활용된다.

. 은행에서는 4분의 3에 해당하는 고객들이 극빈상태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물론 수익을 올리면서..

. 자신의 나라를 초강대국으로 만들어줄 목재를 공급하기 위해 수천 핵타르의 숲을 개발한다.

그러나 생태계를 위태롭게 하지는 않는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이론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믿는가.

놀랍지만 이것들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그리고 그 일들 속에는 이런 놀라운 일들을 구상하고, 실천하고, 성공시킨 위대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 책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일을 하면서도 하나의 기업으로서 성공을 이루고 있는 전세계의 대안 기업가를 찾아 세계일주를 한 두 명의 프랑스 청년의 '사람 여행기'이다.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함으로써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방글라데쉬의 '무하마드 유누스'교수가

이 들 여행의 동기를 제공해 준다. 아무런 담보도 없이 극빈자들에게 돈을 빌려주어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수많은 극빈자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그라민 은행'을 창설한 유누스 교수의 이야기에서 그들은 이익을 창출하는 동시에

인류에게 공익을 주는 행동가의 이상적인 모델을 보게 된다.

실뱅과 마튜는 전 세계에 더 많은 유누스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들을 찾아 세계를 여행하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찾아가는 사람들을 '대안 기업가'라고 불렀다. 이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과격한 주장과 시위를 하는 대신, 그 방법을 찾아 구체화하고 실현해 가는 사람들이다.

'미래 세대들이 쓸 자원을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 극빈층을 포함한 현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개발'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개발에서 뛰어난 성과를 얻은 사람들이다.

이 대안 기업가들을 찾아 두 청년은 440일간 4대륙 38개국을 여행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중에 80명의 인물들을 구체화 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80명의 대안기업가들은 다양한 도전에 맞서면서 지속가능한 세계를 구축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영웅들이다.  

 그 영웅중의 한 명은 피터 말레즈다. 그는 벨기에 사람으로 효력이 뛰어나면서 환경을 전혀 오염시키지 않는 세제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사람이다.

유럽의 한 가구에서 빨래를 하는데 연간 평균 40킬로그램의 액제 세제를, 식기 세척에 10킬로의 분말세제를 사용한다고 한다. 이 세제들의 약 30%가 인산염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 독한 성분은

수질환경의 균형을 파괴한다. 한 가구가 1년에 넓이 6핵타르, 깊이 1.5미터의 호수 하나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피터말레즈는 에코버라는 회사를 설립해 자연요소를 이용해서 대기업제품보다 뛰어나면서 28일만에 생물학적 분해가 일어나는 친환경 세제를 개발한다. 제품이 알려지고 회사가 성장하면서 그는 공장역시 생태적으로 건설한다. 지붕에 잔듸를 덮어 여름과 겨울의 온도조절과 주변 새들의 서식지를 동시에 해결하고, 공장에서 사용되는 95%의 폐기물이 재활용되며, 사용한 물도 재처리하여 처음 들어올때보다 깨끗한 상태로 배출한다. 더 나아가 그는 에코버 제품의 성분과 제조방법을 고객과 경쟁사에 제공한다. 모든 기업들이 생태적으로 더 좋은 방법을 선택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농약과 살충제 대신 해충을 없애는 천적을 연구해서 농사에 이용함으로써 적은 비용으로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모든 공단이 서로 연계하여 자원을 순환하고 재활용함으로써 거대한 공단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현저하게 줄이는 시스템을 정착시킨 사람도 있다.

'맥도날드'같은 거대 패스트푸드 회사에 맞서 지방의 고유한 생산물과 그것들로 만들 수 있는 전통요리를 찾아 보존하고 알림으로써 지역경제를 살리는 한편, 고객들에게 더 신선하고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단체를 정착시키는 운동가의 얘기도 있다.

인도의 고빈다파 벤가타스와미라는 80세의 의사는, 노화나 영양실조로 생기는 백내장을 수술하기 위해 구입해야하는 인공수정체를 직접 개발함으로써 선진국의 30분의 1가격인 단 10달러의 비용으로 수술비용을 낮추는데 성공했다. 그는 한 수술실에서 여러명의 환자들을 수술하는데, 한 수술이 끝나면 바로 뒤돌아 다음 환자를 수술하고, 그 사이 간호사는 먼젓번 환자의 수술을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미국에서는 1700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수술을 단 10달러에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그가 세운 아라빈드 그룹은 현재 5개의 병원을 운영하면서 한 해 150만명 이상의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는데, 연간 20만건의 수술 중에서 47%는 무상으로, 18%는 원가보다 저렴하게 제공된다. 즉 35%의 유상환자에서 얻어지는 수입으로 전체 제정을 충당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병원에 오는 어떤 사람도 소득을 증명하도록 요구받지 않는다. 누구나 원하면 무료로 수술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이 병원이 지향하는 모델에 대한 신뢰감을 바탕으로 기꺼이 자신의 형편에 맞는 치료비를 지불한다. 지금까지 이 병원을 거쳐 간 환자는 1600만명에 이른다.

어떤 단체의 도움도 없이 자력으로 운영하며 이렇게 엄청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고빈다파는 이제 안과 수술을 넘어 저개발 국가에 존재하는 청각 장애자 2억 5천만명을 목표로 저렴하고 우수한 보청기를 제공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응급실 비용이 없으면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하고 나와야 하는 미국의 현실을 볼때, 어느 나라가 더 살기 좋은 국가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주민들을 교육시켜 생태와 환경을 지키고 보전하는 것이 그들의 경제를 더 윤택하게 하고 발전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 네팔의 찬드라 구룽이나, 대도시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여 질 좋은 퇴비로 만들어 다시 돌려주는 기업가, 경제적으로 수익성있는 태양열 발전기를 개발하는 일의 성공을 앞둔 학자, 자동차 공화국 미국에서 자동차 나눠타기 운동을 벌려 고무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미국인, 박테리아가 분해시키는 플라스틱을 개발하고 있는 사람, 에이즈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인들을 대상으로 에이즈 예방법을 재미있는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함으로써 놀라운 예방성과를 거두고 있는 젊은이에 이르기까지 이들과 함께 80인의 대안기업가들을 만나고 있노라면, 한 인간의 의지와 열정이 얼마나 놀라운 힘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새삼 깨닫고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러나 읽는 내내 아쉬웠던 것은, 실뱅과 마튜가 찾아낸 대안기업가 중에서 한국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아라빈드 같은 병원이 존재할 수 없을까.

덴마크의 생태산업단지처럼 거대한 공업단지들이 서로 자원을 공유하고 순환하고 재활용하는 시스템이 정착될 수 없을까. 한 사람의 창의적인 제안과 열정이 받아들여지고 인정받는 열린 사회가 아직 요원하기 때문일까. 수도권이전에서 지방의 각 혁신도시, 특화도시등 역사상 유래없이 전국적인 개발 광풍이 불고 있고, 소규모 농가 대신 기업화 농업만이 살길이라고 믿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우리 사회가 진실로 소중한 것을 소외시키고,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다.

 날로 심각해지는 공해와 도시화, 에너지를 담보로 한 전쟁과 테러, 오염과 기상이변..

우리는 이런것들에 대해 쉽게 비관하고, 냉소를 보내고, 혹은 대기업이나 정부를 욕하며 그들이 주범인양 손가락질 한다. 

그러나 유럽의 한 가정이 1년에 호수 하나를 오염시키듯, 우리의 일상도 매일 생명과 환경을 죽이는 삶이 아닌가. 그렇다면 거꾸로 우리의 일상 하나를 바꾸면 지구의 호수 하나를 살릴 수 있는 힘도 역시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80인의 대안기업가 역시 자기로부터 변화를 시작하여 그 변화를 키워나간 또 다른 우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나면 한동안은 미래가 그렇게 비관적이지많은 않다는 위로를 얻기도 한다. 나보다 뛰어난 누군가가 이 지구를 위해서 더 좋은 시스템과 발견과 업적을 이루고 있으리라는 안도말이다.

그러나 단지 그런 안도반을 얻었다면 이 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서 실천하고, 그 실천을 확대시킬 수 있다면 우리 역시 우리 삶의 대안들을 제시하는 행동가들이 될 수 있다.

생활속에서 작고 의미있는 실천들로 이어지지 않으면 수많은 대안기업가들이 더 나타나도

우리의 미래는 힘겨워 질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주부들이라면 부엌부터 살펴보자. 내 일상이 호수 하나를 살리고 있는지, 죽이고 있는지 돌아보자. 작지만 중요한 것들을 바꿀 수 있으면 어서 바꾸자. 새해에는 거창한 계획들 대신, 이렇게 나도 살리고 세상도 살릴 수 있는 작은 실천부터 계획해 보는 것이 어떨까.

 잊지말자.

당신도 나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그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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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아기가 태어나요
이토 에미코 지음, 김정화 옮김 / 애플비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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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특별한 그림책 한 권, 소개하겠습니다.
'애플비'출판사에서 나온 '우리 집에 아기가 태어나요'라는 책이예요.
집에서 네째 아이를 낳은, 일본인 가족의 얘기를 담은 책입니다.
엄마가 글을 쓰고, 아빠가 사진을 찍고, 세명의 형아 누나가 동생을 맞이하는
과정을 담은 책입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다양한 출산의 형태가 보편화 되어 있습니다.
특히 마을마다 조산원이 있어, 경험많은 조산사들이 예비 엄마들을 돌보고
가정에서나 혹은 조산원에서 편안하고 가족적인 출산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이토 에미코'씨 역시 조산사가 집으로 와서 정기적으로 태아의
상태를 점검해 주었고,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기집 목욕탕 욕조속에서 네째 아이를 낳습니다.
책은 가장 동생을 기다렸던, 초등학교 1학년인 세째 '마나카'의 시선으로 펼쳐집니다.
 
동생을 기다려온 열달이 지나고, 엄마는 마침내 따스한 봄날 진통을 느낍니다.
'학교 갔다 올때까지는 안 나오겠지요?'
'그럼. 너희들이 올 때까지 꼭 기다려 줄 거야. 틀림없어'
마나카의 물음에 엄마는 차분하게 일러줍니다.
 
그리고 학교가 끝나자마자 마나카는 단숨에 집으로 달려 옵니다.
두 오빠들과 아빠도 조금 일찍 집에 돌아 왔습니다.
아기를 기다리면서 평소처럼 숙제를 하고, 아빠가 차려준 저녁을 먹는
가족의 모습은 평온하고 자연스럽습니다. 누구의 표정에도
두려움이나 걱정의 빛은 없습니다.
엄마는 여느때처럼 탁자의 걸레질을 하며 아기를 기다립니다.
 
마침내 본격적이 진통이 시작되고, 엄마는 많이 아파합니다.
'이건 아기가 보내는 신호란다. 이제 곧 나가겠다고 말하는 거야'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타쿠미가 엄마의 허리를 문질러 줍니다.
 
진통이 올때 허리는 정말 끊어질 듯 아파옵니다.
그때 가족들이 문질러 주는 따스한 손길은 진통을 견뎌내는 엄마에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이 사진을 보면서 저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진통을 견디면서, 그 진통의 의미를 아이에게 전해주는 엄마의 모습과
엄마의 고통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며 곁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로
엄마를 격려하고 도와주는 의젓한 아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해와 사랑이 감동겨웠기 때문입니다.
 
조산사인 카미야 아줌마가 중간 중간 아기의 심장 소리를 체크합니다.
엄마는 진통과 진통 사이에 웃음으로 다시 긴장을 풀고 다가올 다음 진통을 기다립니다.
조산사는 낮선 의료진이 아니라, 이웃집 아줌마처럼 다정하고 가까운 존재입니다.
 
엄마와 마나카는 함께 욕조에 들어갑니다.
'마나카, 네가 태어날때도 이렇게 욕조에서 기다렸단다'
'나도 욕조에서 태어났단 말이죠? 아기도 여기서 태어날 건가요"'
'그래, 그럴 거야'
 
진통의 막바지에서 아이를 낳을 욕조에 들어간 엄마와
그 욕조에서 태어났던 여덟살 난 딸의 대화가 참 따스합니다.
마나카는 그곳에서 자기를 낳으려 기다렸던 엄마의 모습을 다시 만나고 감동합니다.
하나의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고대하고, 함께 기다리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침내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물속에서 태어난 아기는 엄마 품에 안겨 첫 울음을 터뜨립니다.
땀이 송글송글 맺힌 엄마의 콧잔등을 보며 저는 다시 가슴이 뭉클해 졌지요.
아기를 기다리며 그녀가 견디어낸 그 힘겨운 진통의 시간들과
그 끝에서 품에 안은 아이에 대한 감동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기는 엄마와 함께 물 밖으로 나와 엄마 품에 가만히 안겨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태어난 아기.
정말 정말 대견하다고 마나카는 벅차 합니다.
 
아기와 엄마를 잇고 있던 탯줄.
그 탯줄에서 콩닥콩닥 뛰는 맥박이 멈추면
그때 탯줄을 자릅니다.
중학교 1학년인 큰 오빠와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오빠가 함께 탯줄을 자릅니다.
아기는 엄마 품에 꼬옥 붙어서 첫날 밤을 보냅니다.
 
오빠들은 매일 아기를 안아주고 말도 걸어 줍니다.
태어나는 과정을 함께 했고, 출산의 순간을 함께 나눈
형제들은 이제 단단하고 따스한 애정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책의 말미에는 탄생의 순간을 함께 나눈 식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답게 솔직하게 동생을 맞이했던 과정과 순간의 느낌들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 장에는 엄마 에미코의 얘기와 조산사 카미야의 글도 실려 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한 마디로 생명 그 자체, 생명의 덩어리입니다. 아기는 잉태된 순간부터
있는 힘을 다해, 글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어머니 몸을 빠져 나옵니다.
그것은 살겠다는 의지, 목숨 그 자체입니다. 때로는 그 강인함에 압도됩니다.
하지만 자연스런 생명이기 때문에 강인한 동시에 죽어버릴 수도, 장애나 질병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고, 산달을 맞아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맞이해 주는 가족들을 향해, 바로 그들에게 태어나는 인간의 아기.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해서 태어납니다.네 번의 출산을 통해서 생명이란, 아기란
그런 것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엄마 에미코의 글을 읽으며 저는 또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자연스런 생명이기때문에 태어나면서 죽을 수 도, 장애나 질병을 가지고 태어날 수 도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새로 태어날 생명의 모습이 어떠하든 그 자체로 우리의 특별한 가족이라는 것을
설사 장애가 있고 질병이 있다해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는, 엄마의 깊은 모성과 강인한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오체불만족'이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 주인공이 떳떳하고 당당하게
하나의 인격으로 대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일본이라는 사회의 힘도 부러웠습니다.
 
서른 여덟에 둘째를 낳게 되는 저는, 병원에 가는 순간 이미 '고 위험 산모'로 분류 되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기형아 검사와 양수 검사는 의무라고 했습니다.
기형아 검사에서 다운중후군 확률이 일반 산모의 두배가 넘는다며
당장 양수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을때, 저는 그 검사를 받지 않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양수는 태아가 떠 있는 하나의 우주 입니다. 그 우주안에 주사바늘을 찔러 넣어
그 안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의 정상 여부를 판별하는 일은
제게는 제 안에 있는 생명이 숨쉬고 있는 그 우주의 완전함을 불신하는 일이었습니다.
설사 내 아이가 정상이 아니라 해도 사전에 검사를 해서 생명을 없애는 일을
저는 절대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정상이 아니라 해도, 그건 그 생명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자체로 내게 온 이상, 그 생명은 내 생명이기도 합니다.
어떤 생명이라해도 그 생명으로 인해 내 삶에 새롭게 찾아올 의미를
받아드릴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미코의 글에서 저는 큰 격려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선진국 가운데에서 우리나라만큼 산전 초음파와 각종 검사들이 많이 이루어지는
예는 없다고 합니다.
복지국가 스웨덴같은 나라는 처음 임신을 확인할때 외에는 초음파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다만 간호사들이 정기적으로 집으로 찾아와 혈압이나 태아의 심박을 체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기를 낳을때, 병원에 갑니다.
 
한 달에 한번, 막달에 이르르면 일주일에 한 번 초음파를 받게 하는 우리의 현실은
아기의 상태에 대한 산모의 과도한 염려와 혹기심,
그리고 출산의 신비보다는 위험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에미코와 같은 출산을 준비하고 선택하는 엄마들도 있습니다.
아직 소수이긴 하지만, 그녀들은 자신의 몸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힘과
엄마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깊이 신뢰하는 사람들 입니다.
출산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대신, 출산의 신비와 감동에 대해서 더 많이 열려 있고
임신과 출산을 의료적인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가장 특별하고 자연스런
일상으로서 받아들인 사람들 입니다.
 
가족들의 따스한 애정과 손길 속에서 어떤 약물이나 인위적인 처치 없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태어나는 생명은 결코 불가능한 얘기가 아닙니다.
커다란 용기나 거창한 준비가 필요한 일도 아닙니다.
다만 생명과 자신을 믿고, 차분하게 준비하고 출산까지의 모든 과정이
주는 의미를 받아들이며 기다리는 일입니다.
 
네살 난 필규와 함께 집에서 동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필규는 이 책을 함께 읽으며
'엄마, 나도 동생 탯줄을 자를 수 있어요.
필규도 가위, 잘 하거든요' 합니다.
 
내년 3월에 우리집에도 새 생명이 태어납니다.
마음을 다해서 온 가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생명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이 용기와 감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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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히트를 했고, 소설로는 무려 70쇄 가까운 재판을 거듭하고 있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다.

 사실 나는 공지영의 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작위적인 냄새가 풍기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늘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그녀의 미모나 배경이 주는 매력, 혹은 기대감이 한몫하는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보내곤 했다.

그녀의 책 중에서 비로소 내 맘에 들어온 것은 '봉순이 언니'가 유일했다.

그녀의 성장기를 배경으로 하는 현실성과, 맘 아프게 정감이 가는 봉순이라는 캐릭터의 힘 때문이었다.

 이 소설에 대해서는 사전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삶을 비관해서 자살기도를 거듭하던 한 여자가 일주일에 한번씩 사형수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변화하는 내면에 대한 얘기라는 말을 듣고는, 어떻게 전개가 될지 너무 뻔해서 어쩐지 거부감이 먼저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형수는 결국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삶을 원하게 될것이고, 그녀는 죽음을 앞둔 사형수를 통해 하찮다고 여긴 자신의 생이 얼마나 귀한지를 깨닫게 되는, 뭐 그런 상투적인 줄거리가 한번에 그려졌다.

 줄거리는 물론 내 예상대로 흘러간다. 그러나..... 어짜피 죽을 수 밖에 없는 사형수와 삶에서 죽을 이유밖에는 찾지 못하는 한 여자가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그리고 인간으로서 가장 깊은 마음을 나누는 과정은 예상처럼 상투적이지 않다. 절대로 딱지가 생길 수 없는, 언제나 그자리에 빨간 피와 속살이 아프게 드러나는 그런 과정이다. 그래서 그 과정에 문득 동행한 사람들은 이들을 둘러싼 시간들을 함께 나누는 것이 매우 당혹하고, 괴롭고, 힘이 들게 된다. 

이 책에는 인간으로서 직면하고 싶지않은, 불행들과 비극, 비참함,처절함과 끔찍함이 가득하다. 내가 들여다 보지 않을 뿐, 내 가까이에 얼마든지 존재하는 삶들이기 때문이다. 사형을 앞둔 주인공 윤수의 독백을 따라가는 길은 그래서 더 힘겹다. 

 주인공은 엄마에게서 버림받고,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에게서 학대받고, 굶주림과 추위와 공포속에서 자라난 사람이다. 한번도 따스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고, 한번도 제대로된 인정과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고, 단 한번도 인간적인 존중과 대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다. 그가 겪은 것이라고는 늘 살아가는 것의 그 지독한 처절함이었다.멸시와 학대, 폭력과 공포,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인간적인 모멸감과 수치, 그 속에서 자신만을 의지하는 약한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세상과 필사적으로 싸운다. 번번이 지고 피흘리고 다치면서 또 다시 대들고 싸운다. 그렇게 사는 외에는 어떤 기회도, 방법도 달리 없었다.

 이런 환경속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사형수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그래도 자기의 의지만 있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제대로된 삶을 살 수 있을거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과 고통에 대해서 얼마나 간편하고 쉬운 판단을 내리는가 말이다.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세상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삶 역시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이다.  찾으려 찾으려해도 닿지않는 희망따위에 의지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삶의 현실이 존재한다. 그들의 삶을 한층 가혹하게 하는 타인들의 차갑고 혐오스런 시선속에서 이 책을 읽는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리라. 윤수같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던져온 시선이, 품어온 감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15세때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 일을 수치스럽게 느끼고 덮으려고만 급급했던 엄마에 대한 충격과 상처를 품고 자란 여주인공은 삶의 위선과 가식속에서 헤매면서 제대로된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체 일그러진 인격으로 성장한다.  자신이 겪은 상처가 너무 커서,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 따윈 관심도 둬보지 않고 그저 세상을 비관하고, 가족을 비관하고, 자신을 학대하는 것으로 살아온 여성이다.

 

이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얘기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가슴에 난 붉은 상처들과 마주한다.

여자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자신의 상처를 미래는 커녕, 내일이 없는 사형수에게 들려준다.

사형수는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던 자신조차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음을 깨닫는다.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았던 상처들을 두 사람은 보여주고, 감싸주고, 알아준다.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이것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시간들이 두 사람 모두를 변화시킨다. 결국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의 상처에 진심어린 관심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고,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간단한 이치가 삶에서는 얼마나 한없이 아득하고 어려운 일일까.

단 한번 내미는 따스한 손길, 다정한 말, 이해의 눈빛이 사람을 살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살게도, 혹은 죽게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다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이 크나큰 능력에 무관심 할 뿐이다.

 테러나 핵폭탄만큼 무서운 것은 한 사람의 일그러진 인격속에 자라고 있는 분노다. 그런 분노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향한 열차 방화로, 혹은 연쇄살인으로, 혹은 무차별 폭력으로 이어져 우리의 일상을 무너뜨린다. 세상의 낮고, 어둡고, 힘겨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가 매일 모멸과 혐오와 무관심을 보내는 한 우리 곁에는 또 다른 윤수가 세상을 향해 자신의 분노를 키워 갈 것이다.

 종일 이 책을 들고, 내게 매달리는 아이와 씨름하며 또 동요하는 내 감정과 직면하며 힘겹게 읽었다. 저녁상을 물린 자리에서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는, 아이와 놀고 있는 남편 앞에서 기어코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말았다. 부모에게서 이렇듯 지극한 사랑과 애정을 받는 내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에서 항상 이런 사랑을 꿈꾸었을 윤수와 그의 동생 은수의 그 여리고 가여운 영혼들이 겹쳐졌다.

윤수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게 한 사람중에 나도 한 사람인것 같아서, 견딜 수 가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부모로서, 내 아이가 누리는 행복만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타인의 고통에 진심어린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자신에게 묻고 또 묻는다.

 타인에게 내미는 따스한 마음만이 이 세상에 넘치는 고통을 덜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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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 인격 - 24개의 인격을 가진 한 남자의 처절한 투쟁의 기록
캐머론 웨스트 지음, 공경희 옮김 / 그린비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누구나 가끔, 내가 다른 사람인것 같이 느껴지는 때가 있다.

어떤 상황에서 내가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때도 있고, 어이가 없을만큼

유치해 지거나, 포악해 지거나, 혹은 나약해 지고, 또 강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 모든 모습이 결국은 '나'라는 전체속에 들어가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대개는

내 안의 이런 다양한 면들과 그럭저럭 조화를 이루며 살아 간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

 

그러나 '다중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전혀 다른다. 그들인 실제로 자신 안에

서로 다른 다양한 인격들을 지닌체 살아 간다. 말하자면 한 사람 안에 다섯살 꼬마도 있고,

10대 청소년도 있고, 50대의 신사, 30대의 장년, 남자와 여자, 노인과 어린이가 모두

한데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인격들은 각자의 성격과 특성, 행동과 정서, 욕구, 모든것이 판이하다.

마치 메두사의 머리처럼 서로 아우성대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 몸체에 붙어 있는 것과 같다. 

이 글의 주인공은 케머론은 24명의 인격체를 지니고 있다.

그 인격들은 수시로 주인공을 차지하며 자신들을 드러낸다. 한 번에 여러명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또 화해도 하고, 상처도 주고, 대화도 한다.

상상해보라.

운전을 하고 있는 주인공이 갑자기 고속도로 한 가운데서 네살 난 아이의 인격이

된다고 하자. 주인공은 갑자기 운전을 할 줄도 모르고 공포에 질리는 아이가 되 버린다.

젊고 매력적인 여자를 만나면 성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인격체가 튀어 나온다.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인격체는 주인공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스스로 손목을 긋기도

한다. 이 모든 일들을 주인공이 통제 할 수 없다. 내 몸이지만, 내 몸이 아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목숨이 위태로울 수 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 주인공의 삶에는 무수히 실재한다.

이처럼 다중인격 장애가 나타나면 그 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이 흔들리고 깨져 나간다.

아무때나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인격체들로 인해 정상적인 직장 생활도, 가정 생활도, 심지어는

일상 생활도 영위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다중인격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대부분 어린시절과 유년시절에 겪은 끔찍한 육체적, 정서적 충격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어린 시절에 외할머니와 친어머니로부터 주기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왔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친밀한 존재들로부터 이런 일을 당했다는 사실을, 의식은 받아 들일 수 가

없다. 그대로 인정한다면 한 개인의 정신이 부서져 나갈 만큼 충격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식은 나름의 방어기제를 만들어 이런 경험들을 처리한다. 또 이런 경험이 되풀이 되면

이전에 만들어 놓았던 벙어기제로 해결하던지, 아니면 새로운 기제들을 만들어 낸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그 기제들은 하나의 독특한 인격으로 통합되어 되어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갑자기 튀어 나와 존재 전체를 흔들어 놓는 것이다.

 

이 글은 실제로 24명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다중인격 장애자인 저자가, 발병의 과정에서부터

그 증상이 저자의 삶을 어떻게 뒤 흔들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가족들과 치료진과 더불어

어떻게 헤쳐나갔는지를 기록한 실제 경험담이다.

다중인격이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과,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들, 그리고 무엇보다

다중인격자인 자신이 부딛치는 고통스럽고 힘겨운 경험들과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해 내려는

한 인간의 눈물겨운 투쟁이 처절하리만큼 생생하게 펼쳐 진다.

 스스로 기억조차 없는 과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과, 무수한 인격체를 통해

지난날의 끔찍한 경험들을 재 경험해야 한다는 것은 다중인격자가 헤쳐나가야 하는 수 많은

어려움들의 일부일 뿐이다.

주인공 역시 인격체를 통해 드러나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도저히 인정할 수 가 없다.

그저 따뜻하고 자상한 인상으로 남아있던 할머니와 어머니가 자신에게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했다는 것을, 그것이 자신의 어린 시절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인정받지 못한 인격체는 끊임없이 주인공을 자해하고 괴롭힌다.

 

참으로 신비한 것은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나는 인격체에도 나름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즉 모두 다 어리고 난폭한것만은 아니고, 어떤 인격체는 나이 많은 어른으로 인격체간의

갈등들을 조정해 주고, 현명한 판단과 보살핌을 전담하는 인격체도 있다. 뛰어난 능력으로

일을 추진하는 인격체도 있고, 유쾌하고 명랑한 인격체도 있고, 따듯하게 보살피는 엄마같은 인격

체도 있다. 이런 인격체의 도움으로 저자는 다중인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심리학 공부를

시작하여 박사 학위도 받고, 아내와의 관계도 회복하고, 다시 자신의 삶을 구축해 나간다.

 

인간의 무의식은 끔찍한 경험들만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가면서 대하는 무수한 경험과

정보들을 흡수하고 통합하여 한 존재를 이끌어 줄 수 있는 다양한 인격들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사는 일이란, 나를 헤치기도 하고

또 살게도 해주는 수많은 인격들을 만들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할 수 있다면

현명하고, 다정하고, 훌륭한 인격들을 만들어 가며 살 일이다.

 

그 인격들을 하나 하나 만나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이해하고, 보살펴주고, 그래서

마침내 화해하기 까지 주인공은 목숨을 건 투쟁을 한다.

저자도 마침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격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으로

치유에의 희망을 품게 된다. 고통스런 과거를 다시 만나고, 인정함으로써,

그 인격들과 더불어 살아 가는 법을 배우고, 그 인격들을 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그 인격들의 다양함과 에너지를 올바로 사용하는 능력을

키우면서 저자는 지금도 여전히 다중인격자로 살고 있다.

 

다중인격이 미국에서만 존재하는 증상은 아닐것이다.

그러나 심리학 분야에서는 우리보다 수십년은 앞서있는 미국이기에 이런 사람들도 제대로된 치료와

보살핌을 받고, 어렵고 힘겨운 치료 과정을 통과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 건 사실이다.

아마도 저자가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면 정신병원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안에도 마치 서로 다른 인격들이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혹 나도 돌보지 않고 내버려둔 감정의 상처와 문제들이 있는것은 아닐까,

아직도 내 안에서 내 관심과 손길을 기다리며 휴화산처럼 잠재하고 있는 감정들은 없을까.

불안해지기도 했다.

한 존재가 겪은 모든 경험과 감정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은 그 모든것을

남김없이 저장한다. 살아가면서 자아가 약해지거나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거나, 혹은

깊은 감정의 상처를 받았을때, 무의식은 그 기억들과 감정들을 다시 풀어 놓는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스스로의 기억과, 감정과, 경험들을

반추하고 돌봐야 한다. 내 안에 있는 무수한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인정하고,

돌봐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자.. 내 안을 들여다 보자.

슬픔에 빠져 있는 어린 아이는 없는지, 분노에 차 있는 젊은이는 없는지, 또 무기력하고

우울한 사람 하나 거기에 없는지, 내가 방치하고 잊어버린 무수한 내가, 나의 사랑과

관심을 기다리며 한없이 그곳에 있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 보자.

 

'내안엔 내가 너무나 많아..'라고 시작되는 유행가는

어쩌면 심오한 진실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나는,

우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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