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고 싶은 남자 - 말 못 한 상처와 숨겨둔 본심에 관한 심리학
선안남 지음 / 시공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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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면서, 그리고 혼자가 아닌 둘이 살아가면서 때때로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말한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를 해나가면서 우리는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

일을 쉬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간 몰랐던 남편의 일상을 좀 더 알게 되었다. 어떤 날은 힘 없는 모습으로 퇴근하는 남편. 내가 그런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고작해야 "무슨 일 있었어?" 정도였다. 좀 더 가까이 있는 내가, 내 옆의 그에게 던진 그 단순한 질문은 우리를 꽤 고요하게 만들곤 했다. 그 후로는 물음보다 먼저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물론, 그역시 긴 고요함의 시간이었다.

가끔, 한번씩 고요함의 물꼬를 먼저 트는 남편의 목소리, 그리고 전해지는 그의 하루는 꽤 나를 젖게 했다. 함께 있지 않는 시간, 그에게 있었던 일들은 내 생각보다 꽤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대화란, 그렇게 긴 고요함 끝에 이루어지곤 했다. 남편은 그 긴 고요함을 무던히 침묵으로 말하고 있었던 것일까.

 

 

 

 

선안남 상담심리사의 글은 내 안에 똬리를 튼 비밀의 방으로 들어왔다. 기척도 없이 성큼 들어와 문을 열고 아무렇지않게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은, 글을 읽는내내 상당 시간을 내 안에서 함께 했다. 나도 잘 모르던 나를 들킨 느낌. 그리고 그런 나를 마주하면서 나는 나를 보고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어쩌면 나 역시, 글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처럼 내 남편에게 잘못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방 안에 탑이 쌓였다. 내가 생각없이 행했던 행동과 말들과 그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이 꼿꼿하게 나를 바라보는 느낌은 오래 계속되었다.

분명한 것은 '다름'이 아닐까. 나는 나이고, 남편은 남편이다가 아니라 나와 남편은 서로 다르다는 본질. 그래서 같은 상황에 있어도 늘 같은 생각을 할 수 없다는 다름. 같은 생각이 아니어도 그의 생각을 존중해줘야한다는 기본적인 생각들이 탑 아래에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나르시시스트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르시시즘의 사회에 뿌리 내리고 살고 있는 또 한명의 나르시시스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무척이나 서툰 나르시시스트이진 않았을까.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더 서툰 표현속으로 밀어넣는 것 같은 직감적 느낌. 이제는 좀 더 변화가 있고 표현에 능한 나를 이끌어내고 싶다.

에코든, 나르시시스트든 건강한 변화는 꼭 필요한 조건일 것이다. 사랑을 받지 못해도 사랑을 줄 수 있는, 그래서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나의 오늘, 우리의 내일이 되길 빌어본다.

내 남자의 섬에 한 발 가까워지는 오늘, 그 안에서 우리는 사랑을 하고 행복을 말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될 거라 믿는다. '다름'을 인정하는 우리가 되길 바라고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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