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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에 히어로는 무리지만
구로노 신이치 지음, 사타케 미호 그림, 이미향 옮김 / 한빛에듀 / 2025년 2월
평점 :
대도시인 도쿄에서 살다가 시골로 이사하게 된 주인공 유즈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슈퍼마켓에서 일도 거들며 시골생활에 적응하여 살고 있다. 학급에 9명 밖에 안되는 학교 생활도 순탄할 줄 알았는데, 교실에 친구를 괴롭히는 꼬겐타라는 녀석이 있다. 꼬겐타는 아빠가 지역이 유지라는 배경에 힘입어 자기 멋대로 굴고, 반 친구들은 지켜보기만 하는 방관자들이다. 유즈하는 불의에 분노하지만, 앞에서 나서 문제제기하기를 주저한다. 오래전부터 굳어진 문화와 선생님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이제 막 전학 온 유즈하가 무슨 영웅이랍시고 나서겠는가? 그래서 책 제목이 이해가 갔다.
방관자들의 침묵 속에 묵묵히 피해를 받아들이고 있는 가오리가 참으로 가여웠다.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폭력이 누구의 제지도 없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사태. 우리는 종종 뉴스에서 끔찍한 학교폭력의 실체를 접하곤 한다. 결국은 누군가 죽어야 사건화되고, 뒤늦게 수습하려는 모습은 반복되고 있다. 주인공 유즈하는 여학생들과 차츰 힘을 모으기도 하고, 꼬겐타에게 맞서 싸우기도 한다. 이 책에서 유즈하가 꼬겐타를 호되게 벌주고 착한 사람이 되었다는 속시원한 결말은 없다. 어쩌면 우리 현실이 그러하듯이. 하지만 학생들이 연대하고, 꼬겐타를 호위하는 유즈도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 유즈하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들킨 꼬겐타도 살짝 꼬리를 내리면서 학급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진다.
슈퍼맨같은 히어로는 아니지만, 불의에 맞서려는 용기와 어려운 사람을 돌보려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유즈하 역시 히어로다. 혼자 힘으로 힘들다면 여럿이 연대하는 힘을 보여줄 수 있다. 학교폭력이 일어나는 현실은 답답하지만 미즈하라 할머니의 이야기처럼 인류가 조금씩 인권 신장을 위해 진보해온 역사를 보며 희망을 가지려 한다. 폭력을 민감하게 인지하고 맞설 수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