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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무라세 다케시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27명을 태운 열차가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68명이 사망한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한 가지 소문이 들려온다. 한밤중에 사고가 난 열차가 나타나고, 그 열차에 탈 수 있다는 것. 이대로 넋 놓고 떠나보낼 수 없던 이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밤중에 역으로 나간다. 칠흑 속 거짓말같이 나타난 그날의 열차. 사랑하는 사람을 태운 세상의 마지막 기차가 역으로 들어오고, 그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오랜만에 울면서 읽었다. 눈물 때문에 제대로 읽기 힘들어서 한번 끊고, 다음 날마저 읽었다. 슬픔을 구걸하는 부분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지. 조금의 접점은 있지만 각기 다른 4개의 이야기다. 사연 하나 읽고, 감정 정리하고 다음 사연으로 넘어가는 구조라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책은 눈물범벅이었을지도.
각 사연마다 상대와의 추억이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오고, 썰물처럼 쑥- 소중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빠져나가 버리는 상황 속 주인공이 느꼈을 상실감, 공허함이 내 마음속에도 그려진다. 그리움을 끌어안으며 기차역으로 달려가는데, 다시 살릴 수도 없고, 이 순간이 네 마지막이라 말할 수도 없다. 얼마나 비정한 조건인가. 지금이 끝이 아닌 것처럼, 또 볼 것처럼. 그렇게 작별을 고하는 인물들의 감정에 이입되어 같이 울었다. 내 감정을 봐 달라 하나하나 풀어놓지 않는다. 그 내면에 서린 감정이 상상하게 만드는 문장에 눈물이 났다.
두 번째 사연인 [아버지에게]에 많이 공감하며 읽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젊은 기절의 호기로움은 사회 풍파에 사그라지고, 적성에 맞지 일이 하나 둘 늘어날 때마다 본인의 가치관을 부정하는 모습이 남 같지 않았다. 부모와 다른 사람이 되고자 떵떵거리고 나왔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비참한 현실이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관경은 절망 그 자체다. 주인공이 본인의 인생을 비관하고 내던지는 관경에 마음이 아파진다. 주인공조차도 어찌할 기력 없어 자포자기한 삶. 그런 삶을 아버지는 기다려주고 계셨다.
못난 자식조차 여전히 사랑해 주고,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아버지의 모습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버지랑 대회를 하도 안 해서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부분에 공감하며 웃다가도, 아버지가 응원을 건네는 장면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세상에 다시없을, 가장 큰 위로를 받고 일어선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안도의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그렇게 일어서는 거야!
책장을 넘길 때처럼 바람이 휙 일더니 주변이 환해졌다.
어느 틈에 낯선 중년 여자가 내 옆에 서 있었다.
반대편 승강장에는 하행선 열차를 기다리는
회사원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왼쪽 손목에 찬 시계가 오전 10시 44분을 가리켰다.
이곳은 사고가 일어났던 날 아침의 승강장이다.
P. 75
넌 할 수 있다.
너라면 할 수 있어.
너라면 꼭 할 수 있고말고.
P. 160
목숨을 거는 게 아니다.
고작 말을 거는 것뿐이다.
P. 192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