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세이카 료겐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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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살 에는 추위마저 잊게 만드는 불빛과 노래가 세상에 수 놓이는 날. 누군가의 탄신일을 핑계 삼아 연인과 함께, 친구와 함께, 가족과 함께 연말을 장식하는 날. 별빛도, 노래도, 인적도 없는 다리 위에서 사신과 만난 아이바 준. 본인을 사신이라 소개한 여자가 수명을 달라 한다. 12월 25일. 살 에는 추위마저 잊게 만드는 불빛과 노래가 세상에 수 놓이는 날. 누군가의 탄신일을 핑계 삼아 연인과 함께, 친구와 함께, 가족과 함께 연말을 장식하는 날. 별빛도, 노래도, 인적도 없는 다리 위에서 사신과 만난 아이바 준. 본인을 사신이라 소개한 여자가 수명을 달라 한다. 어차피 가치도 미련도 없는 생. 3년을 제외한 수명을 주고, 그 대가로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갖게 된다. 3년 후, 12월 25일이 끝나는 날 그는 죽을 것이다.

 

삶에 미련이 없이, 죽지 못하기에 흘러가는 시간을 인내하는 사람의 체념 어린 심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창창한 나이, 도전의 나이, 기회의 나이라 일컬어지는 20살 주인공의 마음을 읽고 있으면, 사회생활에 치이고 닳아버린 30대가 그려진다. 사회초년생보다는 사회포기생이 되어버린 그의 내면에 죽음이라는 나무가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에 안타까움과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보다 ‘3년의 시한부’로 만들어 준 것이 아이바 준에겐 더 달가운 이야기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런 그에게 3년이라니. 길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확정된 죽음을 기다리며 1년의 시간을 버틴 아이바에게 자살로 생을 마감한 소녀의 소식이 들려온다. 그가 죽지 못했던 그 다리 위에서, 12월 25일 날 죽은 것이다. 다리를 찾아온 동급생들은 소녀의 죽음에 추모가 아닌 환호를 하고 있었다. 같은 12월 25일, 그와 다르게 뛰어내린 소녀의 죽음을 비웃는 이들에게 분노를 느낀다. 비웃음이 지나가고 적막함이 내려앉은 자리, 얼굴도 모르는 소녀가 느꼈을 소외에 동질감을 느끼고, 그 동질감의 대상이 죽었다는 사실에 상실감을 느낀다. 그가 죽으려던 그 자리, 그 시간에 죽었다는 공통점을 빌미 삼아 소녀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돌리기로 한다.

 

시간을 돌려 이치노세의 자살 현장을 덮치고 난 후,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갖지 못했던 아이바가 이치노세에게 돈으로 해 결해 보라고 제시하는 장면부터 탄식이 흘러나온다. 아무리 뇌가 굳었다지만, 읽는 독자마저 돌을 들게 만드는 행태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말인지 방구인지 모를 문장에 본인도 반성하고 이치노세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기로 한다.

 

어떻게 방해하는가. 첫째, 현장을 덮친다. 둘째, 같이 논다. 참 심플해 보이지만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노린 것은 아니겠지만, 당장에 죽고 싶을 만큼 힘든 감정을 희석하고 옅게 만들고, 즐거움을 되찾는 것. 그 하루하루를 쌓아가며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 내일을 단념하는 사람에게 미래를 그릴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 생판 모르는 타인과 함께 그 발판을 같이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당연히 어려움이 많았다. 계속해서 자살하는 이치노세와 포기하지 않는 아이바를 보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애석하다. 고작 중학생의 어린 소녀와 20살 청년인데,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말이 “죽지 마.” 와 “상관마요.”다. 아이바가 내뱉는 탄식에 공감하며 같이 이치노세에게 달려갔다.

 

그저 놀러 다니는 일상이다. 가끔씩 죽느냐 마느냐로 투닥거리긴 하지만... 그 속에서 웃는 둘의 모습에서 조금씩 싹트는 희망을 느끼며 페이지를 넘겨갔다. 옆에서 같이 평범한 일상을 만들어나가는 것. 그 과정 자체가 가지는 의의가 작가의 말과 어우러지며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선택을 잘못한 게 아니라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인생의 레일이 틀어져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선택을 잘하면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건 

게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어떤 선택을 하든 비극으로 끝나는 인생도 있고

아예 선택지 자체가 없는 인생도 있다.

나는 그런 인생을 뽑은 것이다.

P. 13

 

같은 다리에서 자살을 꾀한 인간이 나 말고 또 있으며,

진짜로 행동에 옮겼다.

그렇게 해석한 순간, 놀랍게도 내 내면에서는

환희에 가까운 감정이 복받쳤다.

타인의 자살을 기뻐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건 나도 잘 안다.

그래도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억누를 수 없이 가슴이 뛰었다.

P. 44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에게 가치가 생길 거라고 여겼다.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을 갈고닦으려 하지 않던

나 같은 인간도 손쉽게 가치를 높이는 방법,

그것이 자기희생이라고 믿었다.

P. 140

 

나는 쭉 동경해왔다.

이런 나여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사람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을.

선택을 잘못한 게 아니라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인생의 레일이 틀어져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선택을 잘하면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건 게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어떤 선택을 하든 비극으로 끝나는 인생도 있고 아예 선택지 자체가 없는 인생도 있다.

나는 그런 인생을 뽑은 것이다.

P. 13

같은 다리에서 자살을 꾀한 인간이 나 말고 또 있으며, 진짜로 행동에 옮겼다.

그렇게 해석한 순간, 놀랍게도 내 내면에서는 환희에 가까운 감정이 복받쳤다.

타인의 자살을 기뻐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건 나도 잘 안다.

그래도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억누를 수 없이 가슴이 뛰었다.

P. 44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에게 가치가 생길 거라고 여겼다.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을 갈고닦으려 하지 않던

나 같은 인간도 손쉽게 가치를 높이는 방법,

그것이 자기희생이라고 믿었다.

P. 140

나는 쭉 동경해왔다.

이런 나여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사람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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