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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마다
리사 스코토라인 지음, 권도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4월
평점 :
굿이라도 해야 할 정도로 박복해지는 에릭 패리스의 인생에 탄식밖에 안 나온다. 사회적 지위와 체면, 가정, 직장이 발 디딜 틈 없이, 디딜 새도 없이 태풍 맞은 듯 초토화된다. 소시오패스의 짓이라는 언질만 없어도 당장에 굿이라도 해야 할 정도로 한 인간의 일상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과정에 눈을 껌뻑이며 경악했다. 이거 일상 회복 가능한 거 맞아? 수습할 길이 아득한데도 이성을 놓지 않는 에릭의 정신력이 감탄스럽다.
무슨 연유로 한 인간의 인생을 망치기 위해 혈안이 된 건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소시오패스의 작품이며, 등장인물들 중 과연 누가 소시오패스인가? 추리하는데, 의심 안 가는 인물도 없다. 전부인, 환자들, 직장동료 누구 하나 똑똑하지 않은 인간이 없고, 동기도 충분해 보인다. 환자의 건강만을 위하는 정신과 과장에게! 딸아이를 보고 싶을 뿐인 아버지에게! 무슨 적이 이리 많은 건지! 쌈닭도 아닌 온순한 성품의 에릭에게 벌어지는 일이라 더 끔찍하게 느껴졌다. 잔디 깎는 거 좋아하고 딸을 위해 방에 분홍 페인트까지 칠하는 순박한 아저씨의 일상이 하나둘 꼬이는 장면에서 소리쳤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우리 아저씨 좋아하는 일만 하게 냅두라고!
이런 암담한 상황에도 터지는 재치가 예술이다. 스릴러보다는 코미디를 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후반부에 터지는 재치는 상황을 헤쳐나갈 힘을 주었다. 정신과 의사로서 신념을 지키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기를! 순수한 에릭에게 물들어 마냥 주인공의 안위를 빌며 책을 넘겼다.

사람을 잃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되더군요.
길을 읽고 살다보니 그 바람에 또 사람을 잃게 되고.
P. 268
일 중독자와 일 중독자가 함께하면 더 많은 일 중독자들을 만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경제가 활성화되고 나라가 살 테니까.
미국이 잘 살게 되면 유럽도 잘될 거고, 나머지 나라들도 잘될 거야.
P. 384
네가 스스로 버티고 설 준비가 될 때까지 내가 대신 그 자리를 채워준다는 뜻이야.
너를 구하는 데 난 필요 없어.
내가 도와줄 수는 있지만 너 스스로 구해야 해.
(...)
너 에게 대안을 보여줄 거야.
다른 대안이 없다고 믿어질 때 헤쳐 나갈 수 있게 해주고,
희망이 없다고 느껴지는 시간을 버틸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내 일이니까.
네가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행복해질 거라는 것을 알게 해줄 거야.
P. 428-429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