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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꽃
이동건 지음 / 델피노 / 2022년 5월
평점 :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이영환. 정신질환을 제외한 말기 암, 장애, 난치병, 불치병 등 모든 질병을 치료할 의학적 기술을 가지고 있다 말하며, 이를 세상에 공개하고자 한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의학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한 죄를 묻지 말 것. 8구를 시작으로 30구, 56구, 180구, 계속해서 나오던 시체는 총 223구가 되고, 이영환은 본인이 죽인 사실을 시인하며, 이에 죄를 묻는다면 그의 머릿속 지식과 함께 죽을 것이라 말한다. 223명이나 죽인 살인자가 사회로부터 무죄를 받을 수 있을까?
223명의 유가족과 사회를 대신해 살인자 이영환은 죽어야 한다 말하는 장동훈 검사와 아픈 딸을 치료하기 위해,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켜 줄 이영환의 죄를 사해야 한다 말하는 박재준 변호사의 양보할 수 없는 공방이 한편의 영화처럼 그려진다. 장동훈 검사와 박재준 변호사가 가진 각각의 사연은 죄를 묵인할 수 없다는 집단과 죄를 묵인해야 한다는 집단을 대표하는 하나의 사례로 등장해 독자에게 호소한다. 저 223명이 네 지인, 가족이라 생각해 보라! 쳐 죽일 놈이 되고. 70억의 인류가 질병으로부터 해방된다! 이미 죽어버린 223명의 목숨과 그 유가족들의 슬픔을 저울질하게 된다.
절박함에 양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이고 양편으로 갈라져 사회가 양분되고 혼란으로 번져가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장동훈 검사와 박재준 변호사 뒤로 펼쳐진다. 처음엔 긴가민가하던 사회에 이영환이 행한 기적의 증거가 나타나 충격을 주고, 그 기적의 이면에서 자행된 끔찍한 인체실험을 들추며 다시 충격을 준다. 무시 못 할 이야기에 사람들은 더욱 격해진다. 이영환이 죄를 사면 받으면 안 된다, 처벌을 받으면 안 된다. 이들의 격해진 감정이 빠른 전개와 함께 휘몰아친다.
이러한 양측의 주장에 장동훈 검사와 박재준 검사도 고뇌한다. 죄를 묻는 선두에 선 장동훈 검사는 ‘죄를 물어 처벌하는 것이 옳은가?’ 고민하고, 죄를 면하게 만들어야 할 선두에 선 박재준 변호사는 ‘이영환을 무죄로 풀어주는 것이 합당한가?’ 고민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나는 틀리 지 않았다.’ 세뇌 거는 모습이 너무 인간적이라 웃음이 나왔다. 둘은 서로 다른 입장임이지만 참 닮아있었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이런 진부한 표현을 왜 쓰나 싶었는데, 정말 한국 법정 영화 한 편이 보는 것처럼 읽었다. 223명을 인체 실험해 놓고 도리어 본인을 구원자라 칭하는 뻔뻔한 이영환의 작태에 격분하고, 그런 살인마한테 무릎 꿇고 빌어야 할 정도로 절박한 박재준 변호사의 상황이 애석하고, 실실 쪼개는 이영환에게 시원하게 욕 박는 장동훈 검사에게 박수를 보내며 읽었다. 사회는 과연 어느 손을 들어줄 것인가? 결말이 보고 싶으면서도 한 페이지씩 줄어가는 게 아까운 이야기였다.
의학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죽는
인체 실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그러니까 70억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체 실험으로 사람을 죽이는 게 정당했다.
이런 느낌으로요. 이해가 되나요?
P. 46
저는 어떻게든 이영환 씨 사형을 받아 낼 겁니다.
56명이나 죽였으면 사형을 피할 생각도 하지 마세요.
저도 이영환 씨 뉴스 다 챙겨보고 지껄이신 조건 사항도 다 읽어 봤거든요.
무죄 받을 생각은 좆 까시고요.
혹시나 사면을 받고 풀려나면 제가 직접 죽일 거니까
그것도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그냥 편안히 있으시면 알아서 죽여 드리겠습니다.
P. 62
저는 처음 사람을 수술대에 올렸을 때부터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어요.
저번에도 말했듯이 저는 죽는 게 무섭지 않아요.
그럼 변호사님 계획대로 가죠. 재미있겠네요.
P. 111
그냥 검사 일 하는 거지.
나도 너 사연 알고 있잖아.
뭐, 악당이고 영웅이고 그런 게 어디 있냐!
다 각자 얽힌 사연이 다른 거지.
P. 13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