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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변의 창 - 피의 노래
박성신 지음 / 북오션 / 2022년 4월
평점 :
관계에 있어서 주파수가 안 맞는다는 것, 그것을 목도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같은 줄 알았지만 사실은 나 혼자 사랑하고, 나 혼자 라이벌로 여기고, 혼자만 열정을 불태웠다는 걸 깨닫는 순간, 교류하는 것이 아닌 혼자만의 일방통행임을 알았을 때,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허망함과 함께 비참함이 몰려온다. 나의 100이, 너의 0이구나. 나는 너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구나. 씁쓸하고, 끔찍하다.
황선과 이수 또한 주파수가 달랐다. 그래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걸 모르고 있던 황선은 이수만 만나면 해결될 일이라 여기고, 이수를 찾아간다. 그러나 어른이 된 이수의 기억 속 황선은 수많은 어린 날과 함께 사라져 있었다. 넓을 황에 선할 선, 황선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으면서, 이름도 없는 흉측한 외모의 괴아를 세상과 연결시켜줬으면서, 벗이라 불러줬으면서! 그 모든 것이 이수에겐 어린 날의 철없는 행위에 불과했다. 황선에게 이수는 전부였지만, 이수에게 황선은 그 무엇도 아니었다. 잔인한 사실에 황선은 비참함을 느끼고, 그 감정은 이내 이수에 대한 분노가 된다.
세상이 외면하는 나의 존재를 받아들여줄 유일한 사람에 대한 갈구, 분노가 되어버린 그 처절한 몸짓은 얼굴만 난도질한 기이한 연쇄살인사건으로 발현된다. ‘왜 하필 얼굴을 난도질했는가?’, 묻는 이수와 독자에게 황선은 질문으로 답한다. ‘내가 난도질한 것이 맞니? 내가 죽인 게 확실해?’라고. 저 밑바닥부터 한가득 느껴지는 울분의 목소리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태어남마저 어긋난 삶에 내던져진 황선의 인생을 구원할 방법이 이런 극단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숙연해졌다.
“망가지느니, 망가뜨리는 삶을 살기로 했거든.”
P. 62
세상은 살 만한 곳이 아닌 살아내야만 하는 곳이었고,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 아니라 지옥과 같은 무덤이었다.
친절과 선의 대신, 복종과 권력, 악의가 넘실대는 곳이며,
황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괴물이었다.
P. 66
“사람에게 필요한 음식이나 친구가 있듯이
그 사람이 필요한 소리가 있사옵니다.”
P. 156-157
“그런데 세상에 살인보다 더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지 않은가?
무시, 멸시, 능멸, 누명, 배신 이 모든 것이
살인보다 나쁘지 않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그녀들을 죽음으로 몬 것은 혹시 다른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네.”
P. 185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