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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의 언어 - 우리 삶에 스며든 51가지 냄새 이야기
주드 스튜어트 지음, 김은영 옮김 / 윌북 / 2022년 5월
평점 :
읽는 중간중간 코가 절로 킁킁거리며 냄새를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신기한 책이다.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같이 학창 시절을 추억하며 연필의 흑연과 나무 냄새, 그것을 문지르던 지우개의 고무 냄새를 맡았고, 매년 찾아오는 겨울을 기억하며 눈 내리기 전, 중, 후의 공기 냄새, 손끝에서 퍼지는 귤 냄새를 맡았고, 침 고이 게 만드는 부드러운 바닐라와 진한 베이컨 냄새 또한 맡을 수 있었다.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코를 벌름거리고 있으면, 작가는 웃으며 다가와 묻는다. “비 온 뒤에 맡아지는 냄새가 궁금하지 않니?” 하고. 코를 벌름거리다가도, 궁금했던 냄새의 원인과 메커니즘을 알려준다니! 환대하고, 집중하게 된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원인을 규명해 주어 속이 시원하고, 그 냄새로 인해 생긴 일화까지 더해지며 냄새는 더욱 풍부한 색채로 다가온다.
작가가 기억을 더듬어 설명하듯, 나도 기억을 더듬으며 책을 읽어갔다. 여름날의 습한 공기 냄새와 뒤섞인 삼겹살 냄새, 설날의 차가운 공기를 부유하는 재의 매캐한 냄새, 물기가 말라가는 돌로 된 복도 냄새처럼, 나의 기억 속 또렷한 장면들을 짚어보면 대부분 후각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코에 대해, 후각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는 사실은 새삼 충격을 받으며, 후각의 존재감을 강하게 느꼈다.
The Nose, ‘코를 소개합니다’로 시작하는 코에 대한 강의를 들을수록 코에 얼마나 무지하고, 무관심했는지 반성해야 했고, 그저 흘러갔을 수많은 냄새에 회한에 잠기기도 했다. 작가와 함께 51가지의 냄새를 알아가며 솟아난 후각에 대한 애정으로 ‘냄새를 잘 맡기 위한 연습법’을 차곡차곡 배워나갔다.
냄새는 아주 짧은 순간에 놀랍도록 아름답게 지나간다.
P. 21
물은 냄새를 더 잘 끌어낸다. 할 수 있다면 물질을 물에 적셔서 냄새를 맡아본다.
(...)
비가 오거나 습도가 높은 날은 냄새를 추적하기에 특히 좋은 날이다.
P. 57
전쟁의 냄새, 전염병과 싸우기 위한 무용의 무기였던 것이
지금은 도시의 자랑과 현대성의 승리를 의미하는 냄새가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적자생존의 변화가 아닐까.
-포연中-
P. 174
나는 왜 굳이 냄새에 대한 책을 썼고, 여러분은 왜 이책을 읽어야 할까?
바로 우리가 거의 알지 못했던 감각을 쓰도록 자극하기 위해서다.
내 몸속의 쾌락과 생소함을 발견하기 위해서, 덜 익숙하게 느끼고, 더 희미하게, 더 천천히,
가공되지 않은 순간의 날것 그대로 어색한 것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