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착같은 장미들
이우연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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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다 읽었는데, 이 책이 왜 장편소설인지 모르겠다. 몇몇 이야기들은 이어지는 부분이 보이지만 여전히 장편소설처럼 보이진 않는다. 대놓고 이어지는 부분이 있고, 은밀하게 이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어렴풋하게 알 것 같은데,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게 이어지고 있는 게 맞나? 누가 좀 알려줬으면 싶을 정도다. 그 정도로 불친절한 방식이다.


이 불친절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충격과 공포를 자아내 눈을 뗄 수도 없었다. 닭, 돼지, 쥐, 소녀, 여자가 광포하게 울부짖고, 진득하게 달라붙고, 처절하게 몸부림치면서 웃고 있는 난잡하기 그지없는 공간이다. 이들을 대신해 모든 것을 토해내는 작가의 언어는 때론 해를 받아 빛나는 살갗처럼 뽀얗고, 때론 번들거리는 검붉은 내장처럼 투명함과 끔찍함을 오가며 기괴하게 느껴진다.


또한 모든 것들이 표현하는 작가의 글은 상냥해서 그 기괴함이 생생하게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뜨거운 철판 위에서 춤추는 닭, 사지가 튿어지는 돼지, 줄에 매달린 채 욕창에 걸린 소녀, 물에 삶아진 아기, 새로운 곳을 꿈꾸는 쥐들이 만들어낸 모든 장면들이 망막에서 역동적이고, 처절하고, 고요하고, 엄숙하게 상영된다.


울부짖듯이, 내 이야기를 다 들어달라는 듯이 마침표 없이 이어지는 문장으로 이야기하는 부분 또한 인상적이다. 무슨 이런 문장이 있나 싶을 정도다. 읽다가 숨이 막힐 정도로, 한눈팔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하기에 문장에만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격정으로 범람하는 글에 흠칫 한 발짝 물러났다가도 다시 가까이서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글이다. 개인적으로 닭, 돼지시위의 돼지, 쥐, 뛰어내린 소녀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


난 언제나 가장 앞줄, 왼쪽 자리,

창가와 그녀에게 가장 가까운 자리를 선택했다.

그녀가 원한다면 언제라도 나를 창문 밖으로 밀쳐낼 수 있도록

창문 옆에 꼭 붙어 앉았다.

p.251-252


동물원 우리에 과자를 던지듯

소녀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는 관객들의 머리 위에서 한 손과 입으로

그들이 건네는 것을 모두 받아먹으면서도

소녀는 조금도 살이 찌지 않았다.

그녀가 너무도 벅차게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여린 몸으로 그녀를 끌어내리고 비상시키는 모든 힘에 저항하면서,

그녀의 매달림을 겨냥하여 발발하는 모든 투쟁을 감당하면서,

소녀는 매달려 있었다.

p.279


그러나 소녀는 배고프지 않았다. 그들은 찢어지고 있지 않았다.

찢어지는 것은 소녀였고 배고픈 것은 그들이었다.

p.315


모험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기꺼이 죽을 수 있을 정도로,

미칠 듯 신비로운 숲이 없을 것이 소녀는 두려웠다.

무엇보다도 바깥에서 살아 돌아올 것이, 바깥을 겪고 바깥을 포기하고

다시 눅눅하고 음침하고 더러운

쥐들의 소굴로 돌아가 평생을 죽어갈 것이,

다시는 바깥을 상상할 수 없는 채로

다른 곳의 영원한 부재와 불가능성 속에 파묻혀 죽어가는 것이.

p. 359-36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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