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찬미 1 케이팩션 4
서자영.강헌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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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소프라노 윤심덕이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바다에 몸을 던졌다. ‘현해탄의 정사에 전국이 술렁이고, 동아일보의 기자 남상철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보도 내용을 부인한다. 비단 상철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윤심덕을 아는 사람들도, 김우진을 아는 사람들도 입을 모아 둘은 연인 사이가 아니라 한다. 그러나 대중은 연인 사이의 일을 어떻게 제3자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라며 시체도 없는 정사에 열을 태운다. 그렇게 살이 덧붙은 이야기들이 오늘날에도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영화로, 드라마로 제작되고 있었다. ‘둘이 같이 죽었다.’라고 말하는 대중에게 <생의 찬미>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래도 둘이 같이 죽었을까?


형님 말대로 구질구질한 것보단 쌈빡한 끝이 나아서 죽기로 했다 칩시다. 그럼 그 여자는 자기가 윤심덕이라고, 윤심덕이 죽는다고 벽보에 써 붙이고 떨어졌을 거요. 성격 알잖어요? 그런 윤심덕이 유서를 가명으로 남겨요? 윤심덕이 언제부터 윤수선이란 호를 썼는데요? 나도 모르고 형도 모르는데? 누가 안다고 그딴 호를 자기 죽기 전 유서에 써요. 미쳤소? 기껏 죽으면서 그런 짓을 왜 해요? 촌스럽게? 말 안 돼요. 이거. 윤심덕이 이런 짓 할리 없어요. 그렇지 않소?”


상철을 따라 심덕의 행적을 쫓으며, 퍼즐을 맞춰나가는 과정 속에서 나 또한 심덕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1920년대, 불모지나 다름없는 땅에서 소프라노의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심덕의 발걸음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왜 어려운 길을 가려 하는가? 심덕의 지인들도 물었고, 책을 읽는 나도 물었다. 공부를 잘했기에 의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음악을 택했다. 대한민국에 익숙한 판소리나 엔카를 불러 되었다, 그러나 소프라노를 택했다. 소프라노로 인기를 얻었을 때 좋은 혼처를 찾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유연애를 선언했다. 도대체 왜?라는 질문이 절로 나왔다. 성공한 삶을 따라 하는 것도 버거운 세상에 불투명한 길을 개척해가는 심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시밭이 분명한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염려스러우면서도 본인의 목표가 저기 있다 말하는 모습은 확신에 가득 차 있어 동경하게 되었다. 끝날 거라 생각한 폭죽이 다시 고개를 돌려봐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어 눈을 뗄 수 없었다. 심덕을 사랑했던 인물들처럼 나도 심덕을 사랑하게 되었고, 심덕의 정사를 같이 부정했다.


나는 말이야.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가 될 거야.”

할 수 있을 거야.”

전통 클래식을 꼭 제대로 조선에 소개할 거야.”

투사군. 클래식계의 잔 다르크야.”


조선 여자들의 대표 정서가 한이라는 거야. 성질 못 참구 발끈했지.”

그대에게 해당되지 않는 말이라서?”

나뿐 아니라 모든 조선 여자들에게. 참아야 하는 시대니까 억지로 참고 산 거지, 그게 조선의 정서라는 게 말이 돼?”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말로 지인들의 이야기는 무시한 채, ‘둘이 같이 죽었다라는 단편적인 부분만 취해 대중의 입맛에 맞게 재단한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부정한다. <생의 찬미>는 지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1920년대 문화통치와 1923년 관동대지진의 시대를 담았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맞게 이야기를 풀어갔다. 일제 치하의 조선인이었고, 남성 권력이 강한 시기의 여자였고, 가난한 나라의 소프라노였던 윤심덕이 29세의 나이에 죽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생에 이토록 열정적이었던 인물이 사를 찬미하고 죽은 이유가 단순한 정사인가? 이 이야기의 끝에 일제가 이득을 봤다. 그래도 단순한 정사인가.


생과 사 모두 인간의 삶에서 두 번 되풀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타인이 사라지는 것과 태어나는 것은 제3자에게 동일한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대단한 음모론이 가득할 것 같지만 사실 인물을 알아가고 거기에 빠지는 재미가 톡톡한 책이다. 책을 읽는 한 시간 동안 심덕을 열혈이 사랑한 기자 남상철이었다가 또 한 시간은 조선 제일의 소프라노를 꿈꾸는 심덕이 되고, 자신의 자아를 찾아 헤매는 우진이 되고, 그런 우진을 보듬어 주는 점효가 되었다. 심덕을 아는 모든 사람이 되어 동경, 하얼빈, 목표, 대판을 활보하며 1920년대를 느꼈다.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을 정도로 푹 빠져 읽었다. 이렇게 빠져 읽다 보니 느껴졌다 단순한 정사가 아닌 것을.


사람들을 흥분시키기 위해선 이야깃거리가 풍성할수록 좋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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