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일본문학 베스트 1
다자이 오사무 지음, 강소정 옮김 / 성림원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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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을 읽는 내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계속 떠올랐다. 지구 반 바퀴 거리에 위치한 일본과 프랑스에서 쓰인 두 책은 1940대라는 배경을 공유하고, <이방인>의 뫼르소와 <인간실격>의 요조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지만 둘은 다른 결말을 맞는다. 타인이 제작하고 강요하는 전형적인 인간의 틀을 거부한 <이방인>의 뫼르소는 인간 세상에 허락받지 못한 이방인임을 자처하고 타인의 질타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결말을 맞는다.


반면 <인간실격>의 요조는 전형적인 인간이 되길 원해 본인을 버리고, 타인의 이미지를 주워 살아간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남들이 배고프다고 말하기에 요조는 있지도 않은 공복을 만들어 마지못한 식사를 한다. 아기가 엄마의 발성기관을 따라하듯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는 시기에 요조는 타인이 행동에 의문을 품는다. 식욕에 대해, 인간의 욕심에 대해, 인간의 삶을 아우르는 요소를 이해할 수 없었던 요조는 본인의 상태가 타인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공포와 불안을 느낀다. 인간의 삶에 대한 의문에 휩싸일수록 타인과의 대화 또한 어색하고 무서워지기만 한다. 그럼에도 인간을 이해하고 싶었고, 인간이고 싶었던 요조는 인간에 대한 마지막 구애로 개그를 선택한다. 천 번에 한번 성공할까 말까한 위기일발의 식은땀 나는 서비스를 구사하는 요조의 모습에서 인간에 대한 처절한 갈망이 느껴졌다.


본인의 실체가 들킬까 두려워하던 요조에게 필요했던 것은 다케이치가 보여주었던 무덤덤한 포용력이 아니었을까. 개그로 세상을 속이고 있음을 들켜도 요조의 인간성을 문제시 하지 않고, 요조가 좋아하던 그림에 대해 이야기 하던 일상이야말로 요조가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었던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바라는 것이 딱히 없던 요조가 반 고흐와 같이 괴물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다케이치에게 속삭이는 장면이 <인간실격> 속에서 만난 요조의 유일한 자아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바람은 미술가가 아닌 공무원이기에 미술학교가 아닌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다케이치에게서 배운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는 방법은 아버지 앞에서는 백지가 되어, 자신이 놓아버린 것이 뭔지 알지 못한 채로 요조는 방황을 하다가 종국에는 스스로에게 인간실격이라는 선고를 내린다.


타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본인의 실체를 지켰던 <이방인>의 뫼르소와는 다르게 <인간실격>의 요조는 타인들의 기준과 잣대 속에 본인의 삶을 우겨넣는데 실패하고 좌절한다. 미술을 포기한 채 아버지에 의해 수동적으로 사는 삶이, 대부분의 재능을 포기하고 학업에만 치중하는 대한민국의 현재와 무엇이 다를까.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해서 마음한편에서 깔짝거리는 것까지 닮아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고 하는 뫼르소보다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라는 요조에게서 동질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애석하다. 27살의 빛바랜 요조를 통해 나는 무엇을 놓친 채 방황하는 중인지에 대한 의문을 직시할 용기를 내어본다. 내년에는 뫼르소가 될 수 있기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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