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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무너진 가정과 상처 입은 공동체 속에서 한 소녀가 버텨내는 법을 배워가는, 잔혹하면서도 애틋한 이야기였다. 작품의 배경인 케이프 헤이븐은 절벽과 햇살, 바람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장소지만, 그 풍경 아래에는 30년간 응어리져온 비극이 눌려 있다. 그 중심엔 경찰 서장 워크와 살인자 빈센트 킹,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더치스’가 있다.
더치스는 단순한 문제아가 아니다. 엄마 스타의 무책임함, 사회의 방관, 아이를 아이로 봐주지 않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 가족의 울타리가 되어야만 했던 소녀다. ‘무법자’를 자처했지만, 그건 사실상 이 세상에 너무 일찍 던져진 한 아이가 만들어낸 자구책이었다. 그녀의 말과 행동은 종종 거칠지만, 그 속엔 동생을 지키려는 절박함과, 자기를 버린 어른들에 대한 뼈아픈 분노가 서려 있다.
빈센트 킹의 출소는 더치스의 일상을 무너뜨리는 사건이자, 30년간 잠들어 있던 마을 전체의 죄와 상처를 다시 끄집어낸다. 빈센트가 진짜 괴물인지, 아니면 오해와 침묵의 희생자인지 독자는 끝까지 긴장 속에서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더치스는 한층 더 깊은 상처를 입고,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선과 악, 정의와 복수의 경계를 명확히 나누지 않는다. 잘못된 선택과 오해, 침묵이 얼마나 많은 삶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보여준다. 더치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결국 아이들이 겪어선 안 되는 고통을 방조한 어른들의 그림자와 마주하게 된다.
나의 작은 무법자는 감정을 소모하게 만드는 비극적인 드라마가 아니다. 그것은 상처 입은 존재들이 서로를 어떻게 보듬고, 비틀린 진실 속에서도 희망을 붙잡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더치스가 아직 열세 살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그리고 이 작고 강인한 소녀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진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마음을 뒤흔드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