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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속에 피가 흐른다 - 김남주 시선집
김남주 지음, 염무웅 엮음 / 창비 / 2004년 5월
평점 :
김남주 시인 !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을까? 그러나 어찌하랴 지금 이순간 그를 부르지 않는다면 내 존재를 부정하게 되는것을...
참 오랜만에 영풍문고를 갔다. 약속장소로 서점을 오랜만에 정했다. 간만에 간 서점에서 일상에서 찌든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수많은 책들. 그리고 읽고 싶은 욕망. 그러나 맘 한구석에는 귀찮음에 빠져버린 내 자신을 발견하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다. 옆에 친구에게 여러 출판사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너무나 텅비어버린 내 맘 한 구석을 발견한다. 너무나 답답하다. 그 답답함을 무시한체 친구에게 책 한권을 소개한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교수의 책. 나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준 책이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그 친구에게 책을 소개한다. 그러나 맘 한구석 쓸쓸함이 밀려온다. 30년 인생을 살아왔다. 그렇지만 나를 형성한 10대후반에서 20대초반까지의 모습들이 스쳐지나간다. 아! 이렇게도 변해 버렸는가! 맘 속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변한것. 그것은 곧 사실이기에.
친구에게 책 한권을 권한뒤 친구가 책 한권을 선물하고 싶다고 한다. 여러 코너를 왔다갔다 한다. 처음에는 철학코너 니체와 장자를 찾는다. 그러나 니체와 장자는 나를 거부한다. 어쩔수 없다. 그들을 진지하게 바라보기에는 내가 너무 변해 버렸다. 그들을 대하기가 무서운지도 모르겠다. 다음 코너로 향한다. 맑스의 책들이 보인다. 맑스 역시나 두렵다. 니체와 장자 그리고 맑스 너무나 쉽게 다가갔다가 너무나 가볍게 대했던 모습이 싫어서이다. 어쩔수 없이 가벼운 맘으로 보기에는 역시 시다란 생각에 시집 코너로 간다. 시집 코너 역시 편하다. 당연하다. 일기 편하기 때문이다. 그냥 짧으니까. 무심결에 책들을 살펴본다. 순간 나의 눈에 잡히는 시집 한권이 보인다. "꽃 속에 피가 흐른다" 많이 접했던 문장이다. 순간 "잿더미"란 시가 생각난다. 그리고 난 시집을 꺼내 든다. 구멍난 동그라미 속으로 '남주'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너무나 해맑은 웃음이다. 너무나 행복하다. 시인의 그 웃는 모습은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나의 삶을 결정한 모습이다. 행복한 가운데 눈물이 흐를려고 한다. 난 잠시 눈을 돌린다. 아픔의 눈물인가 후회의 눈물인가? 아님 내 자신에 대한 자책의 눈물인가. 나는 눈을 돌려버린다. 시집을 꺼내든다. 그리고 표지를 벗긴다. 빨갛다. 책표지가 너무 빨갛다. 아 그리고 아프다. 책도 피가 흐르고 있다. 빨간 잠바를 입고 있는 내 모습 그리고 차가운 공기를 접하다가 들어간 서점속의 열기로 인한 내 얼굴도 빨갛다. 친구에게 친구야! '책표지랑 내 모습과 너무 비슷하다. 나 이 책 할래' 난 웃으면서 친구에게 내 생각을 모두 감춘체 이 책 사주라 하고 말한다.
친구와 책을 사들고 밖으로 나온다. 서점 밖으로 나온 순간 약간의 추위와 함께 노래 소리가 들린다. '정태춘'씨가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난 친구의 손을 이끌고 그곳으로 향해 노래 소리에 취한다. 행복하다. 간만에 행복함이 물씬 다가온다. 난 무엇을 하면서 살아왔던가? 지난 1년을 생각해보면서 난 스스로를 바라본다. 알고 있다. 이 순간이 지나면 난 또 변할 것을.. 그러나 이 순간의 행복함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남주 시인의 시집과 정태춘씨의 시집에 정태춘씨의 싸인을 받는다.
아! 그리고 난 친구와 헤어졌다. 그리고 지하철을 탄다. 난 지하철을 타자마자 시집을 꺼낸다. 빨간구멍속으로 남주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시끄러운 락음악을 듣는다. 유치하지만 주위 모든 대상을 잊고 싶다. 그리고 시집을 편다. 첫페이지에 환하게 웃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한장씩 시집을 넘긴다. 제1부의 첫시가 나에게 다가온다. ' 잿더미' 아 순간 멍해진다. 참 오랜만에 시인의 시를 읽는다. 아니 느낀다. 행복하다고 해야하나 아니다. 순간 약간의 전율이 일어난다.
아는가 그대는
봄을 잉태한 겨울밤의
진통이 얼마나 끈질긴가를
그대는 아는가
육신이 어떻게 피를 흘리고
영혼이 어떻게 꽃을 키우고
육신과 영혼이 어떻게 만나
꽃과 함께 피와 함께 합창하는가를............
...........................................
꽃이다 피다
피다 꽃이다
그것이다!
아! 뜻을 음미하려고 노력하다가 순간 멈춰버린다. 아 그냥 느낀다. 꽃과 피가 어떻게 하나로 되는지 그리고 영혼과 육신이 어떻게 하나가 되는지를 그리고 그것들이 만나 어떻게 노래로 피어나는지를..
순간이지만 난 행복하다. 허위와 위선속에서 살아가는 내 모습이지만. 그 순간은 다른때보다 훨씬 진실했노라고 스스로 만족한다. 그 만족이 행복으로 이어진것인가? 아니면 새롭게 삶에 대한 긍정과 사랑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인가..
모든 그런 의미들은 별로 상관없다. 단지 행복하단것만이 중요했다. 난 지하철 안에서 홀로 행복함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너무나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이이라. 이 시대의 한가운데서 진실하게 끊임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간 시인의 모습을 만났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현재의 나의 모습에 대한 분노를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난 한장씩 시집을 넘긴다. 그냥 그냥 아무생각없이 한장한장 넘긴다. 느끼기위해.느껴지는 시도 있고 그냥 스쳐보내는 시들도 있다. 그러나 난 행복했다. 아무 생각없이. 그리고 나의 모든 욕망과 허위와 가식을 잊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또 한번 행복하게 한다. 물론 안다. 그 시간이 흐른후 난 또 욕망과 허위와 가식을 껴안고 살아갈 것을..그러나. 조금은 조금은 행복하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내린다. 문득. 시인의 얼굴을 다시본다. 그리고 그냥 생각해본다. 다짐하지도 않는다. 왜냐고 다짐은 단지 나를 또 하나의 껍데기로 감싼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껍데기가 필요한 시점인것을 알지만..난 그냥 다짐하지 않고 생각한다.
"내가 믿는 것을 곧 진리로 만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끊임없이 걸어갈 것이다"
'오늘 하루 너무 행복했다'
그것만이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