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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5년전 대학시절 나무 밑에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있는 선배를 보았다. 그 선배가 흔히 말하는 운동권 선배였기 때문인지 신영복의 통혁당사건과 맞물려 고만고만한 이념서적쯤으로 보아넘겨버렸다. 15년이 흘러, 이제는 민주화투쟁을 벌이는 대학생들을 보기 힘든 현실에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선입견 없이 오롯이 그 색깔 그대로 만날 수 있었다. 중학교 아들을 읽힐 셈으로 산 것만해도 격세지감을 느낀다고나 할까.
며칠 전에는 공지영 소설을 영화로 만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었다. 그리고 곧 '야생초편지'를 읽을 생각이다. 모두 다 감옥이 배경이지만 그 느낌은 다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한 마디로 소개한다면 고고한 선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책을 읽노라면 저자가 서 있는 그 곳이 감옥임을 잊는다. 사람의 몸을 옥죄고 마음을 가둬 영혼까지 피폐하게 하는 곳에서 퍼내면 퍼낸만큼 차오르는 맑고 차가운 샘물을 발견하는 일은 감동이다. 그 물의 깊이는 해가 갈수록 더해져서 20년 20일이 흐른 지점에서는 깊은 내면에서 울려퍼지는 공명을 느낄 수 있다.
부모님과 형, 아우, 형수님, 계수님, 그리고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조카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갇혀있느나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성찰하는 안목을 접할 수 있다. 수인들을 푸른 옷을 입고 마음을 수도하는 수도자로 본 것처럼 해가 갈수록 사색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사람 됨됨이로 표현한 글씨처럼 한 자 한 자 자신이 생긴 모양대로 써낸 글씨들은 그대로 잔잔한 울림이 있다. 비록 한 획이 틀렸더라도 그것을 지우지 않고 다른 획들로 부족함을 채우는 사관이야말로 온 세상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씀씀이를 타고났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이 세상에 쓸모 없이 태어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좋다.
마지막까지 감동을 남기는 글귀 '나는 걷고 싶다'는 주어진 자유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꼭 읽으라고 권한다. 눈이 많이 쌓인 어느 겨울 날, 죄수들이 만들어 놓은 둥글고 큰 눈사람. 그 위에 검은 숯으로 '나는 걷고 싶다'가 박혀있다. 그 말 한 마디로 수많은 말을 대신하고 있는 듯 애잔하다. 두꺼운 책 만큼이나 사색 또한 깊어지게 하는 책, 올 가을 그 깊은 사색의 세계를 경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