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cat 2006-01-25  

바다님께
잘 지내시나요? 아침엔 오천 원 권을 새로 나온 지폐로 바꾸었어요. 한국은 설날이 코앞인 거 아시지요? 날은 흐리고 저는 돈을 새 돈으로 바꾸었을 뿐인데 갑자기 목이 메었습니다. 바다님도, 산다는 것에 대한 엄중함과 쓸쓸함이 한꺼번에 몰켜와서 꼼짝없이 나를 궁지에 몰아넣은 적이 종종 있지 않어요? 님이 보내주신 선물을 받았을 때도 그 모냥이었어요. 콧대가 매웁고, 목구멍이 돌짝처럼 무거워지는 게 징조가 이상했지요. 한 사람에게 크기를 잴 수 없는 고마움을 한꺼번에 느끼면 몸에 이런 변화가 오는구나, 하고 새삼 생각한 저녁이었습니다. 그건 꼭히 선물을 받아서라기보다는 제게 있어서 바다님의 존재가 갖는 의미 때문이었어요. 멀리 사는 인터넷 친구라는 물리적 거리와 바다님의 마음이 세세히 읽혀지는 마음의 거리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말 건네지 않고서도 잡힐 듯한 님의 성정이 둔중한 제 마음을 가끔씩 때리고 지나갑니다. 그때마다 움찔, 거린다면 그저 웃으실래나.. 돌 잔치를 하기는 했지요. 돌 잔치도 원래 안 하려던 것을 시아버지가 우겨서 어찌어찌 동네 뷔페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아얌이 포함된 한복도 빌려주고 돌잽이도 해주고 돌상도 차려주고 하더군요. 아, 돌잽이요? 가온이는 책 집을 거니까 책 위에 아무것도 놓지 말아달라고 도우미에게 주문을 넣었는데 참 무안했어요.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탬버린을 집었거든요. 저는 내심 기뻤습니다. 돈을 집을까봐 어찌나 조바심 나든지-평소엔 돈을 잘 가지고 놀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잔치 끝나고 다 한소리 하더군요. 그래도 첫 돌인데 가온이 옷도 신경 쓰고, 머리에도 신경 좀 쓰고 하지 그랬냐고요. 사실, 가온이는 대부분 옷을 물려 입고 있는데-남자 조카 아이들 옷을 포함해서 사무실 동료나 친척들에게 받고 있어요- 작년 가을 참에 큰 맘 먹고 옷을 한 번 구입했습니다. 그 옷을 그냥 입혔더랬는데 남들 눈엔 좀 후줄근해 보였나봐요. (저희 부부는 옷과 더불어 장난감 등을 거의 사지 않는 게 나름의 육아 원칙이예요. 그러니 혹 안타까워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암튼 그래서 공연히 가온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의 빚이 좀 있었는데 그때 마침 바다님이 예쁜 옷을 주셨지 뭡니까? 그래서 제가 그 옷 들고 지인들에게 뒤늦게 큰소리 좀 쳤습니다. 물 건너온 선물이라고, 이런 거 받아본 적 있냐고요. 가온이는 아직도 9킬로가 안 되는 작은 몸집이라 올 겨울엔 힘들고 가을즈음엔 맞지 싶어요. 그때까지 가온이를 봐주실랍니까? 아프지 말고 즐겁게 지내시길.
 
 
바다 2006-01-26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을 달다가 글이 길어지는 바람에 샌드캣님 서재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