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안진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공황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황은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의 책 <불황의 경제학> 표지 뒷면에 기록된 글이다.

처음 책을 살펴보면서, 조금은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글이, 왠지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려는 좌파적(?, 진보적) 시각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을까,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그리고 꼼꼼하게 책의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책은 세계 경제에 나타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나열하면서도,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를 따지는데 주안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물론 폴 크루그먼은 진보적 경제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세계적 불황의 연속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제1장에서 “핵심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라고 외치지만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제2장에서는 “경고를 무시하다.”를 통해 라틴 아메리카에 일어났던 위기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멕시코와 아르헨티나가 경제 위기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것처럼 보였던 부분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데킬라 위기 발발 후 14년이 지난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1994~1995년의 사건과 너무나도 흡사한 금융위기를 겪기 시작했다. 우리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엉뚱한 교훈을 배웠음이 명백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멕시코와 아르헨티나가 경제 위기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것처럼 보였던 것은, 위기관리 능력이나 구제 금융 등의 외부적인 부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단순히 멕시코와 워싱턴의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당시의 구제책은 위기의 본질을 해결하기 위해 충분히 고려해 마련한 계획이 아니었다...정부의 진지한 태도가 시장의 신뢰를 회복시킬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 나온 행동이었다.”(p.74).

또한 제3장은, 1990년대에 위기에 빠진 일본의 경제에 대해서 서술한다. 일본의 경기 침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불황, ‘성장후퇴’(growth recession)라는 용어가 만들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저자는 일본의 경제가 수출 증가라는 호재로 인해, 2003년부터 경제가 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완전한 탈출을 했다고 할 수 없는 불확정적 상태로 진단하고 있다(2009년 4월 15일자 매일경제신문. 폴 크루그먼은, "90년대 말 일본 정부의 위기 대응을 비판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의 비판을 사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크루그먼 교수는 최근 미국 뉴욕소재 외신기자단 간담회에서 참석해 "90년대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의 위기 대응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했고 오히려 근본적인 해결 방안들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지금 미국 정부도 당시 일본과 똑같은 정책을 내놓고 있다"며 일본을 비판했던 자신의 과오를 사과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뉴욕지사발로 15일 보도했다).

특히 제4장 “아시아의 붕괴”에서, 한국과 연관된 부분들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국의 재벌은 본질적으로 현대식 기업을 가장한 가족회사다. 소유주들은 수십 년 동안의 특별대우에 익숙해져 있었다.(그들은 각종 대출과 수입허가, 정부 보조금 등에서 우선권을 지녔다) 재벌은 그동안 엄청난 성장을 했다. 서구의 기준으로 보면 끌끔한 시스템이 아니지만 어쨌든 한국에서는 35년 동안 매우 훌륭하게 기능해왔다.”

이 부분은 한국 경제, 특히 한국재벌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란 점에서, 이목을 집중하게 했다.

제5장 “부적절한 정책”, 제6장 “세계를 움직이는 세력”, 제7장 “그린스펀의 거품”, 제8장 “그림자 금융”, 제9장 “공포의 총합”, 제10장 “돌아온 불황경제학”

하나하나의 내용은 세심하게 살펴 볼만하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세계경제가 1930년대의 미국의 대공황과 같은 대격변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장기적인 불황의 함정 속에 빠져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해서 ‘비상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비상 상황에 대한 대처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당장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구조 작전이다. 전 세계의 신용 시스템은 마비 상이며, 이 글을 쓰는 지금 세계적인 불황은 계속 추진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야기한 경제적 취약점들을 개혁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잠시 미뤄두기로 하자. 발등의 불을 끄는 일이 먼저란 얘기다. 이를 위해 전 세계 정책입안자들이 행해야 할 일은 두 가지, 바로 신용경색완화와 소비 지원이다. 신용경색완화는 소비 지원보다 더 어려운 과제이지만 반드시, 그리고 조만간 해야 할 일이다.”(p.228-229).



저자는 ‘아이디어의 힘’(결론) 부분에서, “불황경제학은 공짜 점심이 있는 상황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공짜 점심에 손을 대는 방법만 알아내면 된다. 사용할 수 있는데도 사용하지 않는 자원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분명히 치유책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계의 번영을 막는 단 하나의 중요한 구조적 장애물은 인간의 정신을 교란시키는 낡은 원칙들뿐이라고 나는 믿는다.”로 책을 마무리한다.



<불황의 경제학>은 어려운 경제학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대할 수 있는 책도 아니다. 왜냐하면 주제가 무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불황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앞에 놓인 불황에 대해서 이해하고 대처하는 작은 준비를 하려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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