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목소리와 냄새, 사랑스러운 빛과 온도. 나는 소중한 누군가와 찰싹 달라붙어 있다. 떨어질 수 없게 묶여 있다. 젖무덤에 안긴 젖먹이처럼, 불안이나 쓸쓸함은 티끝만큼도 없다. 아직 잃어버린 것도 하나 없고, 무척 달콤한 기분만이 온몸에 가득 퍼진다. - P8
그때 저는 ‘기억‘memoria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죽어서 하늘에 갔을 때 신은 무엇을 기준으로 나를 판단할까?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몇 날 몇 시에 내가 저질렀던 인간적인 실수들과 교회가 말하는 죄를 읊으며 나를 판단할까?‘ 하지만 저는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라면 제 기억을 기준으로 물어볼 것 같았습니다. 이 땅에서 용서하지 못하고 불편하게 품고 간 기억과 아픔들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 생에서 삶의 기억을 정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절실히 하게 됐습니다. - P265
사실 나는 땅거미가 지는 해질 무렵을 너무도 사랑했다. 하루 중에서 무언가 굉장한 일이 닥칠 것만 같은 기분에 젖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이런 불확실한 시각에는 모든 거리와 장소가 평소보다 더 근사해 보였다. - P81
수동적 저항만큼 성실한 사람을 화나게 하는 것은 없다. 만약 그런 저항을 당한 사람이 몰인정하지 않은 기질이고 또 저항하는 사람이 수동성의 면에서 전혀 악의가 없다면, 그렇다면 전자는 기분이 좋을 때에는 자신의 판단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판명되는 것을 자신의 상상력으로는 관대하게 해석하려고 애쓸 것이다. - P65
우리는 언제나 현재 상태에 괴로워한다 - 그것이 의식이라는 선물이 주는 고난이다. - P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