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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말리
에르베 르 텔리에 지음, 이세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평점 :
그가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처음으로 저 사람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참 빨리 걷는구나, 아직 젊구나 하고 생각한다. (P. 45)
뤼시의 생각과는 달리 앙드레는 그녀와의 관계에서 걸림돌이 되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의 나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는 ‘또 다른 자신‘의 걸음걸이-나이듦-를 보고 본능적으로 허리를 곧추세운다)
일반적으로 내가 보는 나, (내가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는 나, 그리고 타인이 보는 내가 일치하지 않음은 당연하겠지만 어쩌면 내가 큰 문제라고 생각한 것들이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내‘가 (그 또한 나였음에도) 했던 선택들도 생소하고 낯설 수 있고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습관 같은 자책과 이불킥을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내 집에서 뭔가 하나는 순응을 거부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산 거야. 추한 것에는 익숙해지지 않거든. 이건 삶에 속해 있지. 추한 삶이지만 그래도 삶이야." - P44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심장은 주홍빛 마법에 빠졌다. 정말이지 그녀의 모든 것이 좋다. 열을 내며 말할 때 불그스름해지는 뺨, 콧잔등에 맺히는 땀방울, 깡마른 몸에 셔츠를 헐렁하게 입는 스타일마저도. 어쩌면 이 불타는 마음도 프로그래밍된 걸까? 그러면 또 어떤가. 어쩌면 삶은 우리에게 삶이 없음을 깨닫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지도. (P. 285-286) - P285
앙드레는 매혹된다. 뭔가를 아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살아 내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 P321
"실례지만 그 둘은 같습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고로 설령 내가 생각하는 프로그램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존재합니다. 내가 사랑과 고통을 느끼는 방식은 바뀌지 않으며, 나는 고맙게도 확실히 죽을 겁니다. 그리고 세계가 가상이든 아니든 내 행동의 결과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 P433
"아무튼 나는 ‘운명‘이라는 말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운명은 화살이 이미 꽂힌 자리 주위에 그려 넣는 과녁일 뿐이에요." - P434
"그 불행의 이름은 ‘엘피스(Elpis)‘, 즉 희망입니다. 온갖 나쁜 것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죠. 인간의 행동을 가로막는 것이 희망, 인간의 불행을 오래 끄는 것도 희망입니다. 상황이 명백한데도 ‘다 잘될 거야‘.라고 말하잖아요? 일어나선 안 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우리가 매번 제기해야 할 진정한 질문은 이거죠. ‘주어진 관점을 수용하면 어떤 점에서 나에게 좋을까?‘" - P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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